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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일보에 어제 '헤라'님이 올리신 글 입니다.
전 전라도 출신도 아닌데 다 읽고나니 눈물이 핑도네요.
이런 걸 '글'이라고 하는 거지 아무 거나 다 '글'이라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마저...
길면 길고 짧다면 짧은데.... 쉬운 교양수업 듣는다 생각하시고 감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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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 고향 전라도
2009.8.10.월요일
인간의 뇌
보통 인간은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 다발이 있어서, 양쪽 뇌 사이에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뇌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간질병으로 인한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이 신경다발을 수술로 분리한 환자를 두고 실험을 한다.
환자는 모든 정신 활동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지만, 좌뇌와 우뇌간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태.
이 환자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시야를 분리하고, 오른 눈에는 닭발 사진을, 왼쪽 눈에는 눈 덮인 벌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러 장의 그림을 보여 주면서 방금 본 것과 관련된 걸 집으라고 하자, 이 환자는 오른손으로 닭, 왼손으로 삽의 그림을 들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논리적이다. 닭발과 닭. 눈 덮인 벌판엔 삽.
문제는, 이 환자에게 왜 그 두 사진을 집었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사람의 논리력을 관장하는 왼쪽 뇌가, 의심 없이 이렇게 답한 거다. “닭은 닭발하고 당연히 관련된 거고, 또 닭장을 청소하는 데 삽이 필요하니까.”
‘대체 왜 이걸 내가 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충분히 답할 수 있잖나. 근데 그러지 않았다. 이게 자기가 거친 사고과정이라고, 정말 거짓 없이 믿고 있었다.
이건 인간의 사고 과정의 허점을 드러낸 매우 유명한 실험이다.
그 시사점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의 뇌는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는 거다. 아무리 명백한 거짓이더라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거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을 확률은 극히 미미하다는 거.
내가 내 행동과 감정을 정당하다고 믿는 만큼이나, 나랑 극단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확신한다.
이명박이 스스로의 정당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는 것처럼. 내가 옳다 믿는 건 어떤 바보라도 할 수 있고, 당대의 현인들조차 지금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말 참 많이 남겼다.
이를 극복할 방법은 끊임없는 의심과 회의, 그리고 내 행동이 가져온 실제 결과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다. 깊이를 만들려면 내 신념을 잠시 접고, 사안의 모든 면면을 동등한 무게로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게, 지성이다.
내 고향
뜬금없이 뇌 과학 이야기 하다가 웬 고향 타령이냐고. 좀 기둘려 바바. 가다 보면 다 수렴된다 (안 되면 할 수 없고).
6시 내고향이라는 프로그램 들어들 봤겠지. 91년부터 자그마치 18년 간 장수하고 있는 KBS 1TV의 간판 교양 프로그램.
방송국 홈피에 떠 있는 이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 요런 자락이 있다.
“고향을 떠난 도시인들의 각박한 삶에 위안을 주는 동시에 자기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다양한 문화에 접하게 하는 역할...”
그래, 자기 고향에 대한 자긍심. 오늘 이 이야길 조금 해 보자.
보성 녹차밭, 벌교 꼬막정식, 순천만 갈대밭, 고흥 소록도, 조계산 송광사, 구례 지리산, 2012년 엑스포 개최지 여수, 광양제철과 광양항….가보진 않았더라도 최소한 몇 가지 정도는 들어 봤으리라.
저기가 내 고향이다. 일명 전남 동부권.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을 건너, 화개장터와 박경리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경상남도 하동 땅이 이어지는, 전남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땅자락.
자랑 좀만 하자. 좋은 곳이다. 강세는 유려하고, 공기 맑고, 아기자기한 시가지에, 시장통 밥집 가서 비빔밥만 시켜도 확연히 차별화되는 깊은 맛과 푸짐한 반찬에 타지인은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여튼 6시 내고향이 91년부터 방영됐다니, 내 기억이 아마 맞을 게다.
