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언제였나 싶게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로 한낮에 바깥에서 일을 하려면 벌써 금방 몸에 땀이 나고
제법 지쳐가네요. 춘하추동 고르게 찾아주던 축복받은 땅, 동방의 금수강산도 이제는 긴 여름과 모진 겨울
두 계절이 주가 되고 잠시 동안의 환절기만 있게 되나 봅니다. 생명체는 모두 처한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게 마련이니,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의 심성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여유가 없어져서 걱정입니다.
극과 극은 통하고 모든 일에는 전조가 있는 것인데 이러다 빙하시대가 오려는지.
읍내 장날에 고추모종을 사다가 텃밭에 두 고랑을 심은 것이 상태가 시원치 않아 저녁 때 모처럼 신경 써서
물을 주다가 가까운 데 심어둔 정향나무가 생각나서 돌아보았지요. 초봄에, 우리 토종나무 보존에 열정을
기울이는 소백산 기슭의 지인을 찾아, 정향나무 어린 묘목 두 그루를 얻어다 텃밭 가 언덕 위에 심어두었던
것인데, 어느새 발그레한 앙증맞은 꽃들이 몇 송이씩 피어났습니다. 뒤늦게 보아서 한창 때는 지났지만,
한 그루는 연분홍 꽃이, 다른 나무에는 보다 짙은 자색 꽃이 소담하게 핀 모습이 남모를 기쁨을 선사했지요.
정향나무-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 키 2-3m의 낙엽관목, 원산지: 한국,
해방 이후 한국에 주재하던 한 미국인이 몰래 반출, 미국에서 개량하여 전 세계에
미스김라일락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역수입되고 있음.
같이 일하던 한국인 타이피스트의 이름을 따서 미스김라일락이라 지었다던가..
시중 나무시장에서 수수꽃다리 또는 미스김라일락 등으로 파는 것은 거의 다 외국에서 원예종으로 개량된
것으로 키와 잎, 꽃이 우리 땅이 원산인 정향나무보다 작다고 하네요. 야생의 토종 라일락인 정향나무는
시중에서는 거의 볼 수 없고 인적 드문 산에서나 드물게 발견되는 귀하신 몸이 되었답니다. 저도 사진으로만
보았지 직접 키워 눈으로 본 수수꽃다리과의 정향나무꽃. 작은 도깨비방망이 같은 꽃대들이 여럿 모여 달려
꽃 한 송이를 이루는 앙증맞은 모습에 더욱 정감이 갔습니다.
돌이켜보면 방물장수, 풍각쟁이, 곡마단, 국극단, 잠실, 능금나무, 사기그릇, 바가지, 엿장수, 대장간, 남사당 등
유년시절 보았던 많은 것들이 기억의 저편으로 거의 사라지고 없지요. 자치기며 고누놀이, 비석치기, 산가지놀이도
생각나고요. 세대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달고 때깔 좋은 개량 과실처럼 너무 빠르고
편리한 것, 입에 맞는 것만 추구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쉽습니다. 서양문화에 깊이 길들여진 우리들의 의식에서
이미 많은 우리 것들이 오래된 활동사진처럼 그저 추억의 박물관에 넣어두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중에는 우리가
아끼고 키워가야 할 고운 것, 귀한 것, 소중한 것도 있을 텐데요. 이런 말하면 첨단문명과 디지털이 지배하는 시대에
무슨 케케묵은 소리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감성의 그릇과 행복의 공간이 자꾸만 작아지는
것 같아 괜스레 몇 마디 적어봅니다.
서양의 식자들은 갈 데까지 간 물질문명 위주의 서양 문화의 폐해와 한계를 예견하며 동양의 문화며 정신세계에
관심을 기울이고 탐구에 열을 올리는데, 남부럽지 않게 뿌리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경우는 먹고사는 것
위주의 교육과 정책에만 주로 신경을 쓰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지요. 지구 환경변화와 각종 공해요인들로 종의
감소는 피치 못할 사정이라 하니 갈수록 자원과 종자전쟁이 심화될 것은 불 보듯한 일인데, 동식물의 종자보존은 물론
잃어버린 우리 정신세계의 종의 보존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이겠습니다. 행복과 평안은 아는 것, 보고 느끼는 것,
추구하는 것에 따라 저마다 다를 테니까요.
