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푸른솔문학 발표작품
천사 간호사를 생각하며.....
도영숙
3월이면,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앳된 모습의 신규간호사들이 병동배치를 받고 새로이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내가 예전에 근무 했던 ‘자선병동’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사람들이 입원하는 병동이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극빈자들, 오갈데 없어 부녀보호소에 머무르던 이들, 그들은 질병이 발생하면 병원의 ‘사회사업과’를 통해 경제적인 혜택을 받고 입원하였다.
부녀보호소 사람들은 이름조차 잘 몰라서 ‘무명녀’로 입원하는 환자들도 있었다. 이렇게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해하고 있었다.
보통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대부분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담당의사에게 채근하나, 자선 환자들은 퇴원하라고 하면 안 가려고 보챘었다. 평소에 굶주렸던 환자들은 병원에서 주는 3끼 식사가 너무 맛있고 배부르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호텔 커피숍에 가면 쥬스 한잔을 시켜놓고 배고픔을 달래줄수 있는 환자들을 생각하며 목에 안 넘어가기도 했다.
3월의 어느날, 선녀 간호사는 환한 미소를 살포시 머금고 병동에 나타났다. “수선생님, 저는 자선병동에 가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왔어요. 이곳에 근무하게 되어 기쁩니다.“
대부분의 간호사들은 자선병동에 배치되면 안가겠다고. 다른 병동에 갈수 있게 기다리겠다고 하는데 선녀 간호사는 이곳에 오고 싶어서 기도를 했다니?...... 자선병동에 근무하려면 봉사정신과 자신의 어떤 소명의식이 필요하였다.
선녀 간호사는 선녀라는 이름처럼 첫인상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이 내게 다가왔다.나 역시 정형외과병동에 근무하던 중 부서이동 되었으며, 동기들은 아무도 가지 않겠다고 하여 나 혼자 원하여 왔기에 선녀 간호사가 더욱 친밀감 있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부녀보호소’를 경유하여 “도봉”이라는 20대 후반의 여자가 양쪽 다리는 무릎까지 절단이 되어 있는 상태로 열이 많이 나서 입원하였다. “도봉”이는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으며 다리를 어떻게 다쳤는지. 어떠한 경위로 부녀보호소에 가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리가 절단되었기에 화장실도 못가고 기저귀를 채워놓으면 대변을 보고나서 손으로 벽에 칠을 하곤 하였다, 그리고 늘 배고프다고 간호사실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곤 하였다. 간호사들은 자신들이 준비해온 근무 중에 먹을 간식을 도봉에게 갖다 주곤 하였다. 보호자도 없고, 젊은 여자가 마땅히 입을 속옷이 없는 것을 보고 선녀간호사는 예쁜 꽃무늬가 있는 팬티를 2장 사들고 와서 “도봉”이에게 입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사랑으로 환자를 대하는 선녀간호사에게 감동하였다. 헐벗은 이에게 옷을 입혀주는 그녀는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환자에게 속옷을 사다줄 마음은 갖고 있지만, 환자를 위해서 선뜻 행동으로 보여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가 돋보였다.
그즈음. 50대 여자 환자가 자궁암으로 입원하였다. 그 환자는 남편과 사별하고 포장마차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어느 날 포장마차에서 장사를 하던 중 하혈이 너무 심해서 허리춤으로 동여매었으나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하혈을 막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 왔다고 한다. 검사결과는 자궁암으로 사회사업과의 도움으로 수술을 잘 받고 퇴원하였다. 퇴원 후 선녀간호사와 나는 추후관리로 환자의 집을 방문 하게 되었다. 용산을 지나 이태원의 어느 골목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다닥다닥 1채씩 붙어있는 집들이 있었다. 집 들어가는 입구가 부엌, 그곳에는 연탄아궁이가 있고. 그리고 방 1개가 전부였다. 그 방에서 환자인 엄마와 딸, 아들이 살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선 순간, 선녀간호사는 그 집을 위해서 기도하고 환자인 어머니를 자상하게 보살펴주었다. 손님에게 드릴 것이 없다고 쩔쩔매는 환자와 딸에게 편안함을 주기위해 냉수 1컵을 마시고 나오며, 아직도 이렇게 어려운 이들이 서울의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다.
3년쯤 지난, 어느 날 선녀간호사는 결혼하고 병동을 떠나갔다. 배우자가 목회자라서 함께 길을 가야한다고 하며 못내 아쉬워 했다.
‘우리 환자들은 누가 선녀 간호사처럼 사랑으로 보살필까? 도봉이 같은 환자는 누가 입을 옷을 사다 입히며 사랑으로 감싸줄까?‘
선녀 간호사가 떠날 때, 수간호사라는 체면도 없이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지금쯤 목회자인 남편을 내조하며, 온화한 미소로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고,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며, 헐벗은 이에게 입을 옷을 주고 있을 천사를 기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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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가톨릭 대학교 산업보건 대학원 졸업
전, 여의도 성모병원 수간호사
가톨릭 간호사협회 서울 대교구 전임 부회장
서울시 간호사회 「공로상」수상
「한국문인」으로 등단.
첫댓글 '보호자도 없고, 젊은 여자가 마땅히 입을 속옷이 없는 것을 보고
선녀간호사는 예쁜 꽃무늬가 있는 팬티를 2장 사들고 와서 “도봉”이에게 입히고 있었다...'
감동으로 감상하고 갑니다.고맙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정령 천사였군요.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우리 환자들은 누가 선녀 간호사처럼 사랑으로 보살필까? 도봉이 같은 환자는 누가 입을 옷을 사다 입히며 사랑으로 감싸줄까?‘
목회자의 사모로써의 직분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그의 모습이 눈 앞에 있는 듯 웃음소리가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