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실패
실패에는 고통이 수반되고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 할 때 고통은 이에 반하는 것이어서 남은 인생의 전망이 고통뿐이라고 생각할 때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목이 잘리는 장면을 목격하는 경우 단번에 자르지 않고 칼로 고기를 썰 듯이 그렇게 자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몇 초간은 어그러진 얼굴로 비명을 지르게 되다가 숨이 끊어지면 얼굴이 평온해지는 것을 볼 수 있죠.
사소한 이유로 주권자의 권위를 높인다고 자신의 수하에게 군주가 할복을 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칼로 배를 찔렀다고 바로 숨이 끊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길면 몇 분간 심한 고통을 겪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배려하여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려 하는 순간 바로 목을 잘라 준다고 하죠.
아무튼 숨이 끊어진 후의 얼굴 표정은 완전 무표정이 됩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는 확신을 주죠.
고통이 그렇게 피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죽일 때도 배려를 해주는 것입니다. 교수형도 그렇고 심지어 총살도 그렇습니다. 공포의 단두대가 아니라 은혜로운 단두대가 되는 것이죠.
신체적인 고통도 그렇지만 오늘밤 잠이 들면 영원히 깨어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죠. 감당하기 힘든 큰 스트레스가 있는 것이죠.
적에게 잡혀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수 천 명의 궁녀가 강으로 뛰어들었다고 하기도 하고 아시리아가 멸망할 때 그 왕이 보는 앞에 처첩들을 불러 죽였다고 하죠.
그런데 그런 죽음도 지나치게 은혜로운 것이라고 하여 있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은 다 맛보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고 사형도 보는 사람도 끔찍하게 느끼게 하는 고통을 주는 형들이 있다고 하죠.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장 크다고 하지만 실제는 누구나 죽게 되는 것이므로 고통에 대한 공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도 일종의 고통으로 보는 것이죠. 4고라고 하는 것은 생로병사인데 점층법이 사용되었다고 하면 죽음을 가장 큰 고통으로 여기는 것이죠.
실패는 이러한 고통을 불러들이죠.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그 자유,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뭔가를 목표로 하여 의도적이거나 계획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는데 실패하면 온갖 치욕과 고통이 뒤 따르게 되죠. 감금되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어떤 정치인의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이 자실을 한 것으로 보도되어 있죠. 수사를 받게 되면 스트레스와 치욕을 받게 되고 교도소에 가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차라리 자진하는 것이죠. 살아서 누릴 수 있는 쾌락들을 모두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죠. 미래에 대한 큰 불안이 있는데 제대로 즐겨지기나 하겠습니까?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을 텐데요.
한국에도 자유를 잘못 사용한 전직 대통령들이 수감되거나 자살한 경우들이 있죠. 지금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하죠. 치욕을 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이 전력을 다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죠.
주변 사람들을 자결하게 한 어떤 유력한 정치인도 그렇다고 하죠.
그런 유명인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인간들이 뭔가의 실패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것을 불 수 있죠.
자유를 제한받기 싫어 발버둥을 치기는 하는데 그런 상황이 자유의 사용의 실패가 원인이죠.
눈이 멀어 형통하는 길, 성공하는 방법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진리를 외면하고 어둠에 세상에서 헤매는 선택을 하였기 때문이죠.
삶을 실패하는 것입니다. 생로병사 즉 삶 자체를 고통이라고 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이죠. 욕을 하고 술에 취하고 담배를 피워대고 마약을 하고 도박이나 음란물 따위로 잊어보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어떤 전직 대통령은 바람을 피워댔다면서요? 하고 추궁을 받자 솔직하게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서 기분전환해 본다고 그런 것입니다.라는 취지의 대답을 했다는 말도 있죠.
다시, 사르트르의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인간은 필히 자유를 실패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매스컴에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뉴스들이 자유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실패에 관련된 것들이죠.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현재는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해도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나 그의 제자들이 그러하였죠.
그러므로 현재 고통을 겪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의 사용의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꼭 실제적인 죄가 있어서 단죄되고 수감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인간이 창조의 기본 법칙들에 무지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99% 이상이 그렇게 무지합니다.
그러나 0.1% 정도는 그렇지 아니하죠. 그들이 겪는 일시적인 수치, 고통, 심지어 죽음을 당한다 해도 그들은 성공하는 사람들입니다.
결과는, 그러한 성공의 결과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나쁜 것들은 기억도 나게 되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