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 건립 비화
내가 삼척군수로 부임해서 제일 먼저 부딪친 어려운 일은 화장장을 짓는 일이다.
화장장은 주민이 싫어하는 혐오시설이어서 주민의 반대로 김승우 전임군수가 미처 부지 선정도 못한
채 떠났기 때문에 그 일을 떠맡게 되었던 것이다.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동안 관내의 여러 적지를 몰색하여 지으려고 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지금까지 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장장 건립을 그만두고 그 예산을 다른 사업으로
돌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재원이 보건사회부에서 배정받은 국고보조금이기 때문에 용도
변경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화장장은 삼척군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동 6개 시군에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6개 시군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내가 부임을 한 다음에도 담당 과계장과 읍면장이 마을과 떨어진 산간 오지를 찾아다니며 건립
후보지를 물색하였으나, 그 곳이 마을에서 아무리 떨어진 오지라 하더라도 주민들이 막무가내여서
지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적지를 또 물색했다는 담당자의 보고다. 그곳은 북평읍 신흥리로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백봉령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면서도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어 조건이
매우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도 다른 마을과 다름이 없다.
사회과장과 북평읍장이 마을을 찾아가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등과 의논했으나 말도 못 꺼내게
한다는 것이다. 부군수도 여러 번 나가 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루는 부군수가 사회과장 등을 대동하고 신흥리를 또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나도 뒤따라
가보았다. 그때 부군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었는데 주민들의 기세가 매우 험악했다.
군수가 나왔다니까 주민들의 태도는 조금 누그러졌으나 화장장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열고 대책을 숙의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다.
때마침 대전시에서 화장장을 새로 지었다는 신문보도가 나왔다. 그 기사는, 이 화장장은 종래의
화장장과 달리 굴뚝은 지붕 높이에 불과하고 완전 연소를 하기 때문에 연기도 나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버스 한 대를 대절하여 이장과 새마을지도자 등 마을 대표들을
대전의 화장장을 견학시켰다.
대전시의 새로운 화장장은 생각보다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듯 하였으나, 냄새가 안
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혐오시설이 마을에 들어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부군수를 마을에 보내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쳣째, 그 마을에 새마을회관을 지어주고,
둘째, 취로사업을 위해 소하천 개수공사를 시행하고,
셋째, 농어촌 전화사업을 시행하되 주민 부담을 전액 군비로 충당해 주겠다고 하였다.
군으로서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것이지만, 그러나 주민들의 반대는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는다.
속수무책, 이 이상 그 어떤 조건도 대책도 없다. 이제 화장장 건립 문제는 백지화 하는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러던 중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산림과에서 관내의 부정 임산물 일제 단속을 하였는데,
이 마을의 이장과 화장장 설치 반대투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주민들이 적발되었다.
그러자 이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주민들 스스로 화장장 설치 반대를 철회한 것이다.
이것이 오비이락 격으로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인지 또는 꾀보 산림과장의 의도적인 행위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떻든 이렇게 해서 그 어려웠던 화장장 건립은 문제없이 이루어지고, 군에서는 당초 약속대로
새마을회관 건립과 소하천 개수사업, 그리고 농어촌 전화사업을 예정대로 시행해 주었다.
(강원행우)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공직생활 하다보면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사람들의 급소를 공격할때 비로소 승리하는 일이 있습니다.
공감이가는 내용입니다.
내가 춘천서에 근무할때에도 춘천 서면에 악바리 주민이 있었는데 동네 일이라면 사사건건 물고늘어지는 사람
으로 하루는 서면지서에 무단벌목으로 잡혀온것을 조서를 꾸며 춘천경찰서로 이송하기위해 배를타고(당시교통
수단은 배밖에 없었음)소양로1가 까지 가서 풀어주고 다음날 집으로돌아 오게 하고 누가 물어보면 불구속 입건
돼서 나중에 벌금 나온다고 교육시키고 봐줬더니 그이후로 사람이 완전 달라졌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요즘 온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NIMBY 현상이 그 시절에도 있었군요.
영인형이 서면 말썽꾸러기를 조용하게 만든 사례는 내가 기억해 두고 주위에 이런 경우가 있으면 해결의 한 방도로 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