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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팔괘도(伏羲八卦圖) 3,000년후에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가 나왔고, 문왕팔괘도 3,000년 만에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가 나옴으로 인하여
복희팔괘는 천지가 창조된 원 틀을 그려놓은 생역(生易)이고, 문왕팔괘는 선천 5만년의 장구한 역사 기간 동안 만물을 키워내는 봄여름의 장역(長易)이다.
그리고 정역팔괘는 만물을 익혀내고 열매 맺는[旣成] 후천 5만년 가을의 성역(成易)이다.
이는 복희팔괘와 문왕팔괘에 이어 나온 제3역이며,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는 앞으로 지구촌 인류가 맞이할 새로운 세상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정역팔괘正易八卦의 핵심은 앞으로 천지의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바뀌어 지구촌 1년이 360일이 된다는 것이다. 공자가 서술한『주역』「설괘전」을 보면 앞으로 지구 1년의 날수가 365일이 아닌 360일로 바뀌게 됨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
乾之策二百一十有六坤之策一百四十有四凡三百有六十當期之日.
건지책 이백일십유육 곤지책 일백사십유사 범삼백유육십당기지일『( 주역』「설괘전」)
그러나 이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풀지 못한 채 2,000여 년을 내려왔는데, 이를 김일부 선생이 비로소 밝혀낸 것이다.
帝堯之朞는三百有六旬有六日이니라. 帝舜之朞는三百六十五度四分度之一이니라
제요지기는삼백유육순유육일이니라. 제순지기는삼백육십오도사분도지일이니라
一夫之朞는三百七十五度니十五를尊空하면 正吾夫子之朞는當朞三百六十日이니라.
일부지기는삼백칠십오도니십오를존공하면 정오일부지기는당기삼백육십일이니라.『( 正易』「十五一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자연환경은 지구 자전축이 23.5도가 기울어진 선천 봄여름우주 지구 1년 365일의 환경속에서 5와 1/4이라는 윤도수가 붙어서 태풍, 홍수, 가뭄, 지진, 화산 등의 자연재해가 그칠날이 없었던
불안정한 환경속에서 인간은 고통과 번민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 지구 1년 360일 가을우주의 열매,결실,성숙의 이치가 담긴 정역팔괘의 새세상을 맞이하는 지구촌 인류는
후천 5만년 가을우주의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천지질서 속에서 성숙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선천 5만년 상극의 주역(周易)시대가 후천 5만년 상생의 정역(正易)시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김일부 선생은 앞으로 열리는 가울우주의 새세상을 용화낙원의 세상이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誰遣龍華歲月今고!
오호라, 그누가 용화낙원의 세월을 이제야 보냈는가!『( 正易』「十一一言」중에서)
一夫能言兮여水潮南天하고水汐北地로다.
일부가 능히 말함이여! 물이 남쪽 하늘에 모이고 물이 북쪽땅에서 빠지는 일이로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火金金火原天道니라.
화금火金이 금화金火로 되는 것(金火交易)이 근본된 천지의 도이니라. 『( 正易』「十一一言」중에서)
선천 봄여름우주의 23.5도 기울어진 지구 자전축, 천지의 근본 틀이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대량으로 녹는 과정에서
水潮南天하고水汐北地바로 잡혀 선천의 천지비(天地否)의 괘상이 후천의 지천태(地天泰)로 바뀐다는 것이다.
지천태地天泰는 상하가 소통되며, 각색 인종이 서로 평등하고, 각자가 자유롭고 사랑이 충만한 사회, 후천세상을 보여준다.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는 지금까지 모든 종교(천국,극락,대동세계)와 위대한 철인(유토피아)들이 말한 우주의 새 시대를 선언하는 이치를 담고 있다.
김일부 선생(1826~1898)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지금의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의 선비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다. 선생이 태어난 당골의 서쪽에는 띠울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일찍이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圭) 선생이 국운이 쇠미해짐을 보고 서울에서 낙향하여 은거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 후기의 대학자 이서구(李書九)선생의 학통을 계승하여 천문(天文), 역산(曆算), 역학(易學), 시문(詩文)에 능통하였다고 한다.
