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문혜란
사제서품식을 지켜본 적이 있다. 맨 바닥에 몸을 맡긴 사제의 등을 보고 있으니 납작하게 엎드린 때문인지 너무나 경이로워 눈물이 났다. 두 팔을 접어 마주 포갠 손등에 이마를 대고 다리를 곧게 뻗은 모습이 더는 낮아질 수 없는 자세다. 영원히 멈춘 듯한 그 순간이 심어준 긴 여운은 사제에 대한 존경과 신뢰로 남았다. 정면에서는 빤히 쳐다보지 못하는 소심함에서 비롯된 버릇이기는 하나 나는 타인의 등을 바라보기를 좋아하고, 등에 약하다. 길을 걷거나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행인들의 등을 곧잘 바라본다. 어깨를 곧게 펴고 경쾌하게 걷는 젊은이의 등에는 자신감이 넘쳐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 수굿한 등을 보면 생각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고, 쓸쓸한 등을 보면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나부(裸婦)의 그림을 볼 때도 앞모습보다 등에서 더욱 끌어당기는 힘과 아름다움을 느낀다. 발달된 성형기술은 어떤 부위든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다고 하나 등을 성형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교묘한 화장술로 남장을 한 여자이거나 여장을 한 남자라도 등[견갑골]만은 속일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얼굴로 대표되는 앞모습에 비해 등이 훨씬 더 본질적일 때가 있는 것이다. 처음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습관처럼 등을 본다. 그리운 사람을 떠올릴 때도 첫 번째가 눈이고 그 다음은 등이다. 무언으로 위로나 신뢰감 같은 속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는 등 뒤에서 감싸안는다. 반대로 누군가 내 등을 쓸어줄 때는 공감의 표현이거나 사랑하고 용서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등에 연민하고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만만하기 때문은 아닐까. 등은 열등한 것들의 은신처이며 허약함의 상징이다. 속임수나 매질에 이용되어도 방어 능력이 없으며 심장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외져서 자신의 손조차 닫지 않는 곳이 다. 마음이 실릴 뿐, 저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모든 욕망이 배제된 신체부위가 등이다. 꾸미거나 감출 수 없어서 더 쓸쓸하다.
내가 한 때 즐겨보았던 서부영화에서는 등뒤에서 총을 쏘는 총잡이는 보지 못했다. 한 발의 발사로 패자와 승자, 생사가 결정되는 위급한 순간에도 등은 쏘지 않았다.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악당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방어능력 없는 등 을 쏘는 것은 비겁함의 극치요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일 게다. 표정과 손짓 발짓, 언어로 표현하는 앞면은 복잡하다. 상대의 얼굴표정에 따라 속마음을 판별해 내야하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것이 미칠 파장을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등을 돌리면 하나의 풍경에 불과하다. 앞품을 내어주는 것은 숨은 의도가 있을 수도 있지만 뒤품을 내어주는 것은 사랑이며 나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동지이다. 나약해서 더 부드러운 등. 숨을 거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등이라면 두려움은 줄지 않을까. 등은 이면이다. 이면을 보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것에 대한 이해다.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이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며 생의 이면을 보는 것이구나' 싶었다. 우리 사는 일이 날마다 잔치가 아니어서, 보이고 싶지 않은 더 많은 것들은 이면에 있기 때문이다. 잔인한 흉악범이라도 끌려가는 등을 보고있으면 마음이 아파 온다. 세상의 잣대로는 용서할 수 없는 범죄일지라도 등에서 그의 이면이 짚어지기 때문이다. 허세를 벗어버린 인간의 뒷모습은 왜소하다. 그래서 등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자기 몸의 절반이지만, 보여주기는 해도 스스로는 볼 수 없는,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누군가 내 등을 유심히 본다고 느껴지면 나는 내 전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지곤 한다. 불화가 이해부족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볼 때,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쉬워진다. 결코 굽어지지 않을 것 같은 대쪽인 사람도 등을 응시하고 있으면 여린 구석이 보인다. 나는 누군가와 불화가 생길 때면, 그래서 쉽게 용서되지 않을 때는, 한참씩 그 사람의 등을 바라본다. 조금 떨어진 거리의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좋다. 그러면 진짜 미움은 생기지 않는다. |
첫댓글 어머니 아버지의 굽은 등이 생각납니다
우리를 키운 등, 그리운 등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