제 사는 송이골 터에 처음 자리 잡은 십여 년 전만 해도 드물지 않게 보던 꿩이며 산토끼, 부엉이며, 딱따구리들이 이제는
꽤나 귀해졌으니 사람의 발길이 늘고,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자연 생태는 남아나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개울의 그 많던
가재며 도롱뇽, 개구리 울음소리는 다 어디로 갔는지. 그래도 엊그제부터는 집 뒤 언덕에서 딱따구리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해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본 듯 얼마나 반가웠는지요. 둔한 산골촌놈 정신 차리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신 내리치는
죽비 소리를 잘못 들었나?
오래된 옛날 집이라 심심치 않게 서생원이 방문하여 몇 해 전부터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수놈은 때가 되면 짝 찾아
나가버리고, 암놈은 새끼를 감당 못하게 자꾸 낳아서 골치지요. 혼자 지내는 산골 집에 지난 해 키우던 암놈이 두 번이나
네댓 마리씩 새끼를 낳는 통에 너무 머리가 아파 원래 가져왔던 장날의 새 파는 아주머니에게 부탁하여 도로 다 갖다 주고
수놈 한 마리만 남겼던 것인데, 이 녀석도 한동안 재롱을 피우고 개인기도 개발하여 새로운 것을 보여주더니 얼마 전부터는
슬슬 외박을 하는 것이 낌새가 수상합니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변치 않는 유일한 진리가 있으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세월도 역사도 자연도 우주도 흐른다
그 중에 너와 나 우리가 숨 쉬고 있으니
흐르는 인연 길에 짧고 긴 만남이 있고
머무는 듯 흘러 흘러 갈 곳 찾아 가는구나
- 영월 송이골에서
산중낙서
* 글, 이미지: 보리피리
첫댓글 아름다운 나라에 태어남을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지요.
이 지구상에 변화하는 그모든것을 우리가 다
헤아릴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거 같아요.
송이골에서의 나름 자연과 더불어 사시니
이곳 복잡하고ㅡ오염 많은 서울과는 늘
다른 기분이 듭니다.
세상은 꽤나 어지럽고, 어찌 보면 공해독으로 찌들어 산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 또한 그중에 한몫을 하고 있겠고 우울하게 보려면 한이 없겠지요. 저 역시 생활인이요,
나 혼자만 잘 살 생각은 없는 보통사람이랍니다. 더러 별빛 밝은 세상을 꿈꾸기도 하지만.
꿈꾸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으려니..
우리 어릴 적에는 지금 같은 문화혜택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것 같은 세상이었지요 골목골목에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술레잡기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자치기 땅따먹기 공기놀이 등등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어울려 놀았지요 만화가게도 있었구요
바로 엊그제 같은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맑던 하늘이 지금은 미세먼지 걱정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정향나무가 뭔지 확실히 알았네요 꽃이 참 예쁘군요
송이골에서 날아오는 소식은 항상 반갑고 설레입니다 이런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텐데 부디 지치지 마시고 건강하시길요~~
흑백 TV 한대면 온 동네가 즐거웠던 그 시절엔 풀잎도 돌멩이도, 웅덩이며 모래밭도 자연의
모든 것이 놀이기구였지요. 오늘날처럼 학원이며 일류병으로 숨 막히게 시달리지도 않았고.
세상은 바뀌어도 지난날의 소중한 추억은 변함이 없으니, 흐린 날을 다독여줄 행복에너지로
잘 숙성되어 혜란님의 인생후반기를 고운 빛으로 채색하시길.
