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水滸傳•제 128편
일행은 산채를 떠나 나루로 가서 배를 타고 곧장 서악묘로 가면서, 화주에는 알리지 않았다. 대종은 화산의 도교 사원 운대관(雲臺觀)의 주지와 사당 관리자에게 알려, 배가 도착하자 나와서 영접하게 하였다. 향화와 등촉, 깃발과 보개 등을 앞에 배열하고 먼저 어향을 정자에 올려놓고, 사당의 인부들이 금령조괘를 받들고 인도했다. 주지가 나와 태위를 알현하자, 오용이 말했다.
“태위께서 도중에 병환이 나서 편치 않으시니, 가마로 모시시오.”
좌우에서 부축하여 태위를 가마에 태우고, 서악묘 안의 관청으로 모셔가 쉬게 하였다. 객장사 오용이 주지에게 말했다.
“성지를 받들어 어향과 금령조괘를 가지고 금천성제(金天聖帝)께 공양하러 왔는데, 본주 관원들은 무슨 까닭으로 태만하여 영접하러 오지 않았소?”
주지가 대답했다.
“이미 사람을 보내 알렸으니, 곧 올 겁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화주에서 먼저 보낸 관원 하나가 6~70명의 공인을 데리고 술과 과일을 가져와서 태위를 뵙고자 하였다. 태위로 가장한 졸개는 비록 외양은 비슷했지만 태위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침상에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만 있었다.
관원이 보니 깃발이나 의장 등이 모두 조정에서 만든 것들이어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객장사가 거짓으로 두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아뢴 다음에, 관원을 들어가게 하여 멀리 계단 아래에서 알현하게 하였다. 가짜 태위는 다만 손짓만 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을 수가 없었다. 오용이 관원을 나무랐다.
“태위께서는 천자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대신으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성지를 받들어 여기까지 향을 사르러 오셨는데, 생각지도 않게 도중에 병환이 나서 아직 낫지 않았소. 그런데 본주의 여러 관원들은 어찌하여 멀리까지 나와 영접하지 않았소!”
관원이 대답했다.
“앞서 지나오신 관아에서 보낸 공문이 본주에 오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보고가 없었고 게다가 예기치 않게 태위께서 먼저 사당으로 오셨기 때문에 미처 영접하러 나가지 못했습니다. 본래는 태수께서 오셨어야 하지만 소화산 도적들이 양산박 도적들을 규합하여 성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방비하느라 함부로 자리를 떠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소관을 먼저 보내 술과 예물을 바치게 하고, 태수께서는 뒤이어 알현하러 오실 겁니다.”
오용이 말했다.
“태위께서는 지금 술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는 상태이니, 태수를 빨리 불러와서 제례를 상의하도록 하시오.”
관원은 즉시 술을 꺼내 객장사와 수행원들에게 잔을 바쳤고, 오용은 다시 들어가 아뢰고 열쇠를 받아 나왔다. 관원을 데리고 가서 상자의 자물쇠를 열고 비단 주머니에서 금령조괘를 꺼내 대나무 장대에 거는 것을 보게 하였다.
이 금령조괘는 동경 황실관청의 최고수 장인이 만든 것으로, 칠보진주를 박아 넣고 중간에 홍사등롱을 매달아 성제전 중앙에 걸어 놓는 것이었다. 황실관청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민간에서는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오용은 관원에게 보여주고 난 다음, 다시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중서성에서 보낸 여러 공문들을 관원에게 건네주면서, 빨리 태수를 불러 날을 잡아 제사지내는 일을 상의하라고 하였다. 관원과 많은 공인들이 모두 여러 물건들과 공문을 다 본 다음, 화주부로 돌아가 하태수에게 보고하였다.
송강은 암암리에 갈채하며 혼자 말했다.
“저놈이 비록 교활하다 하더라도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때 무송은 이미 사당 문 아래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용은 또 석수에게 날카로운 칼을 감추고 있다가 무송을 도와주도록 했다. 그리고 대종도 우후로 변장하게 하였다.
주지가 음식을 올리고, 일꾼들에게 사당 앞에 의장을 진열하게 하였다. 송강이 한가롭게 거닐면서 서악묘를 구경해 보니 과연 잘 지은 건물이었다. 전각이 평범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천상세계 같았다. 송강은 정전에서 향을 사르고 재배하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관청으로 돌아오자 문지기가 보고했다.
“하태수께서 오십니다.”
