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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국 문단의 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무협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김용의 대하역사소설 <신조협려> 전8권. 작가가 지난 1959년 자신의 신문사 <명보(明報)>를 창간하면서 연재한 소설로, 그 어떤 작품보다 심혈을 기울였고 그만큼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번에 출간한 <신조협려>는 지난 2003년 여덟 차례에 걸쳐 수정한 3판본을 완역한 것.
<신조협려>는 무협소설로는 드물게 '정(情)', 즉 '사랑'을 주제로 설정하고 있다. 사부와 제자 사이라는 금기를 깨고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야 마는 양과와 소용녀를 중심으로,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무림 고수들과 몽고의 무사들의 혈전이 펼쳐진다. 여기에 <사조영웅전>에 등장했던 곽정과 황용,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 등의 의인 협객들의 나라와 민족의 이름을 건 무공대결이 더해진 작품이다.
가장 기본적인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 부모와 부자, 형제, 사제 등 인간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랑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실제 역사와 맞물려 펼쳐지는 무공비급과 고수들의 대결 등 무협의 세계가 흥미를 돋우는 이 작품은 작가의 철저한 역사적 고증과 풍부한 상상력이 결합된 대작이다. 그래서인지 김용의 소설을 접한 사람들 대부분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손꼽고, 실제로 가장 많은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중국을 대표하는 무협작가이자 국제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중국 대륙에서 성경보다 더 많이 팔린 모택동 주석 어록의 판매 기록을 넘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로, 무협소설을 일반 문학의 경지로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대륙(중국 본토)에서는 1994년에 김용을 20세기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네 번째 순서를 차지하는 작가로 꼽았으며, 대만에는 그의 소설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김학金學'이 있다.
1923년 중국 절강성 해녕현 출생으로 본명은 사량용이다. 김용이란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인 '용'자를 둘로 나누어 만든 것이다. 일본의 침략으로 중국이 전시 체제에 돌입하자 고향을 떠난 김용은 고난의 세월 속에서도 중국과 서양의 문화를 부지런히 공부했고, 특히 영어에 남다른 실력을 보였다. 그의 집안은 흔히 '해녕사가'라 하여 청나라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시인의 하나로 평가받는 사신행査愼行을 비롯해 수많은 인물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가 훗날 홍콩에서 '명인 중의 명인'으로 불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룬 성취 외에도 집안의 내력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한다.
열여덟 살 때 훈육주임을 풍자한 글을 벽보를 통해 발표해 퇴학당했다가 교장과 동창의 도움으로 간신히 전학하여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열아홉 살 때도 역시 훈육주임에 반대하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열아홉 살 때 [동남일보]에 글을 발표하여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대공보」「상보」 등의 언론사에서 영어 전보 번역일을 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스무 살 때 구주중학교 (고등학교에 해당)를 졸업하고 [동남일보]에 「천 사람 중 한 사람」 이란 글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물한 살 때 중앙정치학교 외교과에 입학했다. 어릴적 꿈인 외교관이 되고자 하였으나 국민당에서 파견한 직업 학생들이 득실거리는 학교에 항의하다가 결국 스물두 살 때 퇴학당했다.
[동남일보]에서 영어 전보 번역일을 하다가 1947년 스물다섯 살 때 신문사를 사직하고 상해 동오대학 법학원에 들어가 국제법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 해 세계적으로 이름난 언론사인 상해 [대공보]에 취직해 전과 같이 국제 전보 번역일을 맡아, 반은 일하고 반은 공부하는 '반업반학'의 세월을 보냈다. 이듬해에 홍콩 [대공보]로 자리를 옮겨 같은 일을 하게 된다.
