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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당하는 바울
사도행전 2:27~36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 의하여 붙잡혀서 죽을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 지역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동족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에 대하여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가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소아시아 지역의 유대인들의 눈에 띄여서 그들의 선동에 의하여 유대인들에게 잡혀 주먹 등으로 맞아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명절에 모인 유대인들의 치안을 위하여 대기 중이던 성전 옆의 안토니오 요새에 있던 로마 군대의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게 이 소식이 알려져서 그가 즉각 로마 군인들을 출동시켜서 사도 바울을 폭도로 변한 유대인들의 손에서 일단 구출해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의 길고 긴 그의 구금 생활이 시작됩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보면서 다음 두 가지의 영적 교훈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은 이번 예루살렘 여행이 매우 위험한 것인 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방 지역의 유대인들이 그를 향한 반감이 너무 극심해서 몇 달 전에도 고린도 근방에서 배를 타고 올 때 그를 죽이려고 하는 음모가 발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을 사도 바울이 방문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 굴로 제 발로 들어가는 것처럼 위험한 일임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야고보 선생과 다른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그에 대한 유대인들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사도 바울로 하여금 나실인 서약을 한 사람들의 결례 예식을 돕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조치를 취하였고 사도 바울도 조심했으나 결국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의 눈에 띄이게 되었고 그들의 선동에 의하여 결국 반 율법주의자, 성전 모독자로 내몰려서 잡혀서 매를 맞아 죽을 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과 예루살렘 장로들 곧 예수님의 사도들의 조심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도가 잡히게 된 것은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미래에 대하여 전혀 아무런 관여를 하지 못해서 그렇게 잡히게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들렀던 여러 교회들에서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결박되고 고난을 겪고 이방인에게 넘겨질 것에 대하여 예고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빌립보, 드로아, 두로, 가이사랴 시에 있었던 교회에 들렀을 때마다 형제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사도 바울이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체포되고 결박당하고 많은 환난을 당할 것을 계속 예고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앞날에 대하여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의 앞길에 험난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하나님의 영께서는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미리 예고해주심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마음에 미리 준비하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의 앞길에 대하여 다 알고 계실 뿐 아니라 그의 앞길도 다 미리 정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할 마음을 주셨고 마음에 작정하는 마음도 주셨습니다. 로마를 넘어서 서바나에 가서 복음 전할 포부도 갖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주님께서는 그가 예루살렘 감옥에 있을 때에 밤중에 그의 곁에 나타나 서서 이르시기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사도행전 23:11)
고 말씀해주신 바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의 모든 앞길을 다 미리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앞길도 다 정해놓으신 분이십니다.
시편 37:23 말씀에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39편 16절에서도 이르기를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의 모든 생애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날이 오기도 전에 우리의 모든 일들을 다 정해놓으신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앞길에 일어날 일도 그가 다 미리 알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갈 길도 다 정해놓으신 바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나날을 하나님께 맡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앞길을 미리 계획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요 꿈꾼다고 우리의 꿈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손 안에 놓여져 있습니다. 예레미야 10:23 말씀에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는 애초에 제사장 성읍인 아나돗에서 제사장의 길을 준비하면서 젊은 시절을 차근차근히 준비하면서 살았던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에게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재하시고 그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예레미야 1:5)
고 하시면서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는 본래 본인의 계획과 꿈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예상치 아니한 길로 그를 이끌고 그 시대의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증거함으로써 고향 아나놋 사람들의 미움과 친구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어 외롭게 살게 하셨습니다. 그는 본래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살고 싶었을 것이나 하나님은 그에게 결혼도 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게 쫄딱 망하게 될 운명인데 선지자가 굳이 결혼할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생각하셨는지 하나님은 그를 혼자서 살도록 결혼을 금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철저하게 자기의 인생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깨달았기에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합니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다윗도 고난이 많은 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주소서”(시편 31:15)