당시 나 어릴 적인데, 이따금씩 채널을 돌리다 보면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나이 자작하신 아지매나 아저씨들 인터뷰가 나오곤 했다.
그리고 꼭, 마을을 소개하는 자막이 뜬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본 적 없는 대한민국 땅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안다.
미디어는 세상을 보는 창이잖아.
근데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봤던 모든 이런 류의 프로그램에서, 왠지 내가 살던 지역의 마을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 때 유일한 미디어는, 활자매체를 제하면 공중파 방송밖에 없었다. 지금보다 영향력이 훨씬 더 막강했던 시절이다.
TV라는 게 그때 얼마나 대단하냔 말이다. 거기 내가 사는 곳이 나오고, 거기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해주면, 설사 내용이 나랑 아무 관계 없더라도 뭐나 된 듯이 으쓱해질 것만 같았다. 난 스무 살 넘어서까지 그런 재미를 느껴보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 버렸다.
어릴 적 그 지역이 TV에 나오는 유일한 시간은, 9시 뉴스 중 중앙방송 송출이 마무리되면 나오는 ‘전남 동부권 뉴스’ 였다. 칙칙한 화면발, 촌스러운 아나운서에, 뉴스 자체도 듣잘 것 없는. 그건 자랑스럽지 않더라. 재밌지도 않고. 오히려 자괴감이 들게 했다. 아, 요 근처엔 TV에 나올만한 가치가 있는 게 도통 없나보다. 왜 내가 사는 곳은 그렇게 별 볼일 없을까.
그러다 어느 날,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보성 녹차밭이었다.
보성 녹차밭. 요즘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는 전남 동부권에서도 가장 이름난 관광지다. 주위에서 웬만한 지인들 한 번쯤 워크샵이니 주말여행이니 해서 다녀왔더라.
요즘은, 말이다. 적어도 내가 대학 새내기이던 해만 해도, 출신 도시를 말하면 거기가 정확히 어딘지 아는 이는 드물었다. 도시는 커녕 “전남? 나 거기 한 번도 안 가봤는데”라는 대답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니 보성 녹차밭의 부상은 나로선 상전벽해, 격세지감이었지.
실제로도 그랬다. 이 곳을 방문한 관광객은 2000년 전까지 한 해 수십만 명에서 이후 매년 두 배 가까이 증가해 2004년 육백만을 돌파했고 아직도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백만 미만과 육백만. 지역 관광산업에 미치는 파급력 수준에서 비교도 할 수 없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보성 녹차밭 근교 관광 레저 산업은 갈수록 발전해서, 촌티를 벗고 제법 말쑥해졌다.
지역 주민 생계도 크게 나아졌고. (뭐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부작용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데 보성에 녹차밭이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반 세기 이상 전이다.
아직 일제시대였던 40년대 초에 일본인들이 조성 사업을 시작했고, 몇 차례 굴곡을 거쳐 70년대에 이미 현재의 녹차밭의 형태와 산업생산시설을 갖추었다. 그런데, 이 녹차밭이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얼추 2000년대.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의 갭이 있다. 우째서?
일도양단, 답하고 보자면, 그거야 미디어에 보성이 소개되기 시작한 게 그 즈음이기 때문이다.
어디 뭐가 있는지 우째 알고 사람들이 찾아 다니겠나. 미디어에 나와야 그게 어딘지 알지. 보성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서 자란 나도 2000년대 이전까지는 보성 사람들이 녹차를 키우는지도 몰랐다.
보성 녹차밭 뿐 아니었다.
그 즈음 TV, 잡지 등 미디어에 속속 호남 지역의 지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남 땅끝마을, 광양 백운산과 고로쇠물, 구산리 엿마을, 여수 백도. 좀 더 넓게 보면 굵직하게 무안 국제공항, 변산반도, 무주 리조트...리스트는 봇물 터지듯 불어 갔다.
