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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스페인의 철학자1864년 출생 1936년 사망 빌바오 출신
미겔 데 우나무노 Miguel de Unamuno
1. 개요
인간은 죽게 되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저항하면서 죽어가자.
우리 앞에 그저 무(無)만이 있다면, 이것이 정의가 되게 하지는 말자.
생의 비극적 감정에서 오베르망을 인용하면서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시인, 소설가.
우나무노는 실존주의가 철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전에 이미 인간의 실존적 고뇌와 부조리를 고뇌한 초기 실존주의자였다. 그의 저술들은 마르틴 하이데거, 장폴 사르트르 식의 철학적 서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쇠렌 키르케고르에 더 가깝다. 그의 말대로 '출구도 희망도 없는 그저 비극인 인간의 상태'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것이다.
우나무노는 키르케고르에 뒤이은 실존주의의 선구자였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가 아직 철학자로 입문하기도 전에 인간의 비극적 부조리에 대한 철학적 작업을 하였으니 말이다.
그의 저서 『생의 비극적 의미』가 1913년에 출판될 때 하이데거는 이제야 철학 박사 학위를 따냈으며 사르트르는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그 둘이 철학박사 학위를 땄을 때 우나무노는 이미 자신만의 독자적인 실존 철학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는 철학계에서조차 키르케고르가 누군지 모르던 상황에서 혼자 덴마크어를 독학하여 키르케고르의 저서를 섭렵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생의 비극적 의미』,『아벨 산체스』,『안개』,『성 마누엘』등이 있다.
그의 저서들의 공통점은 출구도 없고 승리도 없으며 그저 시체들의 행진일 뿐인 인간의 비극적 상태와 희망없음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페인 철학계와 문학계의 거장으로서 98세대의 대표였다. 그의 대표작인 『안개』는 작중 인물이 작가와 언쟁을 벌이다가 자신의 결말에 대해서 항의하는 것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메타픽션의 선구자로서 또한 포스트모던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1.1. 일생
1864년 출생. 빌바오의 바스크족 부모에서 6남매중 셋째. 우나무노의 아버지는 그가 6살때 이미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우나무노는 딱히 빈곤하거나 부족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살았으며 어머니의 그늘 아래에서 자랐다. 우나무노는 유년부터 영민함을 보여 10대때 이미 칸트와 독일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그는 16살에 마드리드 대학에 입학했으며 교수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바스크족어에 대한 첫 논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학자의 길을 걸었다.
1891년 살라망카 대학의 그리스어 교수로 임용. 이때 그의 평생의 반려자인 콘셉시온 리사라가와 결혼한다.
1897년 첫 소설 『전쟁 속의 평화』 저술. 카를리스트 전쟁 기간 동안 자신의 고향 빌바오를 의인화한 소설이다.
1898년 스페인이 미국에게 마지막 아메리카 식민지인 쿠바를 빼앗기다. 우나무노는 그 때문에 일어난 98세대 문학 운동의 대표적인 참여자가 되었다.
1901년 살라망카 대학의 총장으로 임명. 살라망카 대학은 스페인의 유수의 대학이었지만 마드리드 대학교로 인해서 그 기세가 저물어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우나무노로 인해서 살라망카 대학은 옛날의 위세를 다시 한번 떨칠 수 있었다.
1902년 삶의 전환점이 찾아오다. 우나무노는 삶의 비극적 감정을 깨닫게 된다. 셋째 아들 라이문도가 뇌수막염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치료했지만 어두운 운명을 막을 수 없었다. 아들의 장례식 후 신앙과 불멸의 문제에 대한 실존적인 위기를 겪게 된다. 혹자는 그때 우나무노가 신앙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가 실존주의를 본격적으로 지향하게 되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같은 해 실증주의 교육을 비판한 『사랑과 교육』 발표.
1905년『돈키호테와 산초의 생애』 출판. 이 저술에서 특유의 반합리주의와 끝없는 불멸에 대한 인간의 열망과 그럼에도 절대로 성취될 수 없다는 삶의 비극적 감정의 대안으로 돈키호테를 제시한다.
1913년 대표작 『생의 비극적 의미』 출판. 이 저서에서 인간의 실존적 부조리와 맹목적인 신앙주의의 불가능성, 그로 인해서 촉발되는 인간의 고뇌를 다루었다. 실증적·과학적 이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인간, 그와 반대로 끝없는 생의 의지로 인해서 종교와 불멸을 포기할 수 없는 의지의 끝없는 싸움, 그로 인한 끝없는 고뇌에 대해서 파고든다. 여기서 그는 이성과 의지를 둘 다 견지하는 모순적인 돈키호테적 싸움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1914년 메타픽션 대표작 『안개』 출판. 같은 해에 우나무노가 공화주의자 라고 생각한 스페인 당국에 의해서 살라망카 대학 총장에서 해직되고 만다.
1917년『안개』를 뛰어넘는 『아벨 산체스』 저술. 여기서 인간 심층의 추악한 질투를 해설한다.
1924년 스페인의 리베라 장군의 독재정권에 반항하다가 카나리아 군도에 유배. 그러나 장남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면서 1930년이 될 때까지 반독재 항거에 참여한다. 1930년 독재정권이 무너지며 공화정 정부가 우나무노의 재입국을 허가했다. 국민들은 그를 환영했다. 살라망카시는 우나무노를 종신시장으로 임명했으며 살랑망카 대학은 우나무노를 총장으로 재임명하였고 정부는 그를 명예 시민으로 임명했다.
1931년 공화당 의원으로 당선.
1933년 최후 역작 『착한 성인 미누엘』 저술.
