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가져간 디지털 카메라로 최대한 찍은것이지만 오른쪽 부분에 짤려 있습니다.
크게 한번에 다 못찍겠더라구요~ 이점 양해해 주세요.)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심판" - 배경
시스티나 소성당이 그려진 후 20년이 지나 미켈란젤로는 1533년 중순 당시의 교황 클레멘스 7세로부터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위 벽에 최후의 심판도를 그리라는 명을 받아 시스티나 소성당 전면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작업은 클레멘스 7세 시대에 시작도 못하고 그 다음 교황인 파르네제의 바오로3세에 시작하여 1541년 가을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총 391명의 인물상이 드러나도록 그려졌다. 이 작품을 위하여 맨 처음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벽 부분의 상단에 벽돌을 쌓아 앞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벽면을 만들었는데 이는 원근법을 이용하지 않고도 인물들을 바르게 보이기 위함은 물론 오랜 세월동안 그림을 유지하기 위하여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그림을 처음 의뢰한 클레멘스 7세가 1527년 로마에게는 비극적인 독일의 용병 '란지케네키'의 로마 약탈과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난국이 된 로마교회의 권한인 지상권을 찾는다는 의미로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미켈란젤로거 그린 최후의 심판에 그려져 있는 내용을 전반적으로 보면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상상력, 성서의 일화를 인용, 그리고 당시가 르네상스시기였음을 감안할 때 단테의 신곡내용을 바탕으로 작품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이 작품은 단테의 신곡이 글로 표현되었다면 미켈란젤로에 의하여 그림으로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테가 그 생애 중 만난 사람들을 평가하여 지옥, 연옥, 천국에 그 위치를 매긴 것처럼 미켈란젤로는 시각적 표현에 의하여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의 세계에서 지옥의 세계로 차례를 매겨 나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그림은 크게 천상계, 튜바 부는 천사들, 죽은 자들의 부활, 승천하는 자들, 지옥으로 끌려가는 무리들의 5개 부분으로 나눈다.
1541년 10월 31일, 이 작품이 빛을 보았을 때 전 로마 시민의 경악과 찬탄의 표적이 되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처음에는 모두 나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1564년 1월 트리엔트공의회에서 "비속한 부분은 모두 가려져야 한다"는 칙령이 반포되어 생식기 부분에 덧그림이 그려졌는데 이 작업에는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다니엘 레 다 볼테라'가 작업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작업은 1500년 말부터 거의 2세기동안 계속된다.
시대젹 배경을 다소 이해해야 한다면 당시는 시기적으로 문예부흥이 한참인 르네상스 시대였으며 모든 그림의 표현이 인간중심의 표현으로 나타내어 발가벗은 나체의 모습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르네상스의 사상보다는 한편으로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통속적인 개념, 즉 교회내부에는 비속한 모습을 보일수 없다는 사고가 더 지배하게 되어 후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덧 그림이 그리게 된 것이다
그러난 세월이 흘러 이 작품에 대한 복원에 대한 논의가 무르익어 갈 무렵, 전부 복원이냐! 일부 복원이냐의 의견속에 결국 미켈란젤로의 제자가 손댄 '다니엘 레 다 볼테라'의 덧 그림은 시대적 작품임을 인정받아 그냥 두고 나머지의 덧 그림은 모두 제거하게 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된다.

(중앙의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
중앙의 그리스도는 이제까지 흔히 그려졌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수염도 나지 않은 당당한 나체의 남성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곁에는 성모 마리아가 앉아 아래 있는 인류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두 사람 주위를 성자들이 거의 원형으로 둘러싸듯 서 있다. 여기는 천사에 가까운 성자들의 세계이다. 또한 젊은 예수의 모습으로서 오른팔의 움직임만으로도 지상 세계를 초월한 인간의 불가항력적인 운명을 결정하는 모습이며, 그 주변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 혹은 천상으로 올라가고, 혹은 지옥으로 떨어진다.

(고통스러워 하는 비아지오 다 체세나의 초상화)
우측 그림은 최후의 심판 우측 하단부 부분으로서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에네이데의 작가인 브르질리오를 배에 실어간 신화적인 주인공 크론테가 있는 장면이다. 크론테는 나룻배로 영혼들을 지옥으로 운반하는 악령으로서 사람들을 배에 태워야 하는데 지옥데 다다르자 반대로 배에 탄 저주받은 사람을 그들의 극적인 운명을 포기하도록 배에서 내쫓아 지옥으로 밀어 내고 있는 장면이다.
맨 아래 끝 부분에 있는 사람은 '비아지오 다 체세나' 로서 이 사람은 당시 교황의 의전관으로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혹평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미켈란젤로는 그 의전관을 지옥의 맨 아래에 두었던 것이다
- 당시 성 베드로 대성당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미켈란 젤로가 마지막에 뱀을 덧그려 넣어 뱀에 물리
고 몸에 감겨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으로 비아지오 다 체세나를 그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은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 모습입니다.
사람들에게 밀려서 찍었던 사진이라 많이 흔들렸습니다.)
피에타(Pieta)
1498-1499년, 대리석, 높이 171.6C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이 작품은 그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서, 불과 25세의 청년이 만든 놀라운 이 작품에 대해 사람들이 의심하자, 밤중에 몰래 들어와 보란 듯이 자신의 이름을 마리아의 어깨띠에 새기고 돌아간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띠에는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 AT)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경건한 마음', '동정(同情)'이라는 뜻으로 "주님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 이 명사가 쓰인다고 합니다. 고유명사로서는 교회 미술에서 자주 표현되는 주제로, 보통 예수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성모 마리아 상을 가리킵니다.
-출처-
사진은 제가 직접 찍어서 가지고 있는 사진들을 올렸습니다.
http://cafe.naver.com/mdsd 한국천주교주교좌명동교회 선교분과 예비신자교리학교 네이버 까페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3&dir_id=310&eid=HlCmhNN/U/ZmfzG9sWaDEkPEfp/Qs4zD&qb=uczEzLb1wam3zsDHIMPWyMTAxyC9ycbHIMfYv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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