그쪽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도 주위에 늘어났다.
일 년에 수 차례 부모님 댁에 다녀올 때마다 일취월장하는 관광 인프라에 깜짝 놀랄 정도였다.
어쨌거나 그래서, 나는 스무 살이 넘어 처음으로, 내 고향이 별볼일 없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6시 내고향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은가,
도시민의 고향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려고 했다고. 표현 방식은 교과서적이어도 그 영향력만은 생생한 실제다.
이야기 한 자락 더 하자. 이번에는 좀 더 뻔한 이야기다.
대학 졸업 직전 지인과의 연으로 무역회사에서 잠깐 일을 맡은 적이 있다.
제지원료를 수입해다 국내 제지기업에 파는 일이 업무의 주를 이루는 조그마한 회사였다. 사무실에 있는 남자 직원들은 주로 지방에 소재한 제지기업들로 매일 출장을 다니며 주문을 따 오고, 여직원은 사무실에 남아서 해외 거래처 관련 업무를 처리했다.
조그만 사무실 벽에는 전국에 소재한 제지기업을 핀으로 표시한 한국 지도가 붙어 있었다. 주로 수도권에 촘촘하게 박혀 있고, 대구를 중심으로 경북과 경남에도 최대 거래처를 포함해 수십여 개가 있다. 충청권과 강원권으로 가면 적어져서 합쳐서 열 손가락으로 꼽을 만했다.
그리고 광주 옆에, 거래량이 소량으로 드문드문 나오는 작은 기업이 있었다. 전체 고객사 중 가장 규모도 작고, 아직은 불안해서 언제 망할 지 모른다 했다.
거기 꽂힌 그 핀이, 전남북과 광주를 합쳐 유일한 거래처였다.
이제 마지막 에피소드.
아직 혀도 잘 안 돌아가는 어린애던 시절, 80년대 초의 어느 날. 광주 할머니 댁에 놀러 왔다가 가족과 함께 시내에 나온 차였다.
거리에 흑백 스냅사진이 잔뜩 걸린 긴 검은 판넬을 들고 서 있는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 중 머리가 반이나 으스러지고 얼굴이 퉁퉁 부은 사체의 얼굴 사진이, 하필 내 눈높이에 붙어 있었다.
그 사진들이 뭔지 알게 된 때는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후다. 다만 한 가지는 그 나이에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거.
이 사람은 지금 그게 억울해서, 이 판넬을 들고 나와 있다는 거.
그 머리가 반 부서진 사체는 내 사촌언니를 닮은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간, 그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밤에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지역감정과 김대중
이제 무슨 이야기 하려고 하는지 대략 눈치 챘을 거다. 아, 지역감정. 누구나 나쁜 거 알고 누구나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식어 빠진 이슈.
근데 언젠가, 지역감정에 관한 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말 많이 한 사람일 강준만 교수가 이런 이야기 했다.
지역감정이란 단어 자체가, 나쁘다.
지역 감정이라 하면 마치 두 지역 사이에 악감정이 존재하는 게 문제고, 그 악감정만 서로 버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느냐. 근데 그거 아니다,
이거, 지역 차별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나는 좀 더 쉬운 말로, 이건 ‘전라도 따돌리기’라 불러야 맞다 본다.
왕따 주도하는 애, 당시 여당과 권력 집단. 당하는 애, 전라도. 이에 적극 동조하는 애들, 경상도. 방관하는 대다수, 나머지 시도. 완벽한 비유 아니냐. 이걸 ‘개인 감정’이라고 부르면 좀 왜곡이잖아.
일단 시작. 주도 세력이 왕따를 주도하는 이유는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러면 이 권력에 붙는 동조자가 생긴다. ‘주류’에 편입되었다는 안도감을 위해, 이들은 이지메에 동참한다.
