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말씀이 잘 못 인용되고 적용되는 사례는 성경에 대한 모독이요,
성경의 진실을 왜곡하는 사탄의 앞잡이요, 도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설교자는
성경의 증거자가 아니면 성경의 말씀으로 혹세무민하는 사이비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성령의 사역으로 그 충만한 은혜를 입은 사명자의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잘 못 인용하는 것 가운데
"한 알의 밀",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오병이어의 기적", "달란트 비유", "열 처녀 비유", 중보기도 등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한 알의 밀로 예수님의 죽음을 증거하지 않고
헌신과 희생의 종교 도덕적 교훈으로 삼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새포도주와 새부대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비전으로 적용하는 것은 복음에 반하는 일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예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강조하지 않고
헌신과 희생으로 풍요와 번영을 이루는 기적을 비전삼아 소원하는 것은 기복 신앙입니다.
달란트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인 충성을 말하지 않고
달란트 잔치나 재능, 직분 등등에 적용하는 것은 인본주의 신앙의 발로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기름을 성령으로 등을 증거의 말씀으로 적용하는 것은
종말론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교훈을 왜곡하고 알레고리로 성경을 해석하는 이단적인 발상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를 도용하여 중보 기도로 성령의 전이를 무속 신앙으로 도모하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로 더 아름다운 직분을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를 능멸하는 사탄의 궤계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진실을 왜곡하여
아전인수격으로 성경 본질을 훼손하는 사례는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는 말씀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소리 지르는 돌"이 있다면
이미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감당하는 제자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르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 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향하여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명을 받아 돌들이 지를 소리는
바로 왕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영광의 왕을 높이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는 함성입니다.
그런데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는
원망과 불평의 볼멘 소리를 돌들이 지르는 소리라고 적용합니다.
더 나아가 민중의 소리로 정의를 구현하는 외침을
돌들이 지르는 소리라고 성경의 복음을 왜곡합니다.
뿐만 아니라 정의를 누린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보수 정치를 타도하는 진보의 소리를
돌들이 지르는 소리라고 억측스럽게 성경을 인용합니다.
성경의 진실을 왜곡하고 성경의 본질을 훼손하는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완전한 법치입니다.
지금도 성경의 진실과 본질을 왜곡하고 혹세무민하는 사이비는
"그들의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들의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들의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을 치면서도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완전한 파괴를 예언하며 묘사한 말씀인데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는 저주의 말씀을
소위 성전 건축의 구호로 삼는 목사도 있으니 실로 머리가 아픕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은 돌들이 지를 소리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부르는 찬양의 함성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