그는 김일부선생 뿐 아니라 후일 동학(東學)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崔濟愚), 남학(南學)의 김광화(金光華)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의 스승이 된다.
김일부 선생이 36세 되던 해, 하루는 연담 선생이 최제우, 김광화, 김일부를 차례로 불러 이렇게 말하였다.
최제우와 김광화에게는 ‘각기 떨어져가는 선도(仙道)와 불도(佛道)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니 주문을 외우고 깊이 근신(謹愼)하라’고 경계하였다.
그리고 김일부에 대해서는 “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 이제까지는 ‘너’라 하고 ‘해라’고 했으나 이제부터는 ‘자네’라 하기도 과만한 터인 즉 ‘하소’라 할 것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자꾸 볼 것이 아니라 『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러노라면 자연 감동이 되어 크게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고, 후일 정녕코 책을 지을 터이니 그 속에 나의 이 글 한 수만 넣어 주소.”하고 글 한 수를 내어주니 이러했다.
“관담막여수(觀淡莫如水)하고 호행의행인(好德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 맑은 것을 보는 것은 물만 같음이 없고 덕을 좋아하는 것은 인을 행함이 마땅하구나. 빛이 천심월에서 동하니 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 .”연담 선생은 이 글을 남겨놓고 마을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
김일부 선생은 연담 선생의 유훈에 따라 예학(禮學)과 문사(文詞)에 힘쓰던 종래의 공부 방법을 바꿔 『서전』을 읽고 『주역』을 탐구하였다.
또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법으로 도를 닦았다. 김일부 선생은 조석으로 뒷산에 오르내리며 어떤 때는 날밤이 새도록 가무(歌舞)하다가 새벽녘에야 갓에 서리를 하얗게 싣고 도포 자락이 찢어진 채 돌아오곤 했다 한다.
김일부 선생은 수도공부에만 정진할 뿐 가사를 돌보지 않아 집안 살림이 극히 가난하였다. 그 부인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신고 다녔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일반 선비들처럼 글만 읽은 것이 아니라 뒷산으로 가서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반복하자 종문(宗門)에서도 이단지학을 한다하여 족보에서 이름을 빼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수도공부에만 전력을 다했던 선생은 후에 자신의 마음을 『정역(正易)』에 이렇게 써놓았다.
六十平生狂一夫는 自笑人笑恒多笑라. 笑中有笑笑何笑오. 能笑其笑笑而歌를.
육십평생에 미친(狂) 일부(一夫)는 스스로 웃고 남이 웃으니 항상 웃음이 많구나. 웃음 속에 웃음이 있으니 무슨 웃음을 웃는고. 능히 그웃음을 웃고, 웃으며 노래하는구나.『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선생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열쇠를 풀기 위해 더욱 정진하여 주야로 가무(歌舞)하면서 탐구에 진력을 다하는 가운데,
눈을 감으나 뜨나 환하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이 갈수록 청명해졌다.
일부 선생의 끊임없는 정진으로 36세로부터 19년 만에 드디어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니, 그 때가 선생이 54세 되던 1879년이었다.
그리고 기묘(1879)년 이후부터는 눈앞에 이상한 괘(卦)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천지가 모두 이 낯모르는 팔괘의 상으로 뒤덮여보였다. 혹시 가무에 너무 집중하여 기력이 쇠한 탓이 아닌가 하여 음식을 먹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혹시 주역에 그런 괘도가 언급되어 있지 않는가 여러 차례 찾아 보기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주역』「설괘전(說卦傳)」에서 “신야자(神也者)는 묘만물이위언자야(妙萬物而爲言者也)니라. 신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라는 대목에 와서“ …고(故) 수화상체(水火相逮)하고, 뇌풍이 불상패(雷風不相悖)하고, 산택이 통기(山澤通氣) 연후(然後)에야 능변화(能變化)하여 기성만물야(旣成萬物也)니라.