나머지 대다수는 무심하게 침묵. 영향력 있고 성깔도 있는 주도 세력에게 굳이 반감을 살 이유도 없고, 별 좋아하지도 않는 왕따에게 굳이 말을 걸어 줄 이유도 없다.
다음은 전개. 주도 세력은, 왕따가 왜 왕따 당해야 마땅한지 그 이유를 주위에 끊임없이 공급해야 한다.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세 이탈을 막아야 하니까.
쟤는 잘 안 씻고 다니나봐. 냄새나는 것 같지 않냐? 지난번에 보니까 양말에 구멍 났더라. 쟤 3년 전에 같은 반이던 애한테 들었는데, 체육 시간에 혼자 남아있다 돈 훔쳤대.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별 관계없다. 중요한 건 정당성 확보다.
그럼 이 과정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뭘까.
맞는 거, 체육 시간에 짝 못 구해서 성적 안 나오는 거? 아니다. 육
체의 고통, 실질적 불이익은 차라리 견딜만 하다.
가장 가누기 힘든 것은 스스로의 존재감이다. 가치 없는 인간이 된 느낌. 자괴감. 무자비한 왕따를 매일 무신경하게 버텨 낼 이는 없다.
자살할 게 아니라면,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틀렸고, 그들이 나쁘고, 나는 옳다는 확신이 절대 필요하다.
이 또한, 그 논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관계없는 거고.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 인간의 뇌는, 그래서 한 쪽은 권력을, 한 쪽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논리를 생산하고 이를 신념화한다.
여기서부터다. 호남의 왕따 멘탈리티가 특별해 지는 게.
왜냐면 얘들은 하필, 정말 내가 옳다 믿을 만 했거든.
광주가 거기에 피로 도장을 찍어 버렸다.
여기서 갈렸다. 중립이던 방관자들, 이제 외면하기 힘들어졌다. 원죄와 부채의식. 따돌림의 부당함과 그 논리의 허구성, 나의 도덕적 우월감을, 딱 그 상처가 잔인했던 만큼 완벽하게 확보했다.
왕따 주도세력의 논리는 저 쪽의 방어가 굳건함에 비례해서, 더욱 과격해지고 교묘해졌다. 그리고 동조세력 중에는 분열과 침묵의 자조감이 조금씩 형성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한 가운데에 김대중이 있었다.
김대중과 전라도. 전라도와 김대중. 14대 대선에서 광주 97.3%의 레전드급 득표율을 기록한 관계.
지금 들어도 징그럽다. 휴. 어떻게, 득표 조작 없이, 이런 게 가능한가.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복합적이다.
근데 핵심은 이거다.
그는 하필 정말로, 괜찮은 정치인이었다는 거.
이건 인정하고 가자. 개별 정책의 옳고 그름, 이념적 지향성과 그의 한계를 다 떠나, 국가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철학, 지성, 국제적 명성과 영향력 면에서 김대중만한 정치인은 아직 한국에 없다.
자아도취 김영삼이나, 도둑놈 노태우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부분이 억울했던 거다.
전라도는. 김대중은 광주의 한을 살풀이 해줄 원령사도 아니고, 호남을 마침내 경제발전시켜 배불려 줄 복수혈전의 용사도 아니었다.
그런 걸 원했더라면 97.3%의 득표율은 안 나왔을 거다.
도덕적 우월감 하나로 모든 걸 견뎠던 과거가, 순교자의 과거가, 너나 나나 똑 같은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어 버리잖아.
호남인들에게 그래서 김대중은, 내편이 아니라, 정말 괜찮고도 아까운 정치인일 뿐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김대중은 호남이 겪은 모든 일의 살아 있는 상징이자 가장 큰 희생양이고, 그가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
자신들의 지지가 거기에 한몫 한다는 깨달음. 그래서 그에 대한 감정은 애정이 아니라 서러운 미안함이다.
그래서 이들에게 김대중은, 모든 면에서 전국구여야만 했던 거다.
