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주조(酒糟)
황벽(黃蘗)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그대들 모든 사람들은 술지게미(酒糟)나 먹는 무리로다. 그렇게 행각해서야 어찌 오늘이 있엇겟는가?대당국(大唐國)에 선사(禪師)가 없는 줄 아는가?”
그때 어떤 스님이 나서서 말하였다.
“지금 제방(諸方)에서 대중을 거느리고 지도하는 이는 어찌합니까?”
이에 선사가 말하였다.
“선법(禪法)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참선하는 스님네가 없다고 했노라.”
설두현(雪竇顯)이 송했다.
늠름(凜凜)한 위풍을 뽐내지 앉아 용과 뱀을 가리네.
대중(大中)64)천자가 잘못 건드려
세 차례나 발톱과 이빨에 상했었네.
장상천(蔣山泉)이 송했다.
선사는 없어도 대당국(大唐國)에 꽉 찼거늘65)
술지게미 먹는 무린 알지 못하네.
대밭의 절 곁을 지나는데 봄은 벌써 깊었는가?
이끼 위에 매화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네.
천동각(天童覺)이 송했다.
갈림길66).염색한 실67)이 몹시도 시끄럽고
잎새 엮음.꽃타래68)가 조종의 무리에게 낭패를 주네.
지남석[可南]의 조화 망치[造化柄]묘하게 움켜쥐니
물과 구름 일구는 솜씨 도공의 솜씨에 달렸네.
번거로움(갈림길)을 끊어버리고
잔 솜털(잎새 엮음)을 밀어 버리니.
저울의 눈금이며 미인의 손거울이여,
옥척(玉尺)69)이며 금도(金刀)70)일세.
황벽 노장이 가을 털끝을 살피는 총명이 있어
봄바람 미치지 못하는 높은 곳에71)좌정했네.
불안원(佛眼遠)이 송했다.
대당국 안에 선사가 없다 하니
깨달았다고는 허락하지 않으나 알았다고는 허락한다.
속적삼[肉衫]72)을 벗어 버리면
방망이와 할이 바보 속이는 짓임을 비로소 알리라.
운문고(雲門杲)가송했다.
몸에 옷을 입으면 추위를 막지만
입으로 밥을 말해선 배부르지 않으리니
대당국의 노파선 한 구절을
오늘날 그대 위해 몽땅 설명하였네.
죽암규(竹庵珪)가 송했다.
대당국 선사가 없다 하니
절하고 방에 가서 더 의심치 말라.
하양(河陽)의 신부新婦74)가
임제(臨際) 어린 마부만 못함이 우습기도 하여라.
육왕심(育王諶)이 송했다.
대당국 안에 있었던 적 있던가?
황벽[斷際]스님 당시부터 잘못 제창되었네.
술지게미 먹는다 하고,어디로 가는가?
가사의 한 자락에 벌써 진흙이 묻었네.
한암승(寒嵓升)이 송했다
.
어릴 적부터 백 자 장대를 다룰 줄 알아서
온몸이 빙빙 돌아 뱀장어같이 매끄럽다.
허공에서 훌쩍 뛰어 작도 위에 떨어지니
곁에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 하네.
열재(悅齋)거사가 송했다
.
현사(玄沙)는 영(嶺)을 나서지 않았고75)
보수(保壽)는 강을 건너지 않았네76)
80세의 조주(趙州)노인은77)
능행파(凌行婆)를 만났다.
오조계(五組戒)가 그 스님의 말에 대신하여 말하였다.
“화상께서 도리(道理)를 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어야 좋았을 것이다.”
석문총(石門聰)이 염하였다.
“황벽(黃蘗)의 설법이 기특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78)어떤 스님[胞衲]이 슬쩍 건드리자 한쪽 눈을 잃어버렸도다.”
승천종(承天宗)이 이 이야기를 들고,이어 오조계가 대신한 말을 들어 말하였다.
“오조계의 눈빛이 온 천하를 밝히나 황벽을 보고자 한다면 아직 멀었다.
만일 정법안장(政法眼藏)을 바로잡는 일을 말하려면 황벽 종사여야 하느니라.“
취암진(翠嵓眞)이 염 하였다.
“제방(諸方)에서 헤아리기를 ‘황벽이 그 스님을 윽박지른 것이다’하고 또 어떤 이는 ‘황벽은 그 스님이 오자마자 분별을 잃었다’하니,무슨 까닭인가?
내가 망상을 일으켜 보리라.안개 속의 표범은 털을 고르느라 밥도 먹지 않고 ,뜰의 짐승은 용기를 길렀기에 사람들을 놀래 줄 기회를 벼르는구나.“79)
위산철(潙山喆)이 염하였다.
“여러분,알겠는가?아까부터 너무 도도함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그는 일찍부터 최상의
관문을 밟고 섰었느니라.”
