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 셋과 지하철2호선 벡스코역에서 열시 반에 만나 장산을 오르기로 하였으나
날씨가 조금 춥다고 여겨 한 친구가 옛 동해선 철도를 걷어내고 산책로를 만든 그린 레일
웨이를 걸어서 기장으로 가보자고 제안하여, 다른 친구들도 동의하여 평지를 걸었다.
날씨가 제법 싸늘하였으나 산책로에 나와 걷는 사람도 제법 많이 보였고 길가 체육시설에
매달려 운동을 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넷이서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니 지하철 세 구역이 금세 지나갔다. 말이 많았던 엘시티 아래를
지나 미포 관광열차 매표소에 이르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봄이라도 온 것 같이 많은 관광객
들이 모여들어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철로를 가로 질러 달맞이 고개 언덕으로 올라갔다.
지그재그로 만든 데크 길 옆엔 곰솔이 우거지고 나무가지에 앉은 부리가 길쭉하게 나온 황색
깃털을 가진 새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달맞이 고갯길의 전망대에 올라서니 푸른 소나무 숲 너머로 잔잔한 바다가 금빛을 반짝이며 펼쳐져
있고 엘시티 빌딩이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아 있다. 그 옆으로 머얼리 광안대교가 그림처럼 걸처져
있었다. 스마트 폰을 꺼내 옆에 서 있는 젊은이에게 부탁해서 기념 사진을 한 장 찰칵 찍었다.
약간 비탈진 달맞이 길을 더 오로니 문텐로드 입구가 나왔다. 입구 계단을 내려서니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았다.
호짓한 숲속 길을 따라 들어가니 두번째 전망대가 나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없듯이
우리 일행도 전망대 뒷편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됐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우린 이미 점심때가 됐음을 배구녕(멍) 시계로 짐작할 수 있었다. 짊어진 배낭을 내려 놓고 배낭 속에
준비해 온 음식을 펼쳤다. 한 잔 마시면서 발 아래 펼쳐진 숲과 숲 나무 사이로 비치는 푸른 바다, 바다
끝 수평선에 머문 듯 떠 있는 아련한 배들, 40~50년전 우리들도 저 배들을 타고 오대양 육대주룰 누비고
다녔지...
두보 초당이 생각났다. 두보초당의 배경과 역사를 살펴보면 아레와 같다.
- 두보는 당나라 때의 대표적인 현실주의 시인이자, 당시의 정치적 혼란과 민중의 고통을 시로 기록한 인물입니다.
- 그는 "시성(詩聖)"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 두보는 천보(天寶) 연간 안사의 난(安史之亂)으로 인해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759년 청두로 이주하였습니다.
-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약 4년 동안 머물며 시를 창작하였습니다.
- 두보는 초당에서 약 240여 편의 시를 지었는데, 이 중에는 그의 대표작인 **〈춘야희우(春夜喜雨)〉**와 〈강촌(江村)〉
-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초당에서의 생활은 가난하고 고단했지만, 자연 속에서 민중과 함께하며 그의 시 세계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든 시기로
- 평가됩니다.
- 원래의 초가집은 소실되었으나, 명(明)나라와 청(淸)나라 시대에 여러 차례 복원 및 확장이 이루어졌습니다.
- 오늘날의 두보초당은 시인의 문학적 유산과 당나라 문화를 기리는 공간으로, 두보의 생애와 작품을 전시하는 기념관,
- 정원, 그리고 전통 건축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중국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아직까지 두보 초당에는 가보지 못하였으나 직장 동료 한 사람은 그곳을 다녀왔다고
기념품을 하나 선물하는 것을 받았던 적은 있다. 알려진 바로는 초가집뿐만 아니라 연못,대나무숲, 정자가 어우러져 시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고 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한 전통적인 중국 정원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언젠가는 한산이 자주 내려와 대나무통에 밥을 얻어먹었다는 국청사, 동정호의 악양루, 두보 초당 등지를 한 번 둘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