그러므로 수화水火가 서로 보조하고, 뇌풍雷風이 서로 어그러지지 않고, 산택山澤의 기氣가 통한 후에야 능히 변화하여 이미 만물이 완성 되느니라”는 말씀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괘도와 완전히 부합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성인이 이미 주역(周易)에 말씀하신 것이니 그릴 수밖에 없다’하여
재종질인 김국현으로 하여금 그리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문왕괘도의 뒤를 이어 나타난 제3의 괘도인 정역팔괘(正易八卦)다.
팔괘도를 다 그리자 홀연 공자가 나타나 일부에게 “내가 일찍이 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한 것을 그대가 이뤘으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하고 무한히 찬양한 후 ‘일부(一夫)’라고 호칭을 했다. 일부라는 호칭은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문득 들은 일이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에 대한 호칭인줄 몰랐다가, 이제 공자가 말씀하시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눈앞을 꽉 채우던 괘상은 이후로도 3년 동안이나 어른거리다가 사라졌다.
1881년 선생은 『정역(正易)』의 서문격인 <대역서(大易序)>를 저술하였다. 이 글에서 선생은 역(易)은 역(曆)이라는 것과 공자는 천지유형지리(天地有形之理)를 통달했는데, 자신의 도는 천지무형지경(天地無形之景)까지 통관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59~60세(1884~1885년)에 정역(正易)을 선포하였다. 이후 1886년에 제자들에 의해 목각판으로 초판이 발행됨으로써 『정역(正易)』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정역(正易)』의 중요한 핵심은 장차 우주의 주재자 하느님이신 상제님께서 지상에 강세하시어 새 우주를 열어주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靜觀宇宙無中碧하니 誰識天工待人成가.
우주의 조화세계를 고요히 바라보니, 하늘의 조화공덕이 사람으로오시는 상제님을 기다려 이루어짐을그누가 알았으리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天地淸明兮여 日月光華로다. 日月光華兮여 琉璃世界로다. 世界世界兮여上帝照臨이로다.
천지의 맑고 밝음이여, 일월의 새 생명 빛나도다. 일월의 새생명 빛남이여, 낙원세계되는구나. 개벽세계여, 새 세계여, 상제님께서 성령의 빛을 뿌리며 친히 강세하시도다. 『 ( 正易』「十一一言」중에서)
일부 선생이 쓴 『정역(正易)』은 단지 선생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에는 상제님의 가르침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嗚呼라. 天地无言이시면 一夫何言이리오, 天地有言하시니一夫敢言하노라.
아아, 천지가 말이 없으시면 일부가 어찌 말하겠는가?
천지가 일부에게 말하라고 말씀하시니 일부가 천지의 말씀을 말한다. 『 ( 正易』「十五一言」중에서)
化翁親視監化事.
화옹(조화옹 상제)께서 친히 선후천 우주변화의 일을 감독하심을 보이신 일『( 正易』「十五一言」중에서)
상제님께서 친히 선후천 우주변화의 일을 감독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고, 이를 보고 김일부 선생이 구술한 것이다.
『정역(正易)』에 보면 일부 선생이 영가무도(詠歌舞蹈)를 하시다가 천지와 더불어 삼재문(三才門)을 지나고 일월성신(日月星辰)과 함께 오원문(五元門)을 통과하여
마침내 팔풍(八風)이 되어 일부도 바람이 되어 십무문(十无門)을 넘어 화무상제(化无上帝)와 신앙 고백하는 장면이 있다.
이 날은 1884년(甲申) 7월 17일(己未)로 “불초자김항감읍봉서(不肖子金恒感泣奉書)”라 하여 눈물로 기록하고 있다.‘
불초자’란 말에서 보듯 김일부 선생은 선후천 우주변화를 친히 감독하시는 조화옹 상제님을 부모로서 극진히 받들었다.
선생이 천지조화의 문을 열어젖히고 가을개벽의 실상을 보게 된 것은 후천개벽의 이치를 세상에 널리 전하라는 상제님의 천명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김일부 대성산..
오늘도
온누리님 덕분에..
주신 글 즐감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