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혁명(The Scientific Revolution)
르네상스 이래 과학 정신의 발달과 근대 과학의 출현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시작을 얻게 만들었다. 중세인 에게 지식의 원천은 주로 기독교로서 그들은 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우주의 신비를 설명하려 하였다. 이에 반하여 근대인에게 지식의 원천이 된 것은 주로 과학으로서, 근대인들은 인간과 자연 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설명과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기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과학적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천재의 세기’인 17세기 「과학 혁명」으로 시작되었다. 과학 혁명은 신의 존재마저 의심할 만큼 기독교적 세계관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으며 인간과 사회를 보는 관점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러한 과학 혁명의 성과는 ‘이성의 세기’인 18세기에 뚜렷해졌으며 우주 내에서의 인간과 사회를 보는 관점을 크게 바꿔 놓았다. 17세기는 근대적 과학이 시작된 ‘천재의 세기’ 로 불리며 갈릴레이와 뉴턴의 위대한 시기이기도 하다.
▶ 수학, 천문학, 물리학의 발달
케플러(John Kepler, 1571~1630) -

독일인, 수학적 신비주의자인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점성술가로 과학의 천재였다. 그는 당시까지 해명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간략한 진술로 요약하였을 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 사이에 우주의 수학적 관계를 증명했으며 행성의 운행을 명확한 공식으로 나타내었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 -

이탈리아의 과학자이며 천문학자인 그는 당시에 거의 손대지 못했던 문제, 즉 천체들이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가에 대한 탐구를 확대하였다. 갈릴레이는 천체는 지구와 같은 물질로 되어 있고 지구는 태양의 주의를 돌고 있는 천체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보다 쉽게 갖도록 만들었다. 케플러가 천체의 운행을 설명하는 수학의 법칙을 발견한데 비해 지상에 있는 물체 운동을 설명하는 수학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그가 1642년에 사망하자 과학 혁명의 중심지는 전제군주에 혁명을 일으킨 영국으로 옮겨갔으며 바로 그해에 뉴턴이 탄생하였다.
뉴턴(Issac Newton, 1642~1727) -

영국의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로 근대적 자연관의 종합적 완성자이다. 그의 최상의 업적은 우주 내의 모든 입자는 상호간에 잡아당기는 힘을 갖고 있으며 같은 원리로 ‘중력의 법칙’ 혹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수립한 것이다. 뉴턴은 신적인 천상계를 세속적 지상계와 동일한 포괄적, 보편적인 역학 체계로 통일하여 우주 전체를 거대한 자동 기계로 규정함으로써 역학적, 기계론적 자연관을 성립시키고 계몽주의의 합리적 사상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뉴턴의 법칙은 2백 년 동안 확고부동했으며 그 한계성이 발견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그는 과학 혁명시대 최상의 위대한 과학자인 동시에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천재로 평가되고 있다.
※ 과학 혁명의 의의와 영향
과학 혁명은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로부터 시작하여 1660년대에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으며 1687년 뉴턴의 중력의 법칙 설명으로 절정기를 맞았다. 수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들은 지식층의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일부 지식인과 일반 대중은 쉽게 납득하지 못하였고 과학 혁명으로 인한 혁명적 변화에 크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세계관의 변혁으로 거대한 우주는 기계적 질서에 의 해 움직이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신의 섭리는 이제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생겼다. 17세기 유럽의 과학 혁명은 유럽 문명을 세계의 다른 문명들과 명확히 구별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재의 세기’로 불린 17세기 과학 혁명을 통하여 과학 지식의 발전과 보급, 과학적 발명들이 유럽 각국에서 급속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과학 혁명의 성과는 ‘이성의 세기’인 18세기에 이르러 더욱 명백해졌다. 자연 과학의 발달은 우주관과 인간관 등 지적 태도 전반에 걸쳐 지대한 자극을 줌으로써 18세기에 사상 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과학 혁명이 가져온 과학적 사고는 합리주의 정신의 성장을 가져왔으며 학문과 사상은 물론 나아가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불합리하고 무지몽매한 요소들을 일소하려는 계몽주의 운동으로 발전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과학 혁명을 계기로 자연 과학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관한 연구에도 자연 과학적 탐구 방식이 적용되고 신앙적 권위를 갖고 지배하던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게 되었다. 초자연적인 힘이나 기적, 신의 힘은 새로운 우주관에서 배제되는 한편 신적 우주관 대신 기계적 우주관이 지배하게 되고 이신교(Deism)와 무신론이 대두 되었으며 종교, 사상,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과학적 사고와 방법이 적용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