서른 살을 전후해 요복란, 임환 등의 필명으로 영화평을 쓰면서 영화계와 친분을 맺기 시작했다. 「절대가인」이란 영화 극본으로 문화부가 주는 우수영화상을 받기도 했다. 1954년에는 직장 동료 양우생이 홍콩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무술 시합에 자극받아 [신만보]에 무협소설 『용호투경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55년 서른세 살 때 마침내 김용이란 필명으로 [신만보]에 『서검은구록』을 연재하면서 마침내 무협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가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순전히 신문의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어 1956년 1월 1일부터 홍콩신문 [상보]에 『벽혈검』을 연재했고, 1957년 그의 출세작이자 최초의 장편소설인 『사조영웅전』을 같은 신문에 1959년까지 연재했다. 이어서 1959년에는 『설산비호』를 발표했다. 이 사이 1956년에 주매와 두 번째 결혼을 했고, 영화평도 꾸준히 썼다. 1959년에는 급기야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은 홍콩은 물론 동남아 화교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공전절후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태국의 화교 신문은 홍콩판 신문이 비행기를 통해 날아오길 기다리지 못하고 불법 전신시설을 이용하여 당일 연재된 소설을 타전 받아 신문사 문 앞에 붙여 놓을 정도였다. 소설의 성공과 함께 그의 명성도 더불어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는 갈수록 좌경화되는 [대공보]를 떠나 1959년 5월 20일 스스로 [명보]라는 일간지를 창간했다.
김용의 일생은 중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의 생활과 전란에 따른 피란, 그리고 각지로의 전전, 마침내 홍콩에 정착하기까지 그는 숨가쁘게 시대와 함께 호흡했다. 그는 언론을 선택했고 스스로 언론사를 창간하여 중국 정치사에 깊숙이 개입했다. 이렇듯 중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경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협소설을 역사소설 내지 정통 문학의 대열에 올려 놓았으며, 20여 년 전부터는 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 자신은 무협소설을 호구지책으로 썼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젊어서부터 몸에 익힌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은 무협소설의 수준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사실 빈약한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명보]는 1년을 버티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러한 [명보]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원동력은 무협소설과 김용 자신이 직접 쓰는 정치 사설이었다. 무협소설의 연재는 상업적인 면에서, 정치 사설은 [명보]의 권위 수립에 큰 도움을 주었다. 창간과 더불어 『신조협려』가 연재되었고, 1961년부터 『의천도룡』가 연재되었다. 이어 『백마소서풍』과 『원앙도』도 연재하면서, [명보]는 발행부수 4만을 넘는 신문사로 성장했다. 1970년이 되기전까지 그의 신문사는 비약적인 성장을 하는데, 그의 소설과 더불어 그가 쓴 중요한 정치사설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문화혁명 분위기를 예언하여 파장을 몰고 왔고, 등소평의 축출과 재기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미국과 베트남간의 전쟁 재개 시기도 정확하게 맞춰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언론이 된 것이다.
1969년 10월 24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녹정기』는 1972년 9월 23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사이 김용은 그때까지 발표했던 자신의 무협소설들을 조금씩 수정했고, 『녹정기』의 연재가 끝나자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며 절필을 선언하였다. 1976년 54세에 아내와의 이혼, 그리고 잇따른 아들의 자살로 불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1994년 김용은 약속대로 [명보]와의 모든 관계를 끊고 완전 은퇴를 하고 자신을 낳아준 고국 대륙으로 향했다. 현재 절강대학과 영국, 홍콩을 왕래하며 역사연구 등의 생활을 하고 있다.