이 말씀대로 우리도 우리의 모든 삶을 미리 정하시고 우리의 앞날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속속들이 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를 다 위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그의 뜻 가운데서 정하신 선하신 뜻대로 인도해주시도록 우리 삶을 온전히 하나님 손에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제 생각에는 우리가 우리의 모든 미래를 위하여 기도를 많이 쌓아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선하신 뜻을 따라 우리 삶을 인도해주시기를 평소에 기도를 많이 쌓아 두어야 하겠습니다. 기도는 마치 영적인 저축과 같아서 저축해놓은 만큼 하나님의 영께서 더 긴밀하게 우리 인생의 길을 주밀하게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미래에 대하여 자주 오래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드리고, 선하신 뜻을 따라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진대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신 그의 정하신 뜻을 따라 그의 권능의 손으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앞길을 이끌어가시어 하나님의 정하신 바를 이루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고난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이방 선교 여행의 기록의 분량을 살펴보면, 사도행전 13장부터 20장까지는 사도 바울의 일차, 이차, 삼차 전도 여행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그 8장 분량의 기록을 통하여 사도 바울이 얼마나 성령께 붙잡힌 바 되어 이방 선교 여행을 통하여 귀하게 사용받으며 교회들을 세우고 영적인 싸움에서 큰 승리를 거두면서 복음을 힘차게 전파하였는가를 역동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오늘 본문 말씀이 나오는 사도행전 21장으로부터 사도 바울의 로마 입성을 기록한 사도행전 28장까지의 8장의 기록을 통하여 사도 바울의 고난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서 재판을 받으며 죄수의 신분으로서 불려나와 결박된 채 변론하며 죄수의 신분으로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후반부에서는 사도 바울의 재판을 둘러싼 지루하고 답답한 과정을 자세하고 길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의 공생애에 대한 복음서 기록자들의 기록 방식과 동일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삼년 반 동안의 공생애 기록 중에 예수님의 전반부와 중반부의 역동적이고 영광스러운 공적 사역의 열매들을 기록한 부분보다 도리어 그의 체포와 고난과 수치와 빌라도의 재판과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기록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서의 기록자들과 사도행전의 사도 바울의 고난에 대한 누가의 기록을 통하여 원 저자인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우리 인생의 고난의 과정이 기억할 가치가 없는 시간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인생에서 고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성도 된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영광스러운 모습들만 하나님께서 주목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우리의 고난과 역경과 수치와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을 여전히 믿고 의지하면서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그 과정을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여기시고 기억하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서 영광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쓰시는 때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지만, 하나님의 일과 무관한 듯 보이며 추락한 가운데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가고 약해져가고 무능력한 가운데서도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 고난의 시절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여전히 기억하시고 귀하게 여기시고 소중히 간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 중에도 우리와 함께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그 캄캄한 고난의 긴 터널을 내내 함께 발을 맞춰 동행해주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고난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스승이 되어 줍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강하게 되고 성숙하게 되고 아름다운 내면을 가꾸어가게 됩니다. 다윗도 그의 노년기에 기록한 시편 119:71 말씀에서 고백하기를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성숙해지고 진실한 믿음, 견고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종종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고난의 기간이 오래 지속되어 다가온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족장 야곱은 나이 70세부터 그의 삶이 130세까지가 고난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60년 세월의 고난의 기간 중에 그가 외갓집 라반의 집에서 라헬을 아내로 맞아들이며 기다리던 7년 간의 기다림의 시간만이 그래도 행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30세에 마른뼈처럼 사는 낙이 별로 없던 그에게 갑자기 열한째 아들 요셉이 살아있고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애굽에 가서 147세에 세상을 떠났던 요셉 곁의 17년 기간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그 길고 긴 고난의 기간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고난의 때나 행복의 때나 변함없이 함께하셨고 그와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그 아들 요셉은 17세로부터 30살까지 14년을, 다윗은 약 15년 동안의 어린 시절에 쓰라린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중년에 범죄한 후 오랜 세월 징계의 슬픔 속에서 고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그 인생 여정 중에 고난이 때로 길고도 가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하여 인간은 낮아지고 깨어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의 페이지에서 많은 페이지를 장식하곤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질병이, 어떤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실패가, 어떤 사람에게는 인간관계의 실패가 하나님의 사람의 인생 여정에 오랫동안 어둔 그림자를 뒤덮곤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이 오래 되고 험할지라도 그 고난이 그의 신앙의 아름다움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의 신앙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도리어 빛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펄펄 날아다니던 사도 바울이 결박된 채 감옥에서 꼼짝 못합니다. 그는 기껏 뇌물이나 받으려는 천박한 총독 앞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거절당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자기의 높은 직위나 뽐내려는 헤롯 왕가의 왕과 공주와 고관들 앞에서 단 한번의 복음 전도를 했으나 거절당하는 일을 겪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로 지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시고 그의 고난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고난 중에 홀로 지내며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않은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 중에도 함께하시며 우리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며 함께해주시며 그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의 풍랑을 보낸다 할지라도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과 맞서지 맙시다.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사람이 펼 수 없습니다. 도리어 고난 중에 더욱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읍시다. 다윗처럼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장래를 그의 손길에 기꺼이 맡깁시다. 고난이 극심할수록 인내합시다. 다윗이 그 노년에 백발이 성성해지는 중에 원수들이 그의 영혼을 엿보고 저주하는 중에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 더욱 찬송하겠다(시편 71:14)라고 고백한 대로 우리도 고난이 깊어갈지라도 항상 소망을 품고 더욱 더욱 주를 찬송하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다윗과 바울이 믿은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심을 늘 기억하고 우리 인생의 길에 고난이 찾아온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며 우리의 삶을 맡기고 그와 가까이 동행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