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5;18-22절 그리스도인의 가정
우리는 매년 결혼한 부부의 약 42% 가까이 이혼하다는 소리을 듣고 있습니다. 이혼은 , 고독, 가난, 불행한 자녀 라는 휴유증을 남긴다.
사탄은 가정을 끌어내고, 부모와 서로 싸우게 만들고, 가정을 혼란에 빠지도록 합니다.
지금은 낙태는 보편화 되었고, 많은 부부들이 자녀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행보에 귀찮고, 힘들기에 수고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더욱기 아이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
훨씬 더 결혼을 취소하고 헤어 지기 쉅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태 입니까?
이 결과 성장한 아이들은 결혼은 왜? 하는냐?
이기적인 욕망 문화 가운데 결혼은 서로간의 불신, 신뢰의 상실, 자아중심, 태만 고독의 특성을 보입니다.
사탄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에 도전 했었고,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지금도 당신의 가정을 전복시키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가정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사탄은 반드시 그 일을 해내고야 말 것입니다.
태초에 사탄은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가정을 무너뜨렸다.
그의 전략은 단순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리에 의심을 불어넣어 다른 교훈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정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오히려 너희가 더 나은 것을 얻을까 봐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닐까?’).
오늘날 사탄의 전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교회 안팍에서는 심리학자., 정신의학자, 그리고 상담자들은 사회학자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조언도 하고 권위 있는 책이라고 하면도 최선을 다하여 혼란과 어두움을 몰아내려고 하지만 술취함과 어두움은 더욱 점점더 짙어만 갑니다.
이 모든 혼란에 대항하여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1. 가정의 기본 설계를 무너뜨리는 동성애
믿음을 떠난 기독교 내부에 교사와 지도자들 동성애를 지지하교 있다. 그들은 여러 가지 변론과 언쟁을 통해(가령 성경의 무오성 거부, 바울이 쓴 내용은 시대착오라고 해석,
본문의 동성애는 모든 동성애가 아니라고 주장 등)
동성애를 가증한 죄로 여겨 사형으로 엄히 처벌하게 하셨다(레 18:22-30; 20:13).
예수 그리스도는 남자와 여자로 한 몸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가정 계획을 지지하셨고(마19:5),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의 감동을 받아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라고 엄중히 말씀하셨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다른 교훈을 주장한다.
결국 하나님이 창조하신 가정의 기본 설계를 벗어나 경건하지 않은(가증한) 가정을 인정하도록 강요한다.
2. 가정의 역할을 무너뜨리는 페미니즘(Feminism; 여성주의; 女性主義) 은[1] 전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여성에 대한 정치ㆍ경제ㆍ사회 문화적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견해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세우실 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분명히 세우셨다. 남편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어 그의 가정을 이끈다(창 2:24). 아내가 남편을 위해 지음 받았다(고전11:9). 그래서 성경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말한다(고전 11:3).
남편의 머리 됨 즉 권위는 희생적인 권위다.
이기적으로 자기를 내세우고 군림하기 위해 사용되는 권위는 이미 ‘아내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위배된다.
페미니즘은 기독교 내부에 깊이 침투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무너뜨리려 한다. 페미니즘은 그 권위 자체를 부정한다.
페미니즘은 아내에게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건 오래된 가부장적 사회가 만든(성경도 그 사회의 산물) 잘못된 사상이라고 비방한다.
그들에게 창조의 질서나 신약 성경의 가르침,
가정이 그려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아름다운 그림은 큰 의미가 없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내는 하와에게 내려진 저주에 따라 “남편을 지배하려” 한다(창 3:16).
가정 안에서 머리 싸움이 일어나고, 다툼과 분쟁이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이며 따르는 교회는 이런 다른 교훈에 맞서 싸워야 한다.
3. 부모의 양육을 무너뜨리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 중 하나로(출 20:12),
부모는 권위를 가지고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해야 한다(엡 6:4).
하나님께서도 신자를 아들처럼 대우 하셔서 징계 하신다(히 12:7-8).
하지만 오늘날 교회 안에서 체벌과 징계를 부모의 훈육 방식에서 제거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사에게 회초리를 빼앗은 세상은 이제 부모에게 회초리를 빼앗으려 한다.
부모의 훈육이 잘못된 동기와 방법으로 이루어진 몇몇 사례를 계속 부각시켜 여론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물론 어떤 형식이든 아동학대는 성경이 엄중히 금하고 있는 죄다.
