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본문 : 행1:1-14
제목 : 성령이 임하시는 교회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 잘 기록한 곳이 사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 요한입니다. 이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에 대해서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하면 예수님의 사역도 끝나고 완성된 것 같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사도행전에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사역이 시작됩니다. 그 사역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통한 사역입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장은 예수님이 부활 후 40일간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명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곳이 바로 1장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들은 날마다 그 부활만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어깨를 펴고 다녔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사람들은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황홀감에 빠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이 떠나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낙심이 컸을 것입니다. 좀 더 부활의 주님이 함께하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좀 더 그 부활을 누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을 자랑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말하셨습니다. 왜 유익합니까?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보해사가 오신다고 했습니다. 바로 성령이 오신다고 하십니다. 성령을 통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 것을 주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이 기쁨에만 너무 심취하여서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2000년의 시간이 지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시작을 알려주는 곳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성령 약속장으로서 예수님의 약속대로 성령이 임함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행진되어진다는 것으로 시작되어집니다. 하나님의 행하심, 역사하심은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 사도들의 행진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냈으며 지금 성도들의 행진은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의 행진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약속을 아무에게나 하셨는가요? 길을 가다가, 혹은 잠을 자다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성령이 사람들에게 오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본문 1장을 중심으로 어떤 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을까요?
첫째로 택하신 자, 즉 선택하신 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2절).
택하다의 헬라어는 ‘에클레고’로 골라내다. 집어내다. 뽑으시다. 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자녀들을 많은 사람 가운데서 골라내시고, 집어내시고, 뽑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땅에 74억이 넘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죄 사함 받고 거듭난 사람, 즉 예수를 믿으면 선물을 받는다고 합니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선물은 감사하거나 사랑하는 자에게 하는 것입니다. 선택 받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우리는 성령의 선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왜 선택 받은 자들에게 주십니까?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택함 받았다 해서 좋아하는 것은 이릅니다.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택함 받은 자로 약속된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고, 행해야 합니다. 3절 끝부분에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사십 일 동안 택하신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주님이 가신 후에 오실 성령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능력과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이 물어보는 내용들에 대해서 주님은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앞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것도 전했습니다. 가끔 우리는 성령에 대해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귀신처럼, 아니면 또 다른 접신하는 것으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것은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말씀의 가르침에 믿고 순종하는 택함 받은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택함 받은 자로서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봉사와 직무를 지켜야 합니다(17절, 25절). 봉사와 직무를 맡은 것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직무를 지킬 때 가능한 것입니다. 17절과 25절에 유다처럼 직무를 지키지 못한 자는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후손에까지 부끄럽게 되지만, 26절의 맛디아처럼 봉사와 직무를 지키므로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며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함께 모인 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4절).
여기서 함께한다는 것은 ‘함께 식사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밤을 새우고, 함께 머물다’라는 구체적이고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함께라는 말 속에는 ‘같은 뜻을 가진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로마인들과 유대인들의 핍박은 날로 더해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떠나시면 그 자리를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살기 위하여 도망치거나 아니면 숨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힘들고 어려워집니다. 그럴 때 힘이 되는 것이 바로 함께하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이렇게 우리는 겨울을 나기 위하여 옮겨 다니는 철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앙의 연조는 오래되었지만 깊이가 한 뼘도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고비 때만 교회로 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습니다. 밥을 하다가 보면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불을 끄고 뜸을 들입니다. 그 열기로 완전히 익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익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기웃거리는 교회 생활이 아닌 머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약속하신 성령이 강림하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행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무엇이라고 합니까? 기다리고 있다가 보면 얼마 있지 않다가 반드시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 힘들어도 기다리고 어려워도 기다리고, 그 자리를 지키다 보면 성령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통하여 아들을 얻으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하지만 그 조급함 때문에 얻은 아들이 아브라함의 인생에 큰 고민거리로 다가왔고 결국에는 문제를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잠22:28)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구약 시절 당시 남의 재산을 탐하여 지계석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계석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와 개인에게 주신 기업의 표시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땅이기에 꼭 지켜야 된다고 믿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신앙의 지계석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여러분이 서 있어야 할 자리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리를 옮기지 마십시오. 한번 여러분이 정한 신앙의 지계석은 여러분의 평생에 간직하십시오. 성령은 그러한 자들에게 오십니다.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떠나지 않고 함께 모일 때 역사하십니다.
셋째로 기도에 힘쓰는 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14절).
기도에 힘썼다는 것은 기도에 열중했다는 것이며, 부지런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일을 굳게 지키며 계속했다는 것이며, 기도를 고집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도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참고, 기도로 인하여 어떤 일도 견디고, 버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아니고서는 어떤 행동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가 다락방에 120명의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기도에 힘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좁디좁은 다락방에 모여서 그들은 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밤새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가신 후 120여명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날이 밝아지고 다시 어두움이 올 때까지 밤이 새도록 기도에만 전혀 열중하고,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하자고 제안한다면 아멘하며 찬성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왜 기도합니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기도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을 보면 기도하면 하늘이 열린다고 합니다. 기도하면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보신다고 마태복음 6장 6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행8:15-17)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언제 성령이 임하였습니까? 바로 기도할 때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 받기를 원하시면 기도하십시오. 성령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성령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누구의 손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은 기도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새로운 사역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1장 8절처럼 성령이 오심으로 권능도 생기도 복음도 전할 수 있습니다. 닥치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따라서 하나님의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을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택함을 받은 자에게 오십니다. 성령은 함께 모인 자들에게 오십니다. 성령은 기도하는 자에게 오십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 영명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오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