상방익(上方益)이 상당(上堂)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알량한 황백이 그 스님에게 한 번 건지려지고 애써 설명을 하려 했으나, 취했을 때 한 말이 깨었을 때 한 말과 다르지 않은 줄 전혀 모르는도다. 그 때에 보기 좋게 서른 방망이를 때려서 문 밖으로 쫓아냈더라면 후손들의 대가 끊이지는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말에서 내려 취한 사람의 걸음을 피하느라 여러분은 그 스님을 알고 싶은가? 바야흐로 술지게미를 씹는 사람이었니라.”
그리고 나서 주장자를 한 번 세웠다.“
천녕조(天寧照)가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황백은 잘못을 잘못에 보태서 뱀에 다리를 붙였고, 나 숭녕(崇寧)은 평정하고자 하나 평정치 못해
하마터면 큰 욕을 당할 뻔하였느니라.”
원오근(圓悟勤)이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황백 노장이 분별에 능숙하고 선택을 잘하여 사나운 범을 사로잡고 용과 뱀을 평정한 솜씨는
없지 않으나 당시의 일만을 밝혔고,그때와 지금이 다른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만일 산승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 그대들 모두가 영특한 호걸들이다.이렇게 제창하는 말에 기특한 일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송(宋)나라에 선사가 있는 줄 알겠는가? 말해보라.
선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지금 피할 길이 없어 여러분 앞 얼굴을 러내리라.“
운문고(雲門杲)가 보설(普說)할 때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였다.
“이 화두가 화근이 되었다.깨닫지 못한 이는 잘못 안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철저하게
깨달았을지라도 큰 법을 밝히지 못하리라. 황벽이 보지 못 한 곳을 눈치채겠으니,
황벽이 ‘선(禪)이 없단 말이 아니라,선사가 없단 말이니라’했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중에서 헤아리기를, 사람마다 누가 대장부가 아니기에 스승이 꼭 필요하단 말인가?
술지게미를 씹는다 함은 남의 말을 되씹는 것이니,말이란 옛사람 지게미이기
때문이니라‘고 하는데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업(業)을 부르지 않으려면
여래의 바른 법을 들어 비방하지 말라 하노라.보지 못했는가?
옛날에 위산이 이 이야기를 들어 앙산에게 묻기를 ,‘황벽의 뜻이 무엇인가?’하니
앙산이 대답하기를 ‘거위가 젖을 고르는 80)성품은 오리와 다른 것입니다’하였다
이에 위산이 다시 ‘이것이야말로 가리기 어렵도다’ 하였으니, 위산과 앙산의 이런 문답을
어떻게 헤아려야 되겠는가?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그런 사람이라야 하느니라.“
백운병(白雲昺)이 염하였다.
“황벽 화상이 허공을 쳐부술 수 있는 망치를 흔들어 흰구름을 쫓아 버리는 솜씨가 있으니 ,바람이 스치는 곳에 풀이 눕고 귀신이 슬피 통곡을 하며,네 성현과 여섯 범부를 꼼짝도 못하게 했으나 ,마지막에 그 스님에게 한 번 건드림을 받고는 당장에 앞뒤가 캄캄해졌다.”
얼른 불자를 들어 올리고 말하였다.
“듣지 못했는가? 이 힘을 몽땅 얻어야 한다 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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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당나라 선종(宣宗)때 연호이다.
65)선사는 없어도 선의 도리는 꽉 찼는데 ,술지게미 같은 바보 친구들은 모른다는 말이다.
66)양주(楊朱)가 양(羊)을 잃고 찾으러 나서니 길이 자꾸 갈리어 어리둥절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조사의 법맥이 많으나 모두가 시끄럽다 하여 긍정치 않는다는 뜻이다.
67)묵적(墨翟)이 흰 실에 물들이는 것을 보고 슬퍼하면서 말하기를 ,“사람의 성품이 본래 착햇으나 나쁜 환경에 물들어 나쁘게 되었다”고 탄식한 고사이다.
68)잎새 엮음의 엽(葉)자는 파자로 28세(世)이고,꽃타래는 한 꽃에 다섯 잎이라 한것이니,서천의 28조와 당토의6조까지 여러 조사 무리들에게까지 낭패를 주는 일이라 하여 선사가 없다는 말을 평한 것이다.
69)용문(龍門)에서 얻은 자로서 길이가 한 자 두 치며 천지를 잴 때 쓴다 한다.
70)역시 중국 옛 신화에 나오는 조화 깊은 검이다.이것들을 황벽 노장이 손에 쥐고 있다는 뜻이다.
71)최상의 관문에 버티고 선 황벽을 이르는 말이다.
72)속에 입는 옷이니,아끼는 존재로서 ,그를 활짝 벗는다 함은 집착을 여의라는 뜻이다.
73)고려대장경에는 주로 되어 있으나 주(注)가 옳을 듯하다.
74)하양 땅의 신부와 임제원의 마부를 비교하건대 신부가 마부만 못하다 하니,신부는 후천적 수도인 신훈(新熏)이요, 마부는 마소를 먹이는 천한 직업이니,선천적인 바탕 ,즉 본분이다.황벽이 화두에서 선사가 없다 한 말은 신훈이 없단 말로 간주하고 ,신훈이 본분만 못하다 하여 본분 편에서 거양한 속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