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유머
1. 로널드 레이건(1911∼2004년)에 관해 많이 알려진 얘기들이 생각난다.
그는 1981년 70세에 미국 40대 대통령이 됐다.
그리고 1984년 73세에 재선에 도전해 월터 먼데일 후보(당시 56세)와 TV토론에서 만났다.
먼데일 : 당신의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레이건 :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습니다.
먼데일 : 그게 무슨 뜻입니까?
레이건 :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시청자=폭소!
먼데일은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건의 고령을 걸고 넘어지려다 자신의 경험 부족을 부각 시킨 꼴이었다.
레이건이 정색을 하고 ‘왜 나이를 따지느냐. 나는 건강하다’는 투로 응수 했다면 먼데일은 더 파고들 여지를
포착했을지 모른다.
다른 장면에서 레이건은 “배우가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어떻게 배우가 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만약 그가 ‘나는 배우만 한 것이 아니다.
일찍이 1962년에 공화당에 입당 했고, 미국 3 대주(州)에 드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지냈다.
그래도 자격이 없단 말이냐’는 식으로 맞받았다면, 사실이긴 하지만 레이건의 매력은 돋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허파에 총 맞고도 잊지 않은 유머
* 대통령 레이건이 기자들의 고약한 질문에 시달리다 “개××(son of bitch, S.O.B.)!”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며칠 뒤 기자들이 ‘S.O.B.’라는 글자를 새긴 티셔츠를 레이건에게 선물했다.
‘개××’ 발언의 복수를 당한 레이건은 “기자 여러분은 모두 애국자입니다.
예산 절약(Saving Of Budget·SOB)하란 뜻이지요. 충고 잘 새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해피 엔딩이었다. 모욕을 참지 못하겠다며 권력과 권위로 기자들을 누르려 했다면 대통령과 언론의 불화만
커졌을 가능성이 있다.
* 어느 날 레이건은 연설을 이렇게 시작했다.
“나에게는 대통령이 될 만한 아홉 가지 재능이 있습니다.
첫째, 한 번 들은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탁월한 기억력!
둘째, 에 또 … 그게 뭐더라? …”
청중은 박장대소하며 그의 연설을 받아들일 마음의 문을 열었다.
독선이 느껴지는 주장보다 이런 허(虛)와 유머가 정치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 1981년 3월 정신병자 존 힝클리가 노동계 지도자들과 오찬을 하던 레이건을 향해 총을 쐈다.
총알이 심장에서 12cm 떨어진 대통령의 허파를 관통했다.
“여보, 난 고개 숙이는 것을 잊었을 뿐이야!”
의식이 깨어난 후 레이건이 부인 낸시에게 한 첫마디였다.
수술실로 들어 가면서는 의료진을 향해
“당신들 모두가 훌륭한 공화당원이라는 것을 나에게 확신시켜 주시오”라는 말로 수술 성공을 부탁했다.
비상상황에 국민을 안심 시키는 여유, 이것도 중요한 리더십이다.
*. ‘다수의 행복은커녕 소수의 특권만 증식 시킨’ 공산주의를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강하게 비판한 인물이 레이건이다.
하지만 그는 목청만 높인 것이 아니라 유머로 공산주의의 허구를 세계에 각인 시켰다.
“소련의 헌법은 발언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헌법은 발언 후의 자유와 집회 후의 자유를 보장한다.”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읽은 사람이고, 반공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잘 아는
사람이다.”
레이건은 소련 붕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미국 지도자로 역사에 남았다.
레이건은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로 불리며 사후에도 미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 2위가 에이브러햄 링컨(14%)이었고
1위가 레이건(19%)이었다.
레이건의 말처럼 대통령은 국민이 바라는 일을 위해서는 배우의 역할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전에,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인물이든 자신을 능숙하게 연기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연기’도 자신의 생각과 같지 않은 국민의 생각, 그리고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따가운 소리까지
겸허하게 받아들일 때 ‘가식이 아닌 진정성’으로 국민 가슴을 파고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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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레이건」미국 대통령의 소박한 위트와 재치 넘치는 유머는 그의 제 2의 천성이다.
「레이건」의 유머와 위트는 스트레스를 푸는 청량제일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손쉬운 무기이기도
하다.
「레이건」대통령의 유머 구사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열 마디 장황한 설명보다도 한마디 유머가 폭소를 불러 일으켜 긴장감을 쫓아내고 상대방을 항복 시킨다.
