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편안하고 행복하셨습니까? (예)
아주 대단하신 경지들이시네요.
이 세상을 사바세계다. 그러죠.
또 다른 표현으로는 고해(苦海)다. 그럽니다.
사바세계를 고해. ‘괴로울 고’ ‘바다 해’. 괴로움이 가득한 세상이다.라는 말이죠.
사바세계를 또 설명하는 두 글자가 있죠. 다잡(多雜)입니다. ‘많을 다’ ‘섞일 잡’.
가지가지 천차만별의 것, 수많은 것들이 같이 있다. 섞여 있다. 다 있단 말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기에도 들리기에도 또 느껴지기에도 아주 복잡다단합니다.
나누면 좋은 것도 있고 싫은 것도 있고 이쁜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사람의 성질머리들도 인구수만큼 다 다릅니다. 그래서 다잡이라고 그러는 데 계절만 해도 그렇죠.
여러분 이런 질문을 많이 하죠.
어느 계절이 제일 좋습니까?
봄여름 가을 겨울 중에 여러분은 무슨 계절을 제일 좋아하십니까?
봄이다. 또 가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겨울하고 여름이 더 서운해합니다. 그죠.
겨울은 추워서 이 추위가 얼른 지나가고 얼른 봄이 왔으면 하잖아요.
그래서 이제 봄을 재촉합니다.
봄을 재촉하면 봄을 좋아한다는 것은 겨울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고, 겨울한테서 얼른 봄으로 가려고 하는 구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동시에 피하는 마음이, 쫓는 것이 있으면 피하는 것이 동시에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제 초겨울인데 봄을 구해도 구할 수 없죠.
그래서 이게 괴로운 거예요. 이걸 구부득고(求不得苦)라고 합니다.
구부득고, 구하는데도 구할 수 없다.
또 만약에 여름이 싫다면 싫어하는 여름이 좀 안 왔으면 좋겠는데 봄은 또 얼른 지나가 버립니다.
싫어하는 것을 피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봄을 붙잡아 놓고 싶어도 봄은 떠나버려요.
그러니까 여름 싫어하는 계절을 만나는 것은 원증회고(怨憎會苦)라고 한다면 좋아하는 계절이 얼른 지나가 버린 것은 뭡니까? 애별리고(愛別離苦)예요.
좋아하는 것이 얼른 없어져 버린단 말이에요.
이것이 계절도 그렇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고 싫어하는 사람과의 인연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습니다.
환경도 좋아하는 환경을 오래 붙들어 놓고 싶은데 모든 것은 무상하잖아요.
제행이 무상입니다.
그래서 다 지나가게 돼 있고 또 추운 겨울이 오듯이 또 다른 상황이 오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계를 사바세계다 고해다 그러잖아요.
기본적인 것은 생로병사가 고통이라는 거예요.
이렇게 고해로 이야기하게 되면 마음이 무겁죠.
세상이 이렇다라고 우리가 꼬리표를 달고 세상을 보면 그런 것들이 도처에 있습니다.
이것도 괴로운 것으로 보이고 저것도 괴로운 것으로 보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세상은 어떻다라는 꼬리표를 달고 또 거기에 묶여버립니다.
그래서 이러한 다잡이고 고해인 이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교훈이 또 있죠.
그것은 이제 견뎌라, 견뎌라, 감입니다. ‘견딜 감堪’ 견뎌라.
다 맞아들여서 견디란 말입니다.
이걸 언제까지 견뎌야 됩니까?
겨울이 다 갈 때까지 추위를 견뎌라.
그리고 그다음 글자는 인이죠. 인, 참아라. 그리고 기다려라.
이것이 감인대(堪忍待)입니다. ‘견딜 감’ ‘참을 인’ ‘기다릴 대’ 자입니다.
그래서 이 고해의 바다를 건너고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지혜의 말씀 중의 하나가 감인대입니다.