김대중이 전라도 보스가 아닌 전국의 대통령이 되는 순간은 이들의 도덕적 우월성이, 김대중의 정치인으로서 경쟁력이, 인증 받는 순간인 거다. 왕따를, 벗어나는 순간인 거다. 그
래서,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더라도, 호남을 편애하거나 상대를 박해해서는 안 되었다.
그럴 인물이었으면, 그런 걸 바란 거였다면, 97.3%의 득표율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호남인의 자존심과 상처, 호남인이 그에게 건 무거운 기대를 그만큼 절절히 이해한 정치인은 없다.
민주당이 탄핵 후폭풍으로 참패했던 17대 총선에서 오판했던 부분도 여기다.
그들은 이해 못 했다. 전라도의 자존심을. 이걸, 지역 출신 인사에 대한 지지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노린 투표로 봐 버렸다.
전라도의 표심은 도덕적 우월감에 대한 자존심, 이거 하나로 모두 설명된다.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이 낮았던 이유는, 하필 또 그 놈이, 정말 나쁜 놈이었기 때문인 거고. 그 논리를 공급한 것은 진보언론이지만.
이명박이 아직 서울시장이었고, 청계천에 대한 PR 캠페인이 전국을 휩쓸던 무렵, 우리 아버지가 어느 날 이런 이야기 하시더라. “거 이명박이가 괜찮은거 같어…대통령 해도 되겠어.”
화들짝 놀란 나는, 청계천 복원의 사기성, 환경파괴적 무식한 개발논리, 정치적 꼼수, 등의 용어를 동원해 그 놈은 안된다고 애써 설명했지만, 소용 없더라.
그러다 대선이 가까워 오던 어느날,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이명박 이놈은 알고보니 진짜 나쁜놈이여…그 BBK가 지 회사지…전과도 한두 껀이 아니고… 이런 나쁜놈이 대통령이 되면 안되제.
그리고 요즘, 서울에만 올라오시면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아버지는 참 당당하다.
그 이명박이가 나쁜 놈 아니우? 그놈을 대통령으로 뽑은 서울 사람들이 좀 책임을 져야 안 되겠수. 이 자존심. 이거 하나로 전라도는 버텨 온 거다.
여기까지가,
지역감정에 대해 내가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한계다. 더 이상은 이야기할 수도 없고 이야기해서도 안 된다고 느낀다.
모든 기득권과 소외에는 항상 이 차별의 문제가 등장한다. 성별, 인종, 외모, 학벌, 배경. 전라도에 대한 차별이 그렇게 특별한 것만도 아니다. 우리 집 앞에 전라디언은 물러가라고 스프레이로 낙서가 되어 있는것도 아니요 내가 강제노동수용소로 끌려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경상도 출신들에게 무슨 책임감을 느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한 것도 아니다.
책임공방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들도 모든 소외와 권력이 상호작용하는 현장에 항상 발생하는 일종의 역할 분담자이자 어찌 보면 희생양일 뿐이다.
우리 모두는, 본의 아니게 공동체로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개중 누군가는 더 많은, 누구는 더 적은 차별을 경험하겠지. 뭐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니까.
개중 운 좋은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상대적 혜택인 줄도 모르고, 자신이 누리는 것이 피해자의 그늘에서 만들어진 것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리라. 그러나 이걸 알아야, 내가 그 희생자들을 만든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벗어날 수 있다.
우리를 희생양으로 만든 이들이 주입하는 논리에서, 혹은 자존심과 우월감의 주술에서.
이게 나는 모든 지성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목표라고 본다. 이래야 우리가 대립과 갈등을 넘어 소통하고 화합할 수 있다.
이게 오늘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이유다.
가끔 이런 이야기 듣는다. 경상도가 민주당 찍을 테니, 너희도 한나라당 좀 찍으라고. 그러면 전라도인은 이렇게 답한다.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의 민정당의 후신을, 대체 무슨 염치로 우리에게 찍으라고 하냐고.