그가 유머를 어찌나 잘 구사하던지 일부에서는 일부러 유머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지난 3월 30일 가슴에 총탄을 맞고 병원에 입원한 「레이건」대통령이 문병 온 백악관 참모와 각료들
에게 『가게는 누가 지키지?』라고 했을 때, 그의 유머 감각이 타고난 것임을 증명한 바 있다.
「레이건」의 유머는 경박스럽지도 않고 억지가 없어 서부 사람들의 투박한 멋을 풍겨준다.
「레이건」은 유머를 쓸 줄 아는 대통령이다.
말썽 많은 B-1폭격기 생산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레이건」은 새로운 방위 용 항공기 제작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는 『그것(B-1폭격기)이 항공기인 줄 내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나는 그것이 군용 비타민인 줄 알았지』라고 시치미를 뗐다.
그렇게도 반대했던 쪽에서도 폭소를 터뜨렸고, 「레이건」은 B-1폭격기가 비타민 만큼이나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인식 시켰다.
「트뤼도」수상의 초청으로 캐나다를 방문한 「레이건」이 반미 시위로 연설을 방해 받자
『아마도 내가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라고 미국에서 데모 대를 수입한 모양』이라고 웃겨
「트뤼도」수상의 난처한 입장을 감싸줬다.
「레이건」의 위트는 그의 오랜 할리우드 배우 생활에서 갈고 닦아졌다.
그 솜씨는 요즘 대 의회 로비 활동이나 외국 지도자를 만났을 때 또는 대 국민 연설을 할 때 적절하게 구사된다.
대통령 집무실을 방문한 상·하 의윈들은 「레이건」이 문제 토론에 보다 농담하는데 더 시간을 쓴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조크는 정치적 문제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
지난 6월 「조지·부시」부통령의 57회 생일을 맞아 올해 70세의「레이건」은 이렇게 축하했다.
『우리는 매우 좋은 관계에 있다. 「조지」는 대단히 꾀 발라서 한번도 그가 얼마나 젊다는 것을 나에게 얘기하지
않는단 말이야-.』
「레이건」의 부인「낸시」여사도 입심이 대단하다.
때로 사치 하다는 말도 듣는 「낸시」여사는 어떤 포스트 카드에 『낸시 여왕』이란 글귀가 씌어있는 걸 보고
『나는 왕관 따위는 쓴 적이 없어요. 그걸 썼다가는 머리카락이 온통 엉망이 되거든요-』라고 받아 넘겼다.
「레이건」의 위트는 거의 자연 발생적이고 어떤 사태를 맞아 조금도 지체 없이 튀어나오는 것이 매력이다.
최근 백악관에서 있었던 한 테이프 커팅 식전에 참석했던 「레이건」은 비서가 건네준 가위를 한번 쓱 휘두르
고는 『오늘 아침 내내「에드윈· 미즈」의 넥타이를 자르는 연습을 했었거든-』하면서 테이프를 가위질 했다.
장내는 물론 폭소가 쏟아졌고-. 「에드윈·미즈」고문은 「레이건」에겐 만만한 부하로서 툭하면 그를 걸어
농담에 붙인다.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에서 「레이건」은 그를 둘러싼 기자들에게 『내가 처음 캠프 데이비드에 왔을 때,
「에드윈·미즈」는 내 속옷과 티셔츠에 온통 내 이름을 박아 넣었었지-』라고 했다.
은연중에 「미즈」가 자기의 충복 임을 과시한 것이다.
「레이건」은 총을 맞아 응급실로 옮겨져 수술을 기다리면서 집도 의사와 간호원에게
『당신네들도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소』라고 조크를 던졌다.
최근 백악관 기자실을 개수, 다시 문을 열었다. 기자실 아래층은 원래 수영장이었다.
오픈 파티에 참석한 「레이건」은 『그러나 기자실 바닥이 밑으로 떨어져 수영장에 풍덩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들은 말라고』하며 웃겼다.
「레이건」의 위트와 유머는 그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또 국민을 느긋하고 포근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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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81년 미국의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존 힝클리가 쏜 총알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가며
이렇게 말했다.
“아쉽네. 내가 예전처럼 영화배우였다면 잘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병원에서 응급처치 후 기자들이 몰려왔다. 레이건 대통령은 그들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당신들은 공화당원들이 아니죠? 나는 오늘 수술팀들이 모두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는데…”
그의 유머에 미국 국민들은 안심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83%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다음 해 그의 지지율이 30%까지 떨어지자 보좌관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보좌관들에게 레이건이 또 한방의 유머를 날렸다.
