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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장교와 판검사는 무조건 사형에 처하고,
면장, 동장, 반장 등은 인민재판에 부친다"
(1950년 6월 30일 포고문,
출처: "정치범은 자수하라"와 "반동분자 처리지침")
2011년의 지금으로부터 61년 전, 1950년 6월25일,
스탈린-모택동-김성주(자칭 김일성)의 계획적인 기습남침에 의해
3년간의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 한국의 영토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련의 스탈린은 소련이 직접 싸우지 않고 중국을 내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모택동과 한반도 전쟁을 개략적으로 합의한 후
김일성에게 중국 동의 조건부 한국전쟁 개시 승인을 했고, 한국전 개전
후에는 중국을 한국전에 끌어들이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했다
“6.25전쟁은 스탈린이 계획·감독하고 김일성과 모택동이 주연과 조연
역할을 한 스탈린의 전쟁이었다. 스탈린은 1949년 중국의 공산혁명
등 변화된 국제정세에서 김일성의 남침의지를 이용해 참전이 예상되는
미국과 중국의 국력 약화를 기도하고, 중국의 대서방관계 개선을 저지
하고자 했으며, 모택동은 통일을 달성한 중국의 위신을 과시하기 위해
참전했다”
6·25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남침 흉계와 스탈린의 중국을 적극 이용한
세계전략 차원에서 발생한 전쟁이라고 말했다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1) “아 !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학살당한 민간인 총 122,799명, 납북자 수 84,532명
▲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인민군과 좌익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총 122,799명
(‘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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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의 경우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경찰이나 군인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을 체포해 그 자리에서 인민재판에 회부했으며
, 체포를 거부할 시에는 즉결처형을 했다.
인민군은 공무원, 군, 경찰, 학자 등 인텔리 계층을 최우선 대상으로
학살했다. 그 대상에는 부녀자와 어린이들까지 대거 포함되었고,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면 가족과 먼 친척까지 몰살당했다.
전라남도' 지역 피살자만 43,511명 (전체의 72.6%)
명부에는 5만9964명의 피살자 가운데 전남 지역에서 피살된 사람이
43,511명으로 전체의 72.6%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전라북도(5,603명), 충청남도(3,680명), 경기도(2,536명),
서울시(1,383명), 강원도(1,216명) 順이다.
그 외 경상남도 689명, 충청북도 633명, 경상북도 628명, 제주도 23명,
철도경찰 62명이 좌익에 의해 피살된 것으로 기록됐다.
전체 피해자 가운데 남자가 44,008명, 여자가 15,95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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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피살자 15,956명 가운데 13,946명이 전남 지역에서 피살됐다.
피살자가 집중된 전남 지역에서도 특히 영광군의 피해가 가장 컸다.
전남 지역 피살자 43,511명 중 절반에 가까운 21,225명이 영광군에서
피살됐다.
영광지역 여성 피살자는 전국 여성 피살자의 절반 가까운 7,914명이다.
지금까지 정리된 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6·25 당시 인민군과 빨갱이
들에 의해 학살당한 목사·신부·장로·수녀들은 신원이 밝혀진 사람만
174명에 달한다. 또한 인민군이 퇴각하며 납북된 종교인들도 184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인민군, 평양 칠골리에서만 2,500여명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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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북한정권은 사람들을 줄로 묶어 총살한, 평양의 칠골리에서
2,500여명, 평양 승호리 인근의 사도리 뒷산에서 4,000명 정도가 학살
당했고,함흥에서는 함흥감옥에서 700명, 충령탑 지하실에서 200명,
정치보위부가 있는 3곳의 지하실에서 300명, 덕산의 니켈 광산에서
6,000명,
반룡산 방공굴에서 8,000여 명이 학살당했다. 또한 함흥시에서만
모두1만 2,000여 명이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다.
(출처: "자유공화국 최후의 날", '지옥유폐 130일
-원산 대학살 사건의 전모', 박계주 著)
▲ 6.25 전쟁 당시 함흥시에서만 모두 1만 2,000여 명에 이르는 무고한
양민들이 퇴각하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학살당했다. 위 사진에서
보는것처럼 인민군의 학살에는 남녀가 따로 없었다.
(사진출처:美 국립문서기록보관청)
이처럼 만인이 보는 앞에서 학살을 당한 민간인이 122,799명
(‘대한민국통계연감’, 1952년 발간)이고, 납북자 수는 84,532명,
전쟁 중에 죽은 민간인이 244,633명이다.
<자료1. 김일성의 대량 학살 책임을 보여주는
戰時하 김일성의 발언 및 지시>
☞ 출처: 공보처 통계국 '6.25 사변 민간 피해 조사표'. 단위 : 명
지역 사망 학살 납치
서울 29,688 8,800 20,738
경기 62,621 7,511 16,057
충북 24,320 3,409 6,312
충남 23,707 5,562 10,022
전북 40,462 14,216 7,210
전남 14,193 69,787 4,171
경북 35,485 6,609 7,534
경남 19,963 6,099 1,841
강원 17,122 6,825 10,528
(교전이 직접 벌어지지 아니한 제주는 제외) /
<자료 3. 북한지역에서 발생한 북한군 양민 학살>
☞ 6.25 피해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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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부터 1953 년 7월 27일까지 한국전쟁의 피해는
다음과 같다.
