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963 복합문화공간 입구
터프한 와이어 공장에서 말랑한 문화예술 공장으로, F1963 복합문화공간
어느 여행자에게나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종일 소문난 관광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는 열정 여행자도 있고 하루에 한 곳이라도 마음 닿는 곳에서 빈둥거리며 여유를 즐기는 낭만 여행자도 있다.
어느 바람 좋은 가을날의 오후,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과 문화의 감성이 찰랑찰랑하게 스며드는 곳, F1963은 여유만만 반나절 여행을 보내거나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거나 무엇을 하더라도 매력적으로 보내기에 딱이다.
야외 중정에서 열리는 오픈 스퀘어
F1963은 2008년 이후 창고로 버려졌던 곳이다. 2016년 일부 공간이 부산비엔날레 특별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관람객 17만 명 이상이 다녀간 뒤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 고려제강이 함께 만든 F1963은 와이어 공장의 건물 형태와 골조만 남기고 공간 활용도와 특성에 맞게 리노베이션되었다.
F1963의 남다른 미덕은 각각의 공간마다 개성 있게 와이어로 꾸며지거나 공장에서 나온 시설물을 그대로 두어 공장이 본래 갖고 있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계단 아래 옛날 건물의 기반이 되었던 돌들까지 고스란히 모아놓은 모습은 예술작품 못지않게 잔잔한 감동을 전한다.
F1963은 보면 볼수록 오래된 것과 새로운 시공간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고 미래로 향한다는 건축가의 철학이 진지하게 느껴지는 공간이다.
테라로사 카페 입구에 있는 와이어 설치 작품
대나무 숲, 중정, 뜰과숲원예점 그리고 예스24 중고서점
F1963의 주차장에서 입구 쪽으로 걷다 보면 초록 이파리가 하늘로 쭉쭉 뻗어 있는 대나무 숲이 보인다. 와이어의 곧고 유연한 속성을 닮은 대나무 숲길은 와이어 공장의 추억을 가진 F1963과 잘 어울린다.
입구를 지나 건물 외부 쪽으로 산책하다 보면 폐수 처리장이었다가 생태 정원으로 변신한 수련가든을 만난다. 하늘과 작은 연꽃 정원이 어우러지는 공간에 놓인 돌을 이용한 미술작품은 오래전부터 그곳에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다.
수련가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보행 통로에서 중정이 바라보인다. 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중정의 하늘은 날씨와 관계없이 액자 속에 담긴 그림 같다. 중정에서 열리는 '오픈 스퀘어'는 수준 높은 무료 공연들로 이어진다.
방문 전, 공연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미리 확인할 것.
대나무 숲으로 꾸며진 소리길 / 와이어 공장의 옛 모습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간
기초공사에 사용했던 돌더미 / 예술작품과 어우러진 수련가든
중정에서 내려와 좀 더 걸으면 저만치 뜰과숲원예점의 푸른 전경이 보인다.
가정집에도 작은 정원을 꾸밀 수 있도록 다양한 가정 원예(홈 가드닝) 수업과 원예용품,
꽃과 나무를 판매한다.
비밀 정원 같은 유리온실을 둘러보고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살펴보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다양한 원예용품과 책과 꽃을 둘러볼 수 있다.
예쁜 토분에 촉촉한 흙을 담아 알록달록한 꽃을 심는 동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기분이 좋아진다.
조만간 작은 정원의 나무의자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허브티를 마실 수 있다고.
야외 산책을 마치고 나면 건물 안에 또 다른 '책 숲'이 기다린다.
가정 원예(홈 가드닝)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뜰과숲원예점
계절 따라 피어나는 꽃구경도 즐겁다.
뜰과숲원예점 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소녀 / 뜰과숲원예점에서 판매되는 다육식물
20만 권의 책 숲, 예스24 중고서점이 얼마 전 문을 열었다.
국내 최대 중고서점으로 1,983㎡(약 600평) 면적에 활자 인쇄 프로세스부터 최신 기술의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책과 출판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듯 책을 볼 수 있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선물 같은 공간이다. 편안하고 아늑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어도 좋고 키즈존이 완비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다.
예스24 중고서점<사진제공·F1963>
테라로사의 커피부터 복순도가의 손막걸리, Praha993의 수제 맥주까지
F1963의 가장 큰 매력은 옛 공장 건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주는 데 있다.
오랜 세월을 굳건히 버텨 온 벽돌 기둥부터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듬직한 발전기, 얼룩진 기름 자국이 남아 있는 바닥에 빛바랜 페인트 흔적까지 건물 전체가 작업장의 거칠고 치열한 삶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카페 테라로사의 예가체프 드립 커피와 피칸파이 / 와이어를 감던 보빈(bobbin)이 티 테이블로 잘 어울린다.
와이어 공장의 터프한 흔적과 가장 근사하게 어울리는 곳은 카페 테라로사다.
입구에 있는 감각적인 와이어 설치 작품에서부터 예술의 힘이 느껴진다.
기존 공장의 오래된 철판으로 꾸며진 커피바와 테이블, 공장에서 사용하던 발전기와 와이어를 감는 보빈(bobbin)이 군데군데 장식품처럼 자리하고 있다.
지붕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 높은 천장과 철재, 가죽 의자의 클래식한 조화도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커피 전문점답게 특색 있는 산지별 커피는 물론이고 매일 굽는 천연발효빵 냄새와 커피 향기가 드넓은 실내에 은은하고 황홀하게 퍼진다.
세월이 느껴지는 벽돌 기둥조차 아름다운 카페 테라로사 내부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발효주뿐만 아니라 발효음식까지 맛보는 파인 다이닝이다.
언양도가에서 공수한 식재료와 직접 담근 발효식품으로 정성스럽게 요리한다.
천장에서 늘어지는 백색의 한지 텍스처 오브제와 투박한 막걸리 독으로 꾸민 인테리어도 멋스럽다. 손막걸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방문해서 시음할 수 있다.
달콤함 가운데 누룩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톡 쏘는 탄산이 매력적이다.
날렵한 샴페인 잔에 담긴 하얀 막걸리의 맛이 새롭다.
코스 요리와 잘 어울리는 복순도가 손막걸리 / 한지 텍스처 오브제가 멋스러운 복순도가 실내
어스름 해가 저물면 야외 중정에서 공연이 시작되고 흥이 오르기 시작하면 Praha993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Praha993의 맥주는 풍미가 살아 있는 체코식 수제 맥주다.
체코식 수제 맥주를 맛볼 수 있는 Praha993
Praha993은 993년 체코 최초의 맥주 양조가 이루어진 프라하 브르제브노프 수도원의 방식 그대로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과 펍이 함께한다.
특히 외벽이 통유리로 제작되어 브르제브노프 수도원 양조장의 기술자들이 1,000년 넘게 이어 온 전통 체코 수제 맥주를 관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어 맥주 마니아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맥주를 직접 관리하는 체코인 기술자 / 신선한 흑맥주를 마실 수 있는 Praha993
F1963은 아직 미완의 공간이다. 도서관(F1963 라이브러리)은 이번년도 9월 개관 예정으로 공사가 한창이다.
예술과 디자인, 건축 분야에 특화된 도서관이다. 도서관에서 듣는 인문학 강좌와 작은 음악회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음악 감상도 할 수 있다니 F1963의 새로운 공간들이 기대된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가 열린 F1963 전시장<사진제공·F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