송강은 화영·서녕·주동·이응 네 호위병을 불러 각기 무기를 들고 양변으로 늘어서 있게 하고, 해진·해보·양웅·대종은 각기 무기를 감추고 좌우에 시립하게 하였다.
한편, 하태수는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사당 앞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리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왔다. 가짜 객장사 오용과 송강이 보니, 하태수가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모두 칼을 든 공인들이었다. 오용이 소리쳤다.
“조정의 태위께서 이곳에 계시니, 잡인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불허한다!”
공인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하태수가 혼자 앞으로 나오자, 객장사가 말했다.
“태위께서 태수를 들라 하십니다.”
하태수가 관청 앞으로 들어와 가짜 태위에게 절을 하자, 오용이 말했다.
“태수는 자신의 죄를 아는가?”
태수가 말했다.
“하모는 태위께서 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오용이 말했다.
“태위께서 칙서를 받들어 이곳 서악에 향을 피우러 왔는데, 어찌하여 멀리까지 나와 영접하지 않았는가?”
“화주에 당도하셨다는 보고를 최근에 받은 적이 없어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오용이 소리쳤다.
“잡아라!”
그러자 해진·해보 형제가 단도를 뽑아 들고 달려들어 하태수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머리를 잘라 버렸다. 송강이 소리쳤다.
“형제들! 해치워라!”
태수를 따라왔던 3백여 명이 깜짝 놀라 멍하니 있는 동안, 화영 등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허수아비를 베듯 모두 베어 쓰러뜨렸다. 절반 정도는 사당 문 아래로 달아났지만, 무송과 석수가 칼을 휘두르고 사방에서 졸개들이 공격하여 3백여 명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뒤이어 사당에 도착한 자들도 모두 장순과 이준에게 죽음을 당했다.
송강은 급히 어향과 금령조괘 등을 수습하여 배에 싣게 하고 화주로 갔다. 화주성 안에서는 이미 두 군데서 불길이 치솟고 있어, 일제히 성안으로 쳐들어갔다. 먼저 감옥으로 달려가서 사진과 노지심을 구하고, 창고를 열어 재물을 털어 수레에 실었다. 일행은 화주를 떠나 배를 타고 소화산으로 돌아왔다.
송강은 어향·금령조개·깃발·의장 등을 돌려주고, 숙태위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금은 한 쟁반을 태위에게 주고, 수행원들에게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금은을 나누어주었다. 산채에서 송별연을 열어 태위에게 사례하고, 두령들이 산 아래까지 내려와 전송하였다.
송강은 숙태위를 전송하고 소화산으로 돌아와, 소화산 네 두령과 상의하여 재물과 양식을 수습하고 산채는 불태워 버리고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한편, 숙태위가 배에서 내려 화주성으로 들어가 보니, 성은 이미 양산박 도적들에게 함락당해 많은 병사들이 죽고 창고는 약탈당하고 말도 모두 빼앗긴 상태였다. 서악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했다.
숙태위는 화주의 관원에게 공문을 작성하여 중서성에 보고하게 하였다. ‘송강이 도중에 어향과 조괘 등을 강탈하여, 그로써 하태수를 속여 사당으로 오게 한 다음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숙태위는 사당으로 가서 어향을 사른 다음 금령조괘는 운대관 주지에게 넘겨주고, 밤새워 급히 동경으로 돌아가 모든 일을 천자에게 아뢰었다.
한편, 송강은 사진과 노지심을 구하고 소화산의 네 두령과 함께 이전처럼 세 부대로 나누어 양산박을 향해 가면서, 지나는 고을에서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다. 먼저 대종을 산채로 보내 알렸기 때문에, 조개 등 두령들이 산에서 내려와 송강 등을 맞이하였다. 일동은 산채로 올라가 취의청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연회를 열어 자축하였다.
다음 날, 사진·주무·진달·양춘이 재물을 내어 연회를 열고 조개와 송강을 비롯한 여러 두령들에게 사례하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지홀률 주귀가 산채로 올라와 보고하였다.
“서주 패현 망탕산에 새로운 도적이 나타났는데, 무리가 3천 명입니다. 두령은 도사로서 이름은 번서(樊瑞)인데 비바람을 부르고 용병이 귀신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마왕이란 뜻으로, 혼세마왕(混世魔王)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수하에 항충(項充)과 이곤(李袞)이라는 부장이 둘 있습니다. 항충은 방패를 잘 쓰는데 방패에는 비도(飛刀) 24개가 꽂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