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사농공상의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애비나 에미가 남의 집 종이면 자식도 종으로 태어나는 운명이었다.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거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를 움직이는 선원은 종놈이나 다름
없는 제일 핫빠리로 말하자면 종놈에 버금가는 뱃놈이었다.
목선에서 강선으로 바뀌고 증기기관이 등장하자 기술이 필요하게 되고 국가에서는
자격을 가진 자에게만 선박을 운항케 하는 면허를 발급하게 된다. 근대화와 더불어
우리나라에 해기사가 등장한 것은 왜정시대 일본으로 유학 가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해방후 해양대학이 설립된 이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이 나와 선박회사에
취업하게 되었으나 탈 배가 없어 놀거나 중.고교 교사로 나간 사람들도 많았다.
뱃놈에서 뱃님으로 신분 상승이 된 것은 1960년대 중반 외국 특히 일본과 미국으로
선원 송출이 이루어지고 나서부터이다. 당시 송출선원들의 임금은 국내선의 3배 정도로
높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군에서 제대를 하고 송출선원으로 나간 때가 75년도였는데
1년 타고 모은 월급으로 시내 변두리에 대지 40평, 단층짜리 집을 살 수 있었으니까 배를
탄다고 하면 한때는 돈을 많이 벌이는 직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선원들은 물 위에 뜬 부평초, 서독 광부나 간호사들은 나라가 어려울 때 외화 벌었다고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선원들은 높은 파도와 싸워가며 벌어들인 외화가 한해에
7억불로 당시 가공무역 10% 이득으로 치면 총수출액 70억불과 맞먹는 막대한 금액이다. 그런데도
선원들은 전 세계 바다 위에 뿔뿔이 흩어져 있고 광부나 간호사는 서독 한 곳에 모여 있는데다
박대통령까지 방문하여 위로를 하고 했으니 그들만 고생한 것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어제 친구 넷이서 문텐로드 둘레길을 걸어면서 전망대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어 동기생
카톡에다 올렸더니 발목이 아파 동행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던 한 친구가, '여기가
어딘고?'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행하지 못한 또 다른 한 친구가 ' 사진에서 중시선을 한번
그으 보소' 라고 했다. '중시선'이란 짠물 냄새가 나는 뱃놈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용어로 배를
내린지 40년도 더 되어도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온 것이리라.
즉 중시선( 重視線 / transit line)이란 두 물표가 일직선 상에 겹쳐 보일 때 그들 물표를
연결한 직선을 중시선이라고 하며, 이와 같은 중시선은 위치선 된다. 이러한 중시선으로
자선(자신이 탑승한 선박)의 위치를 구할 때 사용하는데 어떤 선박이 두 개의 물표를 중시선으로
관측하였다면 이 두 물표를 지나는 직선 위의 어딘가에 그 선박이 있게 된다. 특히, 관측자와 가까운
물표 사이의 거리가 두 물표 사이의 거리의 3배 이내이면 매우 정확한 위치선이 된다.
중시선은 선위를 측정하는 이외에도 좁은 수로를 통과할 때의 피험선(위험물을 피하는 선박)
마그네틱. 자이로 컴퍼스의 오차 측정 등에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