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고증과 과학적 합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고는 하나, 의심할 바 없이 [신기전]의 영화적 위치는 고양된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는 데 우뚝 서 있다. 설계도가 남아 있는 세계 최초의 로켓 [신기전]의 흥분된 이야기는, 조선 건국 초인 1448년, 세종 30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고려조의 유민이 아직 잔존해 있던 건국 초기의 불안한 정세 속에서, 조공을 바치던 강대국 중국의 눈치를 보며 조선이 명나라 몰래 놀라운 병기, 세계 최초의 로켓포를 계발하려고 했다는 가설을 [신기전]의 내러티브는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신기전]의 근거는 지금도 문헌으로 남아 있는 총통도감에 기초해 있지만, [신기전]의 피와 살을 형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인물이나 내러티브는 모두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신기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영화를 보면서 계속 밀려드는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 자료에 의지해야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30년 9월 13일, 세종은 총통등록을 각 도에 전달하며 '화기를 개발하고 쏘는 연습을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지금도 남아 있는 총통등록은 고려말 최무선에 의해 화약이 계발된 이후 화기인 주화로부터 시작된 신기전, 그리고 화기를 나르는 화차 개발법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세종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의 여진족과 싸우며 4군 6진을 만들고 영토확장을 이루는데 신기전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기전은 소,중,대 3가지 종류가 있는데 화살 끝에 화약이 장착되어 있으며 대신기전의 경우 화차에서 발사되면 약 2km 이상을 날아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서양의 로켓 개발보다 무려 300여년 앞선 과학적 쾌거였다.
임진왜란을 거쳐 영조 4년(1728년) 안성에서 반군을 제압하는데 신기전이 사용되었다는 문헌 이후 우리 역사 속에서 실종된 신기전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나타난 것은, 197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박사에 의해서였다. 채박사에 의해 다시 발견된 신기전의 설계도는 세계우주항공학회로부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켓 설계도로 인정받았다. 왜 조선 역사 속에서 신기전의 존재가 희미하게 남아 있고 나중에는 실종되어 버린 것일까? 중국이나 일본 등 신기전 개발을 달가워하지 않던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부국강병의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신기전]은 사료에 기초해서 신기전 개발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국제역학관계를 현실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게끔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영화 [신기전] 속에 등장하는 꿈같은 이야기는, 자료에 의하면 상당 부분 역사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이만희는 이러한 사료를 기초로 작가적 상상력을 작동시켜, 고려 유민의 후손으로 반역죄로 처형당한 아버지의 한을 품고 상인으로 살아가는 설주(정재영 분), 최무선의 손녀딸로 신기전 계발의 핵심 역할을 하는 홍기(한은정 분), 세종의 밀명을 받고 명의 감시를 피해 비공식적으로 신기전 개발에 힘을 보태는 호위무사 창강(허준호 분), 명나라의 감시를 피해 학계의 응축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민간차원에서 신기전이 개발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세종(안성기 분) 같은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었고, 현실적으로 수긍할만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신기전]의 드라마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로 시작된다. 왕의 호위무사 창강은 신분을 알 수 없는 홍리의 신변보호를 상인 설주에게 의뢰한다. 물론 거액의 보수가 따르지만, 창강이 특별히 설주에게 홍리를 부탁한데는 이유가 있다. 홍리는 고려말 화약 제조자 최무선의 딸이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홍리와 함께 조선을 강국으로 이끌 신무기 개발을 하던 중 명나라 자객단의 습격으로 사망하게 된다. 조선이 비밀리에 로켓포를 만드는 것을 경계해왔던 명나라는 사신을 보내어 세종과 궁궐 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세종은 명나라의 감시망을 피해 은밀히 신기전이 완성될 수 있도록 호위무사 창강에게 명하고 창강은 신기전 개발의 키를 쥐고 있는 홍리를 설주에게 맡긴 것이다. 설주는 지금은 상인이지만 그도 역시 역모혐의로 처형당한 아버지와 함께 화약 개발에 참여했던 경력이 있다.
[신기전]은 크게 명나라의 감시를 피해 설주-홍리 커플이 신기전을 개발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묘한 감정이 싹트는 두 사람의 사랑, 명나라와 여진의 10만 연합군에 맞서, 드디어 계발한 신기전을 이용해 조선군이 화려한 승리를 거두는 피날레로 이루어져 있다. [신기전]에는 상투적인 로맨스, 신파에 가까운 사랑 장면이 들어 있고, 극단적인 국수주의적 시각도 있지만, 강대국 아래서 신음하면서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세종의 신기전 개발 이야기가 현재의 우리 상황과 맞물리면서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다.
[신기전]을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대학로의 흥행 작가에서 영화로 무대를 옮기기 시작하고 있는 이만희 작가의 튼튼한 극본 때문이다. 자신의 희곡 [돌아서서 떠나라]를 시나리오 [약속]으로 만들면서 인연을 맺은 김유진 감독과 [와일드 카드]에 이어 다시 작업하게 된 이만희 작가는 [침대에 누워 졸린 눈을 달래가며 조선시대 외교문서를 꾸역꾸역 읽어 내려가다 난 어느 대목에서 벌떡 일어나 고쳐 앉았다. '발칙한 조선은 듣거라' 명나라 황제가 조선의 왕에게 칙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한 말이다. 피가 거꾸로 치솟았다. 발칙한 조선이라니...이런 저급한 말은 하인에게도 아니 쓴다. 아, 조선은 이랬구나...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초라하게 당했구나... 신기전은 울분으로 쓴 작품이다. 이런 굴욕과 울분은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다. 난 신기전을 통해 선조들이 이 강산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약속]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신기전]을 만들면서 김유진 감독은,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연출감각을 보여준다. 웃음을 줄 때와, 긴장감을 지속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할 때의 완급조절을 부드럽게 이끌면서 결과적으로 긴장과 이완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대중적 재미와 흥행력을 갖춘 영화를 만들었다.
[신기전은 우리 능력을 다시 확인 한번 확인해주는 아주 명쾌하고 유쾌한 영화다. 웃음, 슬픔, 액션,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까지… 복합적인 재미를 주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서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김유진 감독은 기대하고 있었다. [온 가족이 볼 수 있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영화를 생각하고 만들었다. 신기전은 그렇게 오락영화를 추구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면서 사실과 허구의 차이점에 대해 묻는 질문에 핵심을 피해나갔다. [신기전은 사극이지만 코미디와 멜로 요소가 많이 들어 있으며, 처음부터 액션, 사랑, 웃음, 슬픔을 한 구조 속에 녹여서 가려고 생각했다. 흥행에 대한 특별한 의식 없이도 당연히 코미디와 멜로가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신기전]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와의 경계를 교묘하게 흔들면서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중적 흥행력과 영화적 재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야사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명백히 허구적 상상력의 소산인 종반부 명나라와의 대결에서, 조선의 비정규군이 사용하는 신기전 발사 장면은 그러나 통쾌함을 안겨준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 그때 만약 우리가 신기전을 진짜 개발했고 그것을 이용해서 만주 땅을 되찾았다면, 혹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을 초토화 시키고 대마도까지 정벌해 버렸다면. 이런 가정은 부질없는 것이지만, 그런 가정이 지금의 현재적 역사에 주는 교훈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의 국수주의적 정서를 자극하며 민족적 자긍심에 기대어 흥행 홈런을 노리는 [신기전]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폄하되어서는 안된다. 결국 미래의 역사라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며, 과거의 역사가 새로운 현실인식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부여한다면 충분한 의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