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섬섬 3
연화도 민박집 방은 너무 뜨거워 탈이었다. 전기 판넬 방바닥은 새벽까지 식을 줄을 몰랐다. 두 나그네는 전원을 어디서 조작하는지 몰라 잠을 뒤척였다. 욕지도를 출항한 첫배가 8시 40분 연화도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통영에 내려 여객선터미널 맞은편 서호시장을 찾아갔다. 새벽시장이 끝나가는 시장골목을 둘러보고 해장국으로 잘 알려진 훈이 식당에서 시락국으로 속을 풀었다.
친구와 나는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이 목욕탕을 찾아 들었다. 짧은 시간 샤워를 끝내고 나와도 이게 어디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린 이틀 동안 몸을 제대로 씻을 여건이 아니었다. 목욕탕을 나와 강구안과 중앙시장을 둘러보았다. 친구는 지리적으로 동남해안에 살아 그곳에선 드문 꼴뚜기를 먹고 싶어 했다. 서남해안에 흔한 꼴뚜기는 우리 지역 토박이말로는 호래기라고 한다.
눈썰미 있는 친구는 싱싱한 호래기를 골랐다. 친구가 강구안에서 익히 알고 있는 밀물 식당으로 가서 멍게비빔밥을 시켜 여분 초장에다 호래기까지 잘 맛보았다. 점심 식후 우린 범위가 넓어진 모임으로 갔다. 대학 친구가 부부끼리 일 년에 두 번 모이는 자리다. 올 겨울엔 통영 청소년수련관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우리는 도착순으로 미륵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정한 숙소를 나와 저녁 자리는 해저터널 위 해안에서 장어구이를 먹었다. 숙소로 돌아와선 통영 친구가 재료를 마련해 끓여낸 제철 음식인 물메기탕을 곁들였다. 우린 밤이 이슥하도록 잔을 채우고 비웠다. 이튿날 아침은 서호시장으로 다시 진출해 졸복 매운탕으로 속을 풀었다. 다음날 아침나절 여정은 장사도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우린 도남 관광단지 유람선터미널로 되돌아갔다.
대구 친구는 볼 일이 있어 먼저 떠나고 여덟 명이 유람선에 탔다. 선장은 오래 전 아슴푸레한 기억으로 남은 무성영화시대 변사 같은 억양으로 사십여 분 항해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바다 좌우 풍광을 설명해주었다. 배 삯과 입장료로 일인 당 삼만 원 가량 들였다만 이야기 들은 대로 장사도를 찾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제 외도와는 사뭇 다른 천연 숲길을 두 시간여 걸었다.
겨울이었다만 우리 일행 말고도 단체 관광객들이 다수 찾아왔다. 거제도에서 장사도로 건너오는 유람선도 있었다. 지심도 만큼은 아니었다만 동백이 우거져 있었다. 얼마 뒤면 만개할 동백은 이른 꽃송이가 몇몇 개 피어나고 있었다. 장사도엔 동백 외에도 비자나무를 비롯한 온대상록수들이 숲을 이루었다. 한 관광객은 그림 같은 분교장 터에 놓인 풍금으로 귀에 익은 동요를 연주했다.
두 시간여 섬을 가로지른 관람 동선 따라 장사도 전체를 구경했다. 일행들과 섬 끄트머리 탁 트인 전망대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다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통영항으로 귀환하는 뱃길은 한산도를 돌아 거제 섬 사이로 빠져 들어갔다. 선착장에 닿으니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통영 친구의 길 안내를 받아 정량동으로 이동해 한산도 횟집으로 갔다. 간밤에 맛본 물메기탕을 시켰다.
물메기탕이 나오기 전에 볼락 회를 시켜 안주 삼아 소주를 몇 잔 들이켰다. 술을 과하게 든다는 내자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한 친구와는 3박 4일 째고, 다른 친구들과는 1박 2일의 여정이 마무리 되는 즈음이었다. 아쉬움 속에 자리를 파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는 여름엔 보령 무창포해수욕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한 친구가 그러길 조개잡이가 기대된다고 했다.
귀갓길은 같은 창원 지역에 사는 친구의 차에 동승했다. 점심반주를 곁들인 친구는 운전대를 잡지 못하고 친구 아내가 운전했다. 으레 이런 걸음은 내 집사람과 동행해 네 사람이 한 조가 되는 묶음인데 그렇질 못했다. 다음 번 모임엔 당연히 집사람도 동행하는 걸음이어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길모퉁이 쌓인 눈은 내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덜 녹은 채였다. 13.01.06
첫댓글 너무 좋은 여행길입니다! 언젠가 이 코스대로 한번 가 보고 싶네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