'김학'이라는 본격적인 연구학문이 움직이고, 인터넷과 관련한 산업에 이르기까지 김용 소설은그야말로 21세기 문화 키워드로서 손색이 없다. 종이로 된 소설에서 영화로 그리고 TV 연속극, 전자게임과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현대 문화의 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소설만이 지닌 강점에서 기인한 것으로, 독특하고 다양한 인물개성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스토리 구성,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절묘한 조화,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문장, 중국 전통문화의 요소, 풍부한 인문적 소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완성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이제 김용과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현상'이자 '문화 키워드'가 되었다. 지식인을 비롯한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작품은 반세기 동안 시들지 않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00년 김용은 '천년강단'으로 유명한 호남성 장사시 악록서원에서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강연을 가졌다. 홍콩 당국으로부터 최고 훈장을 받았고, 그해 11월 베이징 대학에서는 그의 무협소설을 놓고 국제적인 연구토론회가 벌여졌다. 2002년 상해에서 브라질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와 대담을 갖기도 하는 등 두 방면에서 모두 남다른 성공을 거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권 활사인묘
제1장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제2장 옛 친구의 아들
제3장 사부님을 찾아 종남산으로
제4장 전진교의 제자들
제5장 활사인묘
작품 해설
2권 옥녀심경
제6장 옥녀심경
제7장 왕중양이 남긴 글
제8장 신비의 백의 소녀
제9장 절묘한 수로 적을 따돌리다
제10장 젊은 영웅
3권 영웅대연
제11장 두 고수의 죽음
제12장 영웅대연
제13장 무림 맹주
제14장 금지된 사랑
제15장 동사의 제자들
4권 협지대자
제16장 아버지를 살해한 원수
제17장 절정유곡
제18장 공손곡주
제19장 땅속의 노파
제20장 협지대자의 뜻
5권 양양성 전투
제21장 양양성 전투
제22장 위태로운 성과 갓난아기
제23장 형제의 정과 원한
제24장 마음을 놀라게 하고 넋을 뒤흔들다
제25장 내우외환
6권 동방화촉
제26장 신조의 중검
제27장 지혜의 힘을 겨루다
제28장 동방화촉
제29장 우리의 운명일 뿐
제30장 만남과 이별의 덧없음
7권 의인 신조협
제31장 목숨을 살릴 영단 반쪽
제32장 정이란 무엇이길래
제33장 풍릉 야화
제34장 어려운 일을 해결하다
제35장 세 개의 금침
8권 화산의 정상에서
제36장 세 가지 생일 선물
제37장 삼대에 걸친 은원
제38장 삶과 죽음이 아득하기만 하구나
제39장 양양 대전
제40장 화산 정상에서
저자 후기
역자 후기
무협소설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고전!
중국문학의 금자탑 신필 김용의 최고의 역작!
독자들의 넋을 뒤흔드는 마력적인 재미와 풍부한 상상력
국내 3백만 독자를 사로잡은 <영웅문> 2부 최신판 완역!
‘대만에서 1천만 부 이상, 중국에서 1억 부 이상 판매’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김용의 대표작 <신조협려>가 국내 최초 정식 계약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국내에 <영웅문>(고려원에서 1986년 출간)으로 알려진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시리즈 중 2부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김용이 지난 1959년 자신의 신문사 <명보(明報)>를 창간하면서 연재한 소설로서, 그 어떤 작품보다 심혈을 기울였고, 심혈을 기울인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김용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문사를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무협소설을 연재했다고 밝혔다). <신조협려>는 1956년에 3년여 동안 연재된 후 1976년에 몇 군데가 수정된 2판본이 출간되었고, 지난 2003년 여덟 차례에 걸쳐 수정한 3판본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한 <신조협려>는 김용이 세심하게 고증을 거쳐 수정한 3판본을 완역한 것이다.
3판본은 이전 판본에 비해 줄거리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역사적인 사실관계가 더 정확해졌고, 악인으로만 그려졌던 인물의 성격이 좀더 입체적으로 변했으며(이를테면, 최고의 악인으로 그려졌던 금륜국사의 심리가 다각도로 조명되었다), 사람들의 이름과 행동, 또 무공비급인 <구양진경> 등의 내용이 대거 추가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용의 작품 속에는 중국의 역사와 방대한 유가, 불가, 도가의 철학이 아로새겨져 있다. 김용은 무협소설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인 비현실성을 이런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방대한 지식과 학문적 소양으로 극복했다. 이렇게 기존 무협소설에 대한 일반대중의 인식을 바꾸어놓았다는 점에서 김용은 무협소설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등장을 전후로 구무협과 신무협으로 구분하여 그를 ‘신무협의 창시자’ 혹은 ‘무협소설의 일대종사’로 부르고 있다.