국가 전사자수 부상
한국 --- 227,800 명 --- 717.100 명
미국 --- 33,747 명 --- 92,134 명
영국 --- 710 명 --- 2,278 명
터키 --- 717 명 --- 2,246 명
오스트레일리아 - 291 명 --- 1,240 명
캐나다 --- 309 명 --- 1,055 명
프랑스 --- 2888 명 --- 818 명
태국 --- 114 명 --- 793 명
네덜란드 --- 111 명 --- 589 명
콜롬비아 --- 140 명 --- 452 명
에티오피아 --- 120 명 --- 536 명
필리핀 --- 92 명 --- 299 명
벨기에 --- 97 명 --- 355 명
뉴질랜드 --- 34 명 --- 80 명
남아프리카 공화국 - 20 명 --- 16 명
룩셈부르크 --- 7 명 --- 21 명
( http://www.geocities.com 에서 )
< 공산군의 병력 손실 >
전투손실 --- 인민군 --- 520,000 명
중공군 --- 900,000 명
비전투손실 (非戰鬪損失) --- 406,000 명
< 일반주민 피해 >=========================
남한 -- 사망자수 --- 230,000 명 (인민재판, 폭격, 등)
실종자수 --- 290,000 명 (拉北 등)
학살자수 --- 120,000 명 ( 인민재판)
북한 -- 사망, 실종, 등 총계 -- 2,000,000 명
(육군사관학교 교재 한국전쟁사 555 쪽,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도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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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지만원
양측의 병력수가 최대였던 1953년 휴전직전의 병력
◈ 국군
- 지상군병력:576,441명
육군:3개군단 18개사단, 해병 1개연대전투단(증강편제)
병력-576,441명
- 해군:1개 함대 병력-15,000명
- 공군:1개 전투비행단, 1개 훈련비행단 병력-11,461명
- 병력총계: 602,902명
◈ 북한군
- 육군:6개군단 18개사단, 7개 보병여단, 7개 전차연대 : 약 45만명
- 해군:4,442명
- 공군:6개사단 19,350명
- 병력총계:473,792명
◈ 유엔군(지상군만)
3개군단, 8개 보병사단, 1개 해병사단:341,628명
◈ 중공군(지상군만)
19개군, 58개 보병사단:약 135만명
내용출처 : 국방군사연구소 1997년발간
☞ 아래는 주로 UN군의 북진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인민군 주력부대가 퇴각하며 발생한 학살이다.
1. 함남 원산(元山)학살
- 발생장소 : 원산시 시내, 신풍리 여왕산, 원산 앞바다, 원산인민교화소
- 방식 : 4명 1개조로 묶어 방공호에 집어넣고 집단총격으로 사살
- 희생자 수 : 1,700여명
2. 함남 함흥학살
- 발생장소 : 함흥인민교화소, 충령탑 지하실, 정치보위부 지하실,
함흥북쪽 덕산니켈광산 반용산 방공호
- 방식 : 집단 무차별 총살, 방공호의 경우 폭사, 우물 생매장, 투석
- 희생자 수 : 12,000여명 (납치자, 실종자 포함되지 않은 수임)
3. 강원 고성(高城) 학살
- 발생장소 : 교외 저수지
- 방식 : 저수지로 몰아넣은 후 폭사
- 희생자 수 : 800명
4. 함남 영흥(永興) 학살
- 발생장소 : 영흥국민학교 운동장, 영흥 방공호
- 방식 : 무차별 난사
- 희생자 수 : 1,520명
5. 함남 순천(順川) 학살
- 발생장소 : 순천 북서쪽 터널
- 방식 : 무차별 난사
- 희생자 수 : 200명
6. 함남 신고산(新高山) 천주교도 학살
- 발생장소 : 인근 과수원(사과밭)
- 방식 : 장작 몽둥이로 집단 가격 후 살아남은 자는 총살
- 희생자 수 : 190명
7. 황해 해주(海州) 학살
- 발생장소 : 해주형무소 등
- 방식 : 독살, 해주지역 우물에 집단 생매장 후 돌로 무차별 가격,
소사(불 태워 죽임)
- 희생자 수 : 아이 업은 부녀자들 포함 1,200여명
(이 학살은 종군기자들에 의해 UN에 보고됨)
8. 함북 갑산군(甲山郡) 학살
- 발생장소 : 양유리 줄버드나무 밑, 부흥리 굴, 지경리 느티나무 밑,
읍내 우물 다수
- 방식 : 총살, 우물에 집단 생매장
- 희생자 수 : 420명
9. 함남 고원군(高原郡) 학살
- 발생장소 : 운곡면 차탄 다리밑, 관평역과 흑토령 중간 저지대,
성내리 뒷산 공동묘지
- 방식 : 무차별 총살
- 희생자 수 : 800명
10. 황해 수안군 학살
- 발생장소 : 운곡면 차탄 다리밑 , 관평역과 흑토령 중간 저지대,
성내리 뒷산 공동묘지
- 방식 : 무차별 총살
- 희생자 수 : 1,100명/ 김필재 (코나스 객원기자)
2) 북한, 휴전협정 이후 주요 도발 221회…무력도발 26회
北 도발로 납치·사망 4119명 '60년간 당하기만 했다
1)항공기 테러 등 1953년 정전 후 무력도발 470건, 가장 빈번한 공격은…
北, 종전 후 470회 도발해 납치·사망 4119명
북한, 6.25이래 60년 간 정전협정 40만 건 위반 :
북한의 대남 도발 일지
- 북한, 휴전협정 이후 주요 도발 221회…무력도발 26회
- 北 도발로 납치·사망 4119명 '60년간 당하기만 했다
- 항공기 테러 등 1953년 정전 후 무력도발 47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