간만에 글 올려 준 보리 친 그림이 전과는 다르게 밝아 졌음은 계절 탓인감...우찌 우리 살아온 정서를 그리 그림 보듯이 정하게...각 쥬스
혜란 친
첨삭하면 봄이면 고개 넘어 동네 어귀로 들어오는 나무꾼 내음,
그리고 여름이면 지금은 불량식품이지만 소금과 함께 돌려 나오는
계란 닮은 얼음과자와 함께 빨강 노랑 주홍의 비닐
그래도 우린 그런 것 먹고도 지금까지 잘 살아 왔음을 감사하면서
증말 격세지감을 느끼면서 ...
어쩌면 모든 게 부족했던 그 시절의 돌이켜보면 순수했던 생활방식이
어른이 되어 삶의 깊이를 더하는데 큰 보탬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보지요.
세상도 인생도 눈높이만큼 보이고, 느끼는 것만큼 깨닫는 것이려니..
정향 나무가 라일락의 일종이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저도 현재보다 과거를 더 좋아하다보니 몇일전 ,
여러 체널을 돌리다보니 처음 보는 체널에 거의 삽십년전 연속극을,
재방영하기에 보니 새삼 옛날이 그리워지고 그시절이 얼마나 좋았던가 싶더군요,
어린시절 잣치기 비사치기 강건너뛰기 하며 놀던때가 그립답니다,
삔먹기도 했지요,
요즘은 공부가 전부라 동네에 아이들이 뛰노는것을 볼수가 없더군요,
그만큼 자라는 아이들에게 감수성이 메말라 가는 것 같아 안타깝지요,
그렇습니다. 사람 사이의 직접 소통은 줄어들고 틈만 나면 스마트폰에 매몰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문명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스마트폰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서로 어울려 놀고,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게 하는 것. 정서 함양과 원만한 인간 관계
형성을 위한 기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장과정에서의 곱고 다양한 기억들은 평생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보약이 될 수 있고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온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래도 어린시절 우리가 전기도 없이 원시적임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 하더니
지금 이시대는 모든 첨단 과학이 인간을 지배하다싶게 밝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1900년대와 2000년대를 아우르며 시대의 변화 무쌍함을 몸소 실현하며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가히 축복받고 사는 우리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가끔은 그옛날 지금쯤 보리 꺾어 모닥불에 구워먹고 마른 보릿데로 철사줄 을 기둥으로 소쿠리며 잡다한 소품 만들고
산과 들을 내집 마당처럼 뛰놀아도 전혀 두렵지 않던그시절..
어느새 머리엔 하얀 서리가 내리고 인공적으로 재배한 화려한 꽃 들에 취해서 자연적으로 피고 지는 예쁜 정향나무를 사진으로 만 보고 있네요.
건강 관리만 잘 하면 100세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요즘 세상 살이는 하수상하여 바깥나들이의 두려움도 감히 누구와 불편한 관계를 가지는 것도...
어쩌면 친구님 처럼 자연을 벗삼아 흙냄새를 사랑하며 지내는 방법도 좋아보입니다.
올해는 무더위가 일찍부터 기승을 부립니다.
친구님 건강에 각별히 주의하시고 심심 하시면 월말 정모에서 뵈올수 있음 하는 바램 입니다. 안녕을 빕니다.~~~
디지털 문명의 편리함에 매몰된 현대인더러 무턱대고 옛날의 불편하던 시절로 돌아가라면 억지이겠으나,
편리함의 블랙홀에 갇혀 정신적으로는 저마다 섬처럼 고립되어 혼자만의 블루병 환자가 늘어간다면..
육체와 정신의 조화가 행복의 필요조건이듯, 심신의 평안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조화로움에 관한
저마다의 판단과 선택이 중요하겠지요. 산골에서 산다고 자연이나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팔자 좋은 인생은
못되고, 생활인으로서 이리 저리 매이다보니 운신이 그리 자유롭지는 못하나 뵈올 날이 있겠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