“그까짓 지지율 걱정하지 말게. 다시 총 한 방 맞으면 깨끗이 해결될 테니…”
*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도 유머 덕을 톡톡히 본 인물이다.
1984년 미국 대선에서 경쟁자인 먼데일 후보가 첫 번째 TV토론에서 유리한 여론을 형성했다.
TV에 나타난 레이건의 모습이 먼데일 보다 상대적으로 늙고 피곤하고 에너지가 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눈치 챈 먼데일이 두 번째 TV토론에서 쐐기를 박는 듯 한 발언을 했다.
“대통령의 나이가 좀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레이건이 대답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이슈로 삼지 않겠습니다.
상대 후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2차 TV토론 후 전세는 역전되어 레이건의 지지도는 급상승 하였고 40대 대통령으로 재선 하였다.
*레이건이 하루는 유명한 피아니스트를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연주회를 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열렬한 박수가 나왔고, 이어 대통령 부인 낸시 여사가 무대에 오르려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진 아내에게 레이건이 말했다.
“여보. 지금은 넘어질 때가 아니잖소.
분위기가 썰렁해서 박수나 웃음이 필요할 때 넘어지기로 약속하지 않았소.”
그 순간 많은 사람의 환호와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의 유머는 기자 회견장에서도 유감 없이 나타났다.
한 기자가 날카롭게 추궁했다.
“각하. B1(폭격기)에 예산을 너무 많이 쓴 것 아닙니까?”
그러자 레이건은 보좌관에게 나무라는 듯이
“비타민 B1 사는데 돈을 그렇게 많이 쓰나? 그러면 안 돼”라고 딴 청을 했다.
회견장은 웃음 바다로 변했다.
그러자 곧 이어 “다음 질문 없습니까?”하고 곤란한 상황을 벗어났다.
*한 번은 레이건이 보좌관인 존 로저스와 백악관 집무실에 단 둘이 있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대통령과 단 둘이 있게 된 로저스는 긴장했고 이를 알아차린 레이건이 갑자기
로저스에게 질문을 했다.
“저기 저 초상화 보이지? 조지 워싱턴 대통령께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엇을 하고 계신 줄 아나?”
로저스가 당황해서 모른다고 하자 레이건은
“나는 저분이 가려운 곳을 긁는 것으로 생각하네”라고 말했다.
*소련의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만난 레이건이 그에게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어떤 모스크바 시민이 식료품을 사려고 줄을 섰는데 그 줄이 너무 길어 줄어들지 않자 그만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는군요.
그 시민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모든 것이 고르바초프 탓이다. 나는 지금 고르바초프를 죽이러 간다’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대요.
그런데 얼마 후 그 사람이 씩씩거리며 다시 돌아왔지요.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고르바초프를 죽였는가?’
그러자 그는 한숨 쉬며 말했다.
‘그곳 줄은 여기보다 두 배는 더 길었네.’”
레이건은 고르바초프나 영국 대처 수상 같은 외국의 지도자들과 회의할 때 항상 웃는 얼굴로 긴장을 푸는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어떻게 정상회담을 할 때 만면의 웃음을 지을 수 있는가에 대해 기자가 물었다.
레이건은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어요. 왠지 아세요? 회담 들어가기 전 나는 상상을 한답니다.
상대 정상들이 모두 빨간 내복을 입고 앉아 있다고 말이죠.
우리 모두 빨간 내복을 입고 회의하는데 안 웃을 수 없잖아요.”
*레이건은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이다.
그러나 배우로서 그의 명성은 그리 크지 못하였고 B급 영화 59편을 남겼다.
그러나 미국 노동 총연맹 산하의 영화 배우 협회장에 선출되면서 정치에 대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1966년 작은 정부와 감세를 내걸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면서 대통령을 향한 꿈을 꾸게 되었으며
드디어 198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재선을 노리던 민주당의 지미 카터에게 압도적 승리를 거두고 제 40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보수 강경의 국내외 정책으로 많은 반발도 있었지만 1987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중 거리 핵
전력 폐기 조약’을 맺어 냉전을 종식 시키는 업적을 이룩했다.
그는 퇴임 5년 후 알츠 하이머병 진단을 받고 투병 하다 2004년 6월 5일 캘리포니아 자택에서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2011년 갤럽 여론조사에서 그는 링컨을 앞질러 미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대통령의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신뢰와 웃음을 주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레이건을 위대한 대통령으로 사랑한다.
원초적 싸움과 비난의 화살만이 날아다니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꼭 배워야 한다.
URL: http://www.simin24.com/?doc=news/read.htm&ns_id=67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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