하지만 부모가 절제하여 사랑으로 근실히 자녀를 징계하는 것은 결코 아동학대가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 다른 교훈에 따라 징계 없이 양육된 자녀가 일으키는 이기적이고 무절제한 행위, 경건에서 먼 행위를 더 많이 본다.
세상은 그 흐름에 따라 빠르게 변화되더라도, 진리의 기둥과 터인 하나님의 교회는 다른 교훈과 끝까지 맞서싸워야 한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가정을 구성을 이루려고 한다면 속죄함에서 시작 됩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미의 가정을 이룰수 없기 떼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드셨을 뿐만 아니라(창 1:27),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다(사 43:7).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이 땅에 충만할수록 하나님의 영광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과 더불어 사람을 통해 온 세상에 충만하게 보여 알려질 것이었다(롬 1:20).
그런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명령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택하신 방법은 아담과 하와, 남자와 여자를 통해 계속해서 자손이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것이었다.
왜 하나님에게 가정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가?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을 세상에 충만하게 채우기 원하시며 그렇게 하기 위해 가정을 사용하신다.
가정은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왜?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까?
성령의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 술 취하지 말라” 술은 가막을 둔화 시킵니다.
부도덕한 행위, 불안감, 죄의식을 몰아 냅니다.
바울은 술이 아닌 하나님의 성령 으로 충만 할 것을 대조해서 사용합니다. 성령에 의하여 통제 될 때
하나님과의 진실한 교제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성령에 의해 통제 되거나 성령에 충만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가족간의 문제 , 부부의 문제 ,,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불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불화의 관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자신의 마음속에 불화를 갖고 있을뿐 아니라 그의 가족간에도 불화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기독교인 자체가 출발점이 성령에 의해 철처히 통제될 때 비로소 이상이 현실이 됩니다.
성령께서 삶을 통제할 때 모든 인간의 관계가 통제 됩니다. 그분의 능력은 우리 안에서 삶의 유용한 원리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입니다.
21 절]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성도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 한다면 다른 사람 에게 복종 합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왜? 싸움합니까? 복종하지 않는대서 시작 됩니다.
우월해지려고,
권리을 주장하려고,
고집대로 하려고,
자신의 의견대로 지배 하려고 싸움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삶은 정상을 차지 하려는 싸움이 아니라 ,
바닥을 차지 하려고 하는 싸움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르게 가정과 관계의 관계을 기초 하는 것 입니다.
“복종”에 해당하는 헬라어인 “후포타소”는 생생하게 장면을 묘사합니다. 이는 군사 용어로서 계급의 아래에 위치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자신을 남보다 낮은 자리에 두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의미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상호복종의 관계을 설명하기위해서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아내가 --남편이 --- 자녀가 “ 복종의 관계 에서 시작 해야 한다.
그리스도 께서 교회을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
아내을 위해 죽는 것 보다 더 위대한 복종행위는 없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을 위하여 하신일을 자기아내에게 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을 지시고, 우리을 대신하고, 우리을 위해 돌아가셨다. 이처럼 역사상 가장 큰 복종 행위을 하셨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행위는 가정안에서 주도적 책임의 포기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도록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 역시 부모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역시 복종해야 합니다.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은 말씀에 의지하여 당신의 자녀을 섬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부모는 자녀을 자극하여 노엽게 만들지 말고 자녀의 감수성이나 요구에 굴복해야 한다.
말하자면 돌보고 부양하고 가르치는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즉 하나님안 에서 남자, 여자,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다.
* [영 이란는 말의 의미는 당신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성령의 통제를 받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며 기쁨이 충만한 사람.
그 삶의 사소한 모든 것에 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감사로 가득한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복종하고자 하는 사람. 우리가 찾는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 자신을 남보다 낮은 자리에 두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성경 속에서 겸손이나 온유함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비슷한 생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6은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13:17은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순종하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2:13에서는 “인간의 모든 제도를 순종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5는 “장로들에게 순종하라”고 하며
야고보서 4:7은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명령합니다.
로마서 13장1절 권세는 “ 하나님께로 나자 않음이 없다”
하나님은 권위와 복종이 없이는 우리가 이땅에서 정부를 가질수 없다는 것을 알고 게십니다.
하나님은 경찰, 군대, 인간이 만든 제도 , 권세 앞에 복종하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 께서는 권위와 복종의 기반 위에서만 사회가 지속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의 관계에서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권위와 복종이 깨어지면 생계의 유지, 행동의 절제, 방향의 제시 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정부 상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듬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버려 낮추셨고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결혼과 가정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면 지금 말한 이런 것들이 그 성패를 좌우합니다. 영적 헌신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으로) 서로에게 복종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의미있는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