그러나 광주로 확보한 도덕적 우월감의 자존심으로 침묵만 해서는, 대립은 깊어지기만 한다.
그리고 그 궁극적 피해자는 결국 다시 전라도고. 이걸 털어내고 싶었다. 왕따가 해소되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이는 사실 왕따당하는 학생 자신인 거다.
광주의 아픔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아픔이지, 전라도만의 아픔이어서는 안 된다.
김대중의 성과와 한계는 우리 모두가 같이 논해야지, 한쪽은 성과만을, 다른 한 쪽은 한계만을 목청 높여 외쳐서는 안 되는 거다.
그 때가 오면, 전라도에서도, 한나라당을 지지할 이들이 나오리라. 자연스럽게.
이게, 나의 성장기를 지배했던 전라도인으로서 정체성과 상처를 내가 받아들인 방법이다. 당신은 어떤가.
P.S. 어쩌다 보니 매번 PS를 쓰게 되네요. 이 글을 마무리하던 중 김대중 전대통령의 상태 악화 소식을 연신 들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당신과 저는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제 여고시절 담장 너머 있는 남초등학교에 방문하신 적이 있었드랬지요. 온 시내의 검고 큰 차란 차는 모두 모인 것 같았어요. 인산인해를 이룬 운동장 앞쪽의 초라한 단상에서 말씀을 마치신 후, 몇몇 여고생들이 불려 나갔습니다. 단상 가운데에 서 계신 당신 앞에 하필 제가 섰고, 가슴 두근거리며 미리 받은 화환을 목에 걸어 드렸습니다. 기억은 못 하시겠지요.
이런 글을 썼지만 당신의 병환 소식에 저는 당신의 성과도, 당신의 한계도, 아직은 냉정하게 논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아직은 그게, 제 몫이 아닌 세상이라 그런가 봅니다.
그냥, 쾌유를 바란다는 말만 드립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헤라 (hera-_-@hanmail.net)
첫댓글 정말 멋진 글입니다. 어릴적 먼발치에서 딱 한번 뵌 김대중 대통령님 쾌유하시길 빕니다. 아직은 당신이 이 땅에 남아계셔야 할 때입니다. 당신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멋진 글입니다. 노대통령님이 그렇게 가신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님은 아직 가실 때가 아닙니다. 많이 밝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누구로 인해서 다시금 어두워진 땅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부디 회복 하십시오.
잘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총수님이 많이 뜸하신듯...
아..글의 중반부에서는 혼자 박수를 쳐가면서 읽었네요. 정말 정말 좋은 글입니다. 감동적이네요.
아 정말 멋있는 글이네요. 김대중대통령님 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 좋은글을 읽고도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꽉 막혀버린 경상도권 친구들 모습이 떠올라서 가슴이 답답해지네요... 전라도사람은 저래서 안된다는둥, 뭐가 어떻다는둥... 김대중 전 대통령님 어서 쾌차하시길..
좋은 글인것 같긴 하지만 , 모든 원인과 결과를 떠나서 지역감정에 대한 글인것 같아 제겐 좀 그러네요..
글 안에서 선과 악이 극명하게 나뉘네요 -_-ㅋ 가해자와 피해자...그리고 피해자 입장에서 적은 글...뭐 그런거죠
그래서 글쓴이 본인도 글 초반부에 뇌실험 이야기를 하고 있지않습니까. 님 같은 분들이 무슨 생각할지 다 아니까요. 예상대로 반응이 나오니 역시 헤라님 글의 대단함이 더 부각되는군요.
긴 글인데 한 자도 안 빼놓고 정독했습니다. 좋은 글 가져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짠한게 올라오는 글입니다..
아...
저 전라도가 공향인데....그와 같은 시스템에서 모두가 희생양이었다는 말이 깊게 공명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