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개봉한 영화 ‘복면달호’는 록스타를 꿈꾸던 달호가 복면을 쓰고 트로트 가수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복면가수’라는 말은 1930년대도 있었다. ‘매일신보’ 1937년 4월 15일 자에는 “복면(覆面)의 여가수로 데뷔하여 인기 비등(沸騰)”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본명을 밝히지 않고 데뷔한 ‘미스 리갈’이 인기를 얻어 회사에서 “이만 필 이상의 땅을 받았다”는 내용의 기사다.
미스 리갈만이 아니다. 수십 년 전 이 시기 대중가요 관련 1차 자료를 들여다보다 재미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음반 가사지에 실린 가수들 얼굴 중 눈 부분을 하얗게 지운 사진이었다. “이게 뭐지?” 하며 호기심에 살펴 보니, 그들 이름도 ‘미스 코리아’ ‘미스 리갈’ ‘미스터 콜럼비아’로 특이했다. 음반 회사가 주도한 ‘얼굴 없는 가수’라는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당시 ‘미스’나 ‘미스터’를 이름에 붙인 가수들이 등장했다. 그 시작은 1933년에 영화 ‘아름다운 희생’의 동명 주제가를 노래한 ‘미스 시에론’인 나선교라는 가수다. 하지만 당시 광고에 ‘미스시에론 나선교’라 적혀 있어 애초에 얼굴 없는 가수를 완전히 표방하지는 않았다.
1934년에 등장한 ‘미스 코리아’부터는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을 적극 활용했다. 당시 미스 코리아가 발매한 ‘마의 태자’ 음반 광고에는 “날로 인기가 비등하는 미스 코리아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의문은 경향(京鄕) 각지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신비로운 목소리에 침을 흘리는 청년들이 보내는 꽃봉투(팬레터)가 매일 도착하니, 레코드를 통한 선전이 얼마나 큰지를 미루어 추측케 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미스코리아를 위시하여 미스 리갈(장옥조), 미스터 콜롬비아(박세환), 미스터 태평(최남용) 등이 얼굴 없는 가수를 표방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얼굴 없는 가수를 표방한 것도 아닌데, 무명(無名)이라 어쩔 수 없이 얼굴 없는 가수로 사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가끔은 씁쓸해진다.
‘마마스 앤드 파파스’(Mamas & Papas)의 마마 캐스(Cass Elliot)는 ‘Make Your Own Kind Of Music’에서 노래했다. “우리는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자신만의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해요. 비록 그 노래가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하더라도”라고.
그러니 우리의 노래를 아무도 따라 부르지 않을지라도, 그렇게 얼굴 없는 가수일지라도 우리만의 노래를 부르기로 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얼굴만큼은 알고 있으니까.
장유정 단국대 자유교양대학 교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