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랑(고전13:1-13)
오늘은 사랑하는 나의 후배들에게 값진 하나님의 말씀을 남겨주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은 제목설교나 주제설교를 좋아하는 목회자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늘 성경 말씀을 보면서 문맥의 흐름을 보지 않고, 단어 하나가 말하는 의미나, 말씀을 성도들에게 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나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면서 설교를 준비하기에 본문이 말하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본문 설교와 강해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만이 그 깊은 뜻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과 14장은 서로 연관성을 가진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단편적으로 말한다면 아볼로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어떤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그로 인하여 고린도교회 다른 성도들이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을 바로 이해하려면 목회자 바울과 아볼로, 고린도교회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복음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도 자신이 대단한 목회자처럼 들어내기를 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와 후서를 기록하여 보내기 전에 이미 아볼로는 고린도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에베소로 도망와서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바울 앞에 와서 앉아 말씀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보아야 말씀이 바로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고린도전서와 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모든 표현이 어떤 의미로,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전 2:4-5)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이 말은 아볼로의 목회를 염두에 두고 바울 자신의 목회를 설명한 말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하나님께 배운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배웠기에 아볼로 처럼 자랑하지 않고 오직 복음만 전하는 목회를 한다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아볼로가 잘못한 것으로 인하여 생겨난 고린도교회의 고통을 소개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은 그 일부를 설명해 드리고 고린도전서 14장을 강해하면서 전체를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고린도교회에서 방언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누군지를 먼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아볼로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내가 사람의 방언과”라고 말합니다. 이는 잘못한 아볼로를 언급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울의 배려가 담긴 말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오늘 성경을 통해서 성령님이 우리에게 적용시키시려는 그 말씀이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에 복음의 말씀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가 잘못을 하면 대놓고 지적하지 않고 가슴에 품고 가르치는 목회자였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내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에 방언을 통해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아볼로인데도 자신을 언급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세상의 모든 방언을 말 할 수 있는 실력자이고, 심지어 천성에 속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자고,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성도들의 영혼을 살리고, 풍성케 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모든 행위는 무익한 것임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아볼로처럼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는 모든 설교는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설교를 듣다보면 귀에 들리기는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는 새겨지지 않는 설교를 들을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인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을 자랑하려고 한 설교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영혼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자기를 들어내려는 것이 있다면 사단이 방해할 것입니다.
때로는 성도들의 신앙과 영혼을 유익하게 하려고 준비하지만 자신을 들어내려고 하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든 행위는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지만, 우리 뒤에서 방해하는 사단이 열매를 맺을 수 없도록 역사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아볼로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과 그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사랑으로 그들의 모든 고통을 이겨내기를 교훈합니다.
고린도교회가 평안의 기쁨을 누리려고 한다면 아볼로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이 그들의 잘못된 것들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을 씁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은 그런 그들을 용서하고 하나가 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교훈하기 위한 말씀이 4~7절 말씀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바울은 먼저 괴롭힘을 당하던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그리고 아볼로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바울의 이 말이 보이고, 들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바울은 고린도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바울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리십니까?
이 바울의 음성이 들릴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는 것이 들려질 것입니다.
천천히 말씀을 다시 묵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보일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아볼로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신앙 수준을 설명합니다.
(고전 13:9-12)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바울은 아볼로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신앙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1. 부분적으로 아는 신앙이다.
2. 갓난아이와 같은 수준이다.
3. 희미한 거울로 보는 수준이다.
바울은 그 마음에 복음이 있었기에 뚜렷한 것이 무엇인지,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그리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보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것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런 것이 있음도 알지 못하고, 가르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이 모든 것이 그의 마음에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바울을 이해합니다. 네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이것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성도들에게 설교하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도 그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마지막에서 성도의 영혼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사랑을 품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함을 결론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하는 나의 후배들이여!
이 설교를 여러분은 처음 들어 보는 설교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충 읽지 말고, 깊이 묵상하며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목회자들이 다른 사람의 글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면 우리가 바울과 같은 목회를 할 수 있어서 우리의 목회가 새로워질 것이며, 한국 교회가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설교를 47년이나 가슴에 품고 고통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1983년도에 나는 이 설교를 썼습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의 공격이 두려워 말하지 못하고 있다가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처럼 죽을 각오를 하고 너는 전하라고 하셔서 큰 교회들의 홈페이지에 올리기 시작했고(당연히 홈페이지에서 강퇴 당하였으며), 많은 목회자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나는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절에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과연 하나님의 선지자였냐”고 그들에게 물을 수 있는 배짱이 생겼습니다.
나의 후배들이여!
이 설교를 몇 번이고 깊이 읽어 보십시오. 여러분의 목회를 바울처럼 바르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우리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것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복음을 바로 전하여 성도의 영혼을 살리고, 풍성케 하는 사랑을 가진 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목회를 하십시다.
나와 여러분의 목회가 복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