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을 뜻하는 말로 만들어진 단어들은 무수히 많다. 삼각형, 삼다도, 삼봉리, 삼국지 등…. 심지어 세시봉이란 단어도 셋이란
뜻인 줄로 착각까지 한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나의 관심을 끌게 된 단어는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이다. 트리플 크라운은 1930년 미국의 3개 경마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경주마의 새끼가 1935년 3개 경마경주에서 우승하면서 붙여진 경마 용어로, 현재는 여러 스포츠 경기
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야구에서의 트리플 크라운은 한 시즌 동안 투수가 방어율· 다승· 탈삼진을, 타자가 타율·홈런·타점의 주요 3개 부문을 동시 석권
하는 것을 말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14차례, 일본에서도 10차례만 달성됐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타자부문 트리플 크라운은 이만수
선수가 1984년에 한 번, 이대호 선수가 2006년과 2010년에 각각 달성한 바 있다. 프로골프에서는 한 해 동안 디오픈(잉글랜드),
US오픈, 캐나디언오픈에서 우승하는 것을 말하는데, 역대 달성한 선수는 리 트레비노(미국), 타이거우즈(미국), 로리 매킬로이
세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축구에서는 한 팀이 정규리그의 리그 컵, 각 국가의 FA컵, 지역별 챔피언스 리그 중 3개 대회에서 우승
하는 것을, 배구에서는 후위공격, 블로킹, 서브로 각 3점 이상을 획득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 한다.
내가 아는 분 중에 스포츠 선수는 아니면서도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용어에 딱 맞게 기록을 갖춘 사람이 또 있다. 세상에 그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분이지만 이제 공개를 하고자 한다. 그 분은 다름 아닌 우리 부모님이시다. 사실은 나도 정작 부모님이 그런 대단
한 기록을 보유하고 계신지는 몰랐었다.
작년 가을 쯤, 내왕이 뜸했던 직장 선배 한분이 뜬금없이 전화를 해 오셨다. 운전 중이라 망설이다가 오랜만이라 궁금하기도 해서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거두절미하고 지인들 연락처를 물어보는 것-옛날에 내가 모임의 연락책이었다-에 답변해드리고 내가 물
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고. 그분은 1943년생이라 올해가 희수년(喜壽年)이라면서 자식들 등쌀에 못 이겨 조촐하게라도 희수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식들이 꼭 해야 한다고 강권을 한다고 핑계를 대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반가웠다.
그 선배의 전화를 받고 나는 꿈결처럼 내 형님을 생각했다. 그 선배와 같이 근무할 때 내 형님 보다 한 살 더하신다고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었으니까. 가형은 내년이 희수해가 되는 거였다. 칠순 축하를 놓쳐버렸던 것이 마음에 빚으로 쌓여있던 터였다.
그날 아침 신문을 보던 아내가 ‘당신, 내년이 칠순이에요’하던 말이 겹쳐서 떠올랐고, 게다가 막내 남동생도 1960년생이니 내년이
환갑이었다. 형님과 나는 일곱 해 차이가 나고, 동생과 나는 아홉 살 터울이니 서양에서 건너온 말이기는 하나 정말 묘하게도 맞아 떨
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가 찬 트리플 크라운이 아닌가.
자식들에게 의미 있는 모멘트를 남기신 훌륭한 내 부모님이시다. 비록 일찍들 돌아가셨지만 칠순을 맞는 나이에도 부모님은 그립다.
트리플 크라운의 의미를 잘 새겨서 올 해는 삼형제 함께 멋진 여행이라도 하고 싶다.
첫댓글 럭키 세븐...행운의 숫자. 건강하세요.
환갑,고희,희수가 모였으니 트리플 크라운?
에이 여보시오,나이 먹는 게 뭐 좋은 거라고 크라운 어쩌고 하는 거요?
흰머리 셋이니 삼백이면 모를까.
그라모 트리플 화이트로 할까?
오래토록 건강하셨으면.....
박 충목 선생님께 안부 말씀 올립니다.
아, 재열이 친구가 대흥초등 출신이지? 형이 진주사범졸업하고
첫 발령지가 그 학교였어. 고맙소, 지금은 사천에 계시지요.
박인목 선수, 내가 카페에 잘 안들어오는 사이에 단골 문객이 되셨네.
모친께서 20년 이상 애를 낳아 키우셨네. 요새는 참 보기드문 일이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생기는 대로 낳았고, 또 형제자매끼리 서로 챙기면서 자랐지요.
박선수를 내가 처음 본 기억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고성읍에서 열린 군내 서예대회에서 내 앞에 앉아 반듯하게 붓글씨를 잘 쓰던 친구였지요. 나는 본래 사생대회에 나가기로 했는데 그림은 더 잘 그리는 친구가 있다고 학교에서 서예 부문에 나가라고 해서 마지못해 참석했었지요. 물론 난 입상도 못했고 박선수는 상을 탔던 것 같은데...
백교수!오랜만이요.붓글씨 대회에서 봤다니 나도새록새록 옛날 생각이 나네. 참 오랜 세월이 흘렀구먼. 나도 그때 서예대회와 한글시 백일장에 출전했었어. 남산에서 있었던 백일장의 시제는 "까치소리"였고 장원은 못하고 입상은 했었는데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