견디겠다 이렇게 각오를 하면 견뎌집니다.
또 참겠다 하면 이게 인욕이잖아요. 그죠.
인욕, 다 받아들여서 맞아들여서 할 일을 참고 다 해낸단 말이에요.
그리고 기다리면 봄이 오거든요.
기다리면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립니다.
이것이 좋은 것이 다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허무한 것으로 무상한 것으로만 볼 것인가?
허탈한 것으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또 힘겹고 어려운 상황이 지나가기 때문에 희망으로 볼 것인가?
이게 바로 여러분들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쪽입니까?
감인대 할 줄 알고 다잡 가지가지 다 다른 것들이 모인 이 세상을 살면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허용하고 거기에 맞춰서 대기설법(對機說法) 눈높이에 맞춰서 우리가 지혜롭게 나툴 줄 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고해로 보지 않고 다르게 봅니다.
어떻게 보는가?
이제 이 세상의 이름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은 처처가 도량이란 말이에요.
처처가 수행하고 처처가 작복하는 그런 도량이다.
수행 도량이다. 작복 도량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학교다. 트레이닝하는 그런 자리단 말입니다.
이렇게 도량으로 삼고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수행하고 작복하다 보면 이 세상은 아름다워지기 시작합니다.
어려움이 보람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더 수행하고 지혜로워지고 복을 지어서 복덕이 더 증장될수록 이 세상의 이름이 또 다른 이름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안락국(安樂國)입니다. ‘편안할 안’ ‘즐거울 락’
이게 처처 안락국이에요.
다른 말로는 극락입니다.
사바세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오는 것을 맞아들이고 가는 것을 보낼 줄도 알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맞아들여서 잘하고 즐겁게 하고 그 일과 관련된 분들에게 이로움을 준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결국은 이 세상은 안락국이 되고 자기 자리가 극락으로 변화가 일어난단 말입니다. 극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 세상은 안락국입니까?
여러분에게 이 세상은 고해입니까?
안락국, 고해라고 말하기 싫으면 그냥 도량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죠?
그러면 여러분 집은 안락국입니까? 고해입니까?
여러분 직장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오늘 하루 살아갈 때 어떻게 느꼈습니까?
우리는 도량이라고 보고 처처가 대비주, 처처가 도량이라고 볼 때는 우리는 늘 향상 일로에 있는 거예요.
어려움이 자기를 단련시키는 소재로 교재로 교과서로 다가온 것으로 볼 줄 압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면 늘 보람이 있고 희망이 있고 내일은 더 발전하고 이 일을 잘 해결하고 나면 더 지혜가 수승해지고 또 복이 더해지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에 늘 즐겁습니다.
편안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서도 즐거울 줄 알고, 불편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편안할 줄 아는 그 묘한 도리가 있죠.
대비주 할 때 얼마나 졸리고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죠.
우리 노영숙 보살님 계속 절하시고 7일 동안 이렇게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시거든요. 묵연히 하시잖아요.
이것이야말로 정말 거룩한 모습입니다.
이미 향상 일로에 들어서고 반야 용선을 탄 모습입니다.
또 합류해 주신 여러분들도 또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졸음을 견디고 참고 이것도 감인대입니다.
또 피로를 견디고 참으면서 이렇게 대비주 7일기도 정성을 다함으로써 우리 인생의 봄날이 옵니다.
앞으로 우리 가문에 꽃이 핍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그 마음속에 씨앗으로 내재돼 있던 그 원들이 주렁주렁 성취의 열매로 열립니다.
그런 희망을 생각하면 졸음과 피로가 보람이죠. 그죠.
그런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내일 관욕 법회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_()()()_
첫댓글 기도에 참석하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말씀을 전해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려 행복합니다.
수일보살님 고맙습니다._()_
보살님 고맙습니다.
보살님 감사합니다.
보살님 건강하세요._()
보살님 언제나 편안하세요._()_
보살님 언제나 행복하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