1934년 사랑하는 딸과 아내와 사별.
1936년 스페인 내전을 겪다. 그는 프랑코가 돈키호테적 스페인을 건설하리라 믿었기에 프랑코를 지지했다. 그러나 프랑코의 군세가 살라망카를 점령한 후에 있었던 공식석상에서 연설했다가[2]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후 2개월 만에 지병이었던 심장병으로 서거한다.
2. 사상
나의 종교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발견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은 생에서 진리를 찾고, 진리에서 생을 찾는 것이다. 나의 종교는 피로를 모르고 신비와 부단히 투쟁하는 것이다. 나의 종교는 여명으로부터 일몰까지 신과 싸우는 것이다. 야곱이 신과 싸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불가지론과는 타협할 수 없다. 나는 영원한 무지개는 거부한다. 어찌되었든 나는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전하라고 하지만, 그런 완전은 쟁취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노력을 더해, 성취하려 애쓸 것이다. 신학자들은 은총에 의하여 완전을 얻었다고 하나, 나는 진리와 무관하게 투쟁한다. 분명히 패할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나 민족이 있지 않던가? 항복보다는 싸우면서 죽어가는 자들을 우리는 칭찬하지 않던가? 바로 이것이 나의 종교이다.
-그의 저서 나의 종교에서
그의 철학의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주제는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이다.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은 누구인가? 『생의 비극적 의미』에 따르면, 울고, 웃고, 질투하고, 욕망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뜻한다.
그러니 그는 실존적 인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 개개인의 문제를 철학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거의 철학자들 루소, 아리스토텔레스, 맨체스터 등의 추상화되고 박제된 인간이 아닌 지금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는 실존적 인간에 대해서 다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적 인간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아니 어떤 상태에 처한 것인가? 우나무노가 말하는 인간들의 상태는 이렇다.
세상의 의미와 목적을 찾지만 세상에는 아무런 객관적인 의미나 목적도 없다는 것, 세상의 진리를 찾지만 결국 찾지 못한다는것 결코 죽고 싶지 않지만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우나무노는 이런 상태를 비극 이라고 부른다.
진리를 찾지만 결국엔 모든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그러니 진리가 없다는 포스트모던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성은 그 회의의 칼날을 결국 자신에게 겨누고 말았다. 이성의 최종적인 판단은 그것이 그토록 지향한 진리의 필연성과 가능성을 파괴하고 마는 것이었다.
회의적인 무신론적 관점에서는 의미와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니체가 주장했던 것이다. 의미와 목적은 주관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이성적 관점에서 의미와 목적은 한낱 망상일 뿐이다. 마치 진리와 신과 같은 망상 말이다.
그러나 우나무노가 보기에 가장 큰 비극은, 즉 비극의 근원은, 인간이 결국엔 죽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진리를 발견하고 세상의 의미와 목적을 완벽히 알게 됐다고 해도 불멸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우나무노가 이렇게 말하길 "만약에 사흘 안으로 또는 400만세기 (이까짓 것은 아무래도 좋다.) 안에 문화나 과학이나 예술이나 미나 진리나 선이나 정의나 기타 이것들과 비슷한 모든것들을 받아들이는 인간 의식이 없어져 버린다고 해도 나는 굳이 문화, 과학, 예술, 선, 진리, 정의 등... 이 모든 아름다운 개념들에 대해 재론해야 될 것인가?"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불멸의 생명인지 이성으로는 절대로 알수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 우리의 충동은 우리에게 계속 사후세계를 묻게 만든다. 마치 칸트가 형이상학의 불가지론을 선언했지만 후대의 독일 관념론자들이 끝없이 형이상학에 대해서 질문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진리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진리를 판별하는 것은 오직 이성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불멸, 진리, 목적, 의미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부질없다 해도 우리는 이것들을 욕망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마치 과거의 독일 철학자들처럼 말이다.
『생의 비극적 의미』에서 우나무노는 인간의 삶에 대해 이렇게 선언한다. "삶은 하나의 비극이다. 따라서 비극은 승리도 희망도 없는 하나의 비극일 뿐이다."
* 아래 내용은 철학의 책 중에서
스페인의 철학자, 소설가, 시인인 미겔 데우나무노(Miguel de Unamuno)는
저서 『생의 비극적 의미 The Tragic Sense
of Lifer 로 가장 잘 알려져있다. 이 책에서 그는 모든 의식이란 (스스로 불멸성이 결여되어 있음을 고통스럽게 자각한다는 의미에서) 죽음과 고통에 대한 의식이라고 썼다. 우리가 고통스럽다는 사실이 바로 우리를 인간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일견 이 주장은 고통이 모든 인간의 삶의 필수불가결한 일부분이라는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그러한 고통에 대처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매우 다르다.
우나무노는 석가모니와 달리, 고통을 해탈을 통해 극복해야 할 어떠한 문제라고 보지 않았다. 대신 고통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일부분이자 생에 없어서는 안 될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우나노의 주장대로 모든 의식이란 인간의 유한성과 고통에 대한 각성이라면, 그리고 그러한 각성이 결국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 삶의 의미와 무세를 더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란 이 고통을 기꺼이 포용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만약 고통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인간이 되는 길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의식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셈이 된다.
사랑 또는 행복
우나무노의 고통에 대한 사상에는 윤리적인 차원이 포함된다. 우나무노는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
의 고통스러운 현실부터 직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는 냉혹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한쪽으로는 행복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고통을 외면하는 길이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고통과 더불어 사랑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전자의 선택이 더 쉬울 수 있겠지만,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한계가 있다. 우리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과 우리를 사실상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후자의 선택은 전자보다 힘든 대신,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