이런 성향은 그의 대표작인 <사조삼부곡>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 세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남송, 금, 원 교체기이며 칭기즈칸, 쿠빌라이, 왕중양, 주원장 등의 역사적 실존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김용 특유의 서사가 생성되고 있다. 곧 박진감 넘치는 무협의 세계가 유교, 불교, 도교 사상 속에 깃들어 있고, 이것이 실제 역사와 맞물리며 참신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김용 소설 중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작품!
“이 소설만큼 완전하고도 깊이 있는 작품은 없다.”
<신조협려>는 무협소설로는 드물게 ‘정(情)’, 즉 ‘사랑’을 주제로 설정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그래서 무협소설 평론가 예광은 이 책을 정서(情書)라고 표현했다). 이 작품에는 긴박감 넘치는 무공 대결과 함께 애틋하고 찢어질 듯한 사랑이야기가 아로새겨져 있어 큰 감흥을 안겨준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 작품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고 손꼽고 있으며, 실제로 가장 많은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협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다.
작품 속에는 온갖 종류의 사랑이 넘쳐흐른다. 가장 기본적인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 부모와 부자, 형제, 사제 등 인간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랑이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무공비급과 고수들의 대결 등 무협의 세계가 흥미로운 사건과 함께 묘사되어 있고, 이것이 실제 역사와 맞물려 더욱 흥미를 돋운다.
<신조협려>의 시대배경은 전작 <사조영웅전>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조영웅전>의 주 무대는 송과 금, 몽고의 교체기였고, <신조협려>의 배경은 금나라가 몽고에 의해 멸망하고, 송이 몽고의 침략에 직면한 시기이다. 전작에서 금과 몽고에 대항해 청주성을 지키던 곽정은 <신조협려>에서도 여전히 몽고에 대항해 양양성을 사수하고 있다. 그러나 줄거리와 시대배경은 이어지지만 <신조협려>는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웅장한 서사와 생생한 캐릭터!
역사 속에 살아숨쉬는 영웅들의 영원불멸한 사랑이야기!
<신조협려>라는 제목은 고대 영웅 독고구패에게 무공을 익힌 신비한 새 신조(神雕)의 도움을 받아 무공의 고수로 성장한 뒤 사람들에게 신조협(神雕俠)으로 불리는 양과와 그의 연인 소용녀(侶, 짝 려)를 뜻한다. 즉 갖은 고난을 이기고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야마는 두 연인의 파란만장한 모험기라고 할 수 있다.
<사조영웅전>의 주요 인물이었던 양강과 목염자의 아들인 양과는 어수룩한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곽정과는 달리 굉장히 총명하고 의로우며, 고집이 센 편이다. 좋고 싫은 것이 분명한 성격 때문에 그는 갖은 사람들에게 미움과 오해를 사기도 하고, 이 때문에 큰 시련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늘 의로운 마음과 사랑에 대한 열정으로 이를 극복하며, 몽고가 남송을 침략할 때 큰 공을 세우기도 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틀은 양과와 그의 사부 소용녀의 사랑이다. 하지만 남송 시대에는 사부와 제자 사이의 사랑이 금기시되던 때였다. 사제 관계는 곧 부자 관계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반대하게 된다. 그러나 양과와 소용녀는 시대가 금기시하는 도덕규범과 예교를 넘어 결국에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야 만다.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또 다른 축은 몽고, 즉 외세이다. 홀필열(쿠빌라이의 한문식 표현)이 이끄는 몽고군은 호시탐탐 남송을 노리고 있다. 홀필열은 정예군사 외에 무공을 익힌 무림고수들 거느리고 있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금륜국사이다. 몽고의 라마승인 금륜국사는 남송의 고수들을 꺾으려고 갖은 계교를 부리지만, 매번 양과와 소용녀에게 당하고 만다.
