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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사용자 엄정 처벌과 조속한 대법원 판결을 요구하며 야간문화제를 하던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통투쟁’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연행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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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이 31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개최하는 정부 비판 집회에 대해 경찰이 30일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다. 서울 2만명 등 전국적으로 3만5천명이 참석할 것으로 신고된 집회인데, 경찰은 서울 5천여명을 비롯해 전국에 120여개 부대 7500여명을 배치해 대처하겠다고 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필요한 경우에는 캡사이신 분사기 사용도 준비해야 한다”며 물리적 진압 방식까지 지시했다. 아직 열리지도 않은 집회를 두고 마치 폭력 사태라도 벌어질 것처럼 불안을 키우고 강경 대응을 엄포 놓는 것 자체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는 행위다.
윤 청장은 “집회 및 행진 시간을 제한하여 금지했음에도 시간을 초과하여 해산하지 않고 야간문화제 명목으로 불법 집회를 강행하거나 도심에서 집단 노숙 형태로 불법 집회를 이어가 심각한 시민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현장에서 해산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행법과 판례에 비춰보면, 윤 청장이 언급한 상황들이 곧바로 불법 집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적인 폭행·손괴 등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이 발생하지 않는 한 집회·시위를 보장하는 게 헌법 정신이며 현행법의 취지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시간제한 통고를 한 오후 5시까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집회 계획을 짰다”고 밝혔다. 경찰과 충돌을 피하며 평화롭게 집회를 진행할 뜻을 밝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대규모 부대 배치와 물리적 진압 방침을 공표하는 등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 게 되레 충돌 가능성을 키우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지난해 경찰청 의뢰로 나온 연구용역 보고서도 ‘정치적 결정에 따른 강력한 진압·통제가 오히려 무력 충돌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하면서 사전 대화·협의·조정 노력을 강조했다고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전제조건으로, 정치적·시민적 자유의 수준을 평가하는 주요한 척도다. 과거 강경 진압 과정에서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지곤 했지만 근래 들어 집회·시위의 자유가 위협받는 일은 줄어들었다. 미국 프리덤하우스의 ‘2023 세계자유지수’에서도 우리나라의 집회·시위 자유는 만점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최근 정부·여당의 강경 드라이브 속에 ‘집회·시위 탄압 국가’로 회귀하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는 우리 스스로 ‘자유 없는 나라’로 낙인찍고, 국제사회를 향해 그토록 ‘자유’를 역설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이중성을 자인하는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