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그때 그 결혼식
내 나이 30을 넘어설때 또래들은 하나 둘 결혼이란걸 했다. 30세, 공자님께서는 이립(而立)이라고 하셨는데, 이 나이때는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고 하셨다.
그래선지 눈치빠른 친구들은 짝맞추어 결혼이란걸 했고, 주류와 친구된 나와 몇몇은 철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부산의 뒷골목을 방황했었다.
시즌이 되니 평소 술먹을땐 연락도 잘 안하던 넘들이 연락을 해왔다. 신혼살림에 보태쓸 축의금 확보에 있으려나...사회를 봐달라는 것이었다.
난들 공연히 남앞에 서는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닌데다 귀찮게 차림새도 꾸며야 하니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날 같은동네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알려왔다. 어디서 하느냐?고 물었더니 시골이란다. 아니 이 시대에 웬 시골에서...그곳을 가려면 배차시각 짧지 않은 시외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야 된다고...
찾아간 곳은 우리 고향과 인접한 면의 시골 동네였더라. 말그대로 우리가 어려서 성장하던 그 환경 그대로였다.
신부집에 들어서니 마당엔 멍석이 깔렸고, 상위에 음식들이 잔뜩 놓였다. 관계자들도 한복을 입었다. 아니 구식 결혼식인가? 이러한 결혼식은 어릴적 누님이 결혼할때 보았던 것이 마지막 이었으니, 족히 20년쯤 됨직하였다.
각설하고, 예식이 시작되어 친구녀석이 족도리를 쓴 모습이 우스꽝 스러웠다. 주례의 사회로 식이 진행되고, 우리는 먼발치 아랫채 처마밑에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례의 탁한 목소리 "다음, 우인축사" 하고 말하는게 아닌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니 왜 우리를 보는거지, 축사(소마구간)는 저쪽편인데...
아뿔사! 친구녀석 미리 구식이라고 귀뜸이나 해줄 것이지, 문득 생각난게 누나 결혼식때 그 두루말이 종이에 써있던, '구르는 수레바퀴인양 세월은 흘러 어쩌구 저쩌구...' 그것이었구나!
떨리는 가슴으로 청중앞에 섰다. "죄송하게도 축사를 써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신랑신부 잘먹고 잘살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변치말고... "
무슨 말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더라.
멀리서 왔다고 거하게 차린상을 받았다. 돌아서는길, 친구 장모님이 안가져 간다는데도 그런게 아니라고 수탁 한마리를 보자기에 싸주셨다.
이걸 어떻게 가져가고, 또 어쩌라고...날려 보내버릴까? 고심하다 지나는 아무에게나 주어 버렸다.
또 다른 친구의 결혼식이란다. 속으로 이랬다. '그래 니들은 잘나 짝맞추어 결혼식 올리고, 나는 아가씨 구하려 나설 시간도 안주는거니?' ㅎㅎ
나는 나고난 말주변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나리오를 만들어 연습을 하는 열정도 없는 편이다.
예식장에 들어서면 주례와 신랑 신부 이름, 그리고 식순이 다른 때와 같은지를 살핀다. 그리고 눈치 보아가며 적당히 우스개 소리섞어 진행하였다.(거의 매일 술을 마시니 컨디션 유지가 성공의 관건이다)
그날따라 혼잡한 시내버스 시달리며 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구녀석 기분 좋아 싱글벙글 거린다.
에라이! 괘씸한놈, 연락도 안하더니 잘꿰찼구나!
처신을 잘했는지 하객이 많았다. 촌놈이 이럴때 사람 많이 모우는게 사회생할 잘하는 표식이다.
모두가 자리를 잡고, 결혼식이 진행되었는데 어라! 신부 아버지가 안보였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젊잖게 말했다.
"신부 아버지 자리에 앉아 주새요."
그러자 옆에서 들리는 소리, "신부 아버지는 신부 데리고 들어와야지."
헉! 맞는 소리다. 어제 마신 술이 덜깨었나? 그만 실수를 하고만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사회자가 나오시라 했으면 오셔서 앉았다 나가세요."(ㅋㅋㅋ...)
순간 영문을 아는 사람들은 웃음이 터져나왔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 사회자가 나오라면 시키는대로 왔다가세요."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그래도 기쁜날이니 이해들 하시리라. 생각하다 결혼식 마지막 순간에 멋있는 멘트로 큰박수를 받았다. 아무튼 즐거운 순간이었다. 초상집에서 이러면 안된다.
내 나이 서른이 넘어갈 즈음, 잘알지도 못하는 동창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같은 학년이었는데도 이름만 알겠고, 얼굴은 가물가물했다.
부산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줄곧 외항선을 탔었단다. 어떻게 전화를 했느냐? 물으니, 결혼식 사회를 봐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무조건 손해였다. 축의금 품앗이도 안되겠고, 요즘처럼 뒷풀이도 없는 시대였다. 내키지 않았으나 주변에 부탁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니...
결혼식장을 찾아가니 정말 그 많은 동창생 하나도 안보인다. 머쓱하게 서있다가 간단하게 사회만 보고 끝냈다.
그런데 그 다음이 황당했다. 사람들이 바삐 흩어지는데, 누구하나 밥먹으려 가자는 안내가 없었다. 신랑녀석 자신이 못하면 친척들애게 말이라도 해놔야 하는 것 아닌가?
밥때는 지났고, 주변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고의가 아니니 이해한다. 부디 잘살아라.
* 나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였더니 참석한 친구들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미가 없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