이밖에도 양과의 주변은 온통 그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양과의 아버지 양강과 의형제 사이인 곽정은 천애의 고아가 된 양과를 따뜻하게 보살펴주려고 하지만, 곽정의 부인인 황용과 그의 딸 곽부는 양과가 교활한 성격을 지녔다며 계속 홀대한다. 그러다가 결국 양과는 곽정과 황용의 곁을 떠나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왕중양이 세운 전진교로 보내지는데, 여기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사건을 일으킨다. 그는 사부였던 조지경과 크게 다투고 결국 철천지원수지간이 되어 전진교를 떠난다. 그리고 전진교의 무공과 상극인 고묘파에 입문하게 되는데, 이 고묘파의 장문이 바로 소용녀이다. 그는 어두컴컴한 활사인묘에 기거하며 소용녀에게 무공을 익히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소용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소용녀는 전진교의 견지병에게 겁탈을 당하고,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처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되지만, 몽고와 중원의 고수들이 계속 이들의 사랑을 방해한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양과는 곽부에게 오른팔을 잃고 외팔이가 되는 아픔을 겪는다. 그리고 치명적인 독상을 입은 소용녀와 16년간이나 헤어지게 된다. 그는 소용녀가 16년 후에 만나자는 약속을 믿고 그날만을 기다리며 무공을 쌓는다.
양과의 사부이자 정인인 소용녀는 음미할수록 매력을 더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양과를 만나기 전까지 온갖 감정을 절제하도록 배웠다. 그 결과 함께 의지하며 살아온 손 노파가 전진파에 의해 죽었어도 ‘복수’라는 단어조차 떠올리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지금 죽으나 조금 있다 죽으나 다 마찬가지다”라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성격은 단순하고 유치하고 정은 있으나 차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양과를 만나면서부터 서서히 마음속에 ‘감정’이 생기게 되고, 사랑을 알게 된다.
이 책의 흥미를 끄는 또 다른 주인공들은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적련선자 이막수는 원래 소용녀와 동문지간이었으나, 사문을 배반하고 세상 밖으로 나갔다. 그러던 중 육전원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 뒤 그녀의 성격은 악랄하게 변해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등 갖은 악행을 저질러 무림의 공적이 되기에 이른다. 또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주변사람을 희생시키는 공손지와 그의 부인 구천척은 결국 원수가 되어 서로를 해하려 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정영과 곽양, 공손녹악, 육무쌍의 행로도 주목할 만하다.
또 천하오절로 알려진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의 활약상도 비중 있게 다뤄져 있다. 화산 정상에서 서독과 북개가 함께 끌어안고 죽는 장면이나, 중신통 왕중양의 젊은 시절 이야기, 출가하여 중이 된 남제 단지흥이 원한으로 얽혀 있는 사이를 화해시키는 과정, 여전히 건재한 동사 황약사의 활약상도 흥미롭기 그지없다.
이밖에 사랑을 상징하는 소재들의 등장도 이채롭다. 작품에 등장하는 ‘정화(情花)’라는 꽃이 대표적인데, 이 꽃의 가시에 찔리게 된 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그 즉시 독이 발작하게 된다. 양과와 소용녀도 이 가시에 찔려 고통을 받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이 16년간이나 헤어지게 된 동기가 된다. 또 정을 끊는다는 의미인 ‘절정곡(絶情谷)’, 시련의 상처를 입은 이막수가 읊조리는 ‘세상사람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과 사를 같이하게 하는가’라는 시도 또 하나의 사랑에 대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안겨준 고전 중의 고전 <신조협려>는 소설뿐만 아니라 각종 영화와 드라마, 게임으로 만들어지며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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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용녀 무공 기술이 너무 이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