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깁니다.)
남편이 아내를 생각하고 사랑해서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꽃다발을 사다 주는 것은 은혜입니다. 하지만 가끔 한 번씩 꽃다발을 사 줘야 자기 삶이 편하고, 입막음을 할 수 있고, 맛있는 것도 얻어먹으니까 사다 주는 것은 율법입니다. 은혜로 꽃다발을 사다 준 남편은 그 행동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 사다 준 남편은 두고두고 얘기합니다.
"저번에 내가 꽃다발도 사다 줬잖아."
새 언약의 성도들에게도 신앙의 훈련이 필요합니다만 그것을 은혜로 하는 사람들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율법적인 생각 때문에 하는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자랑합니다. 그러면서 '매일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선포(고백)도 하는데 왜 안 되죠?'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이 나올 만도 한 것이, 그러한 사고를 바꾸지 않았기에, 즉 생각을 새롭게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그런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생각이 새롭게 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앙 훈련을 합니다. "나는 예수님께서 이미 은혜로 다 이루신 것을 가진 사람이야. 그 내용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성경을 읽자. 그리고 내 마음으로 믿는 것을 선포하자. 감사와 찬양을 하기 위해 기도를 하자."
이렇게 우리의 사고를 분석해 보면 우리가 정말 성경이 말하는 믿음 아래 있는지 아니면 율법적인 가짜 믿음 아래 있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여기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고를 분석해 보면...”
제가 ‘생각을 새롭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사역하다 보니 성도들이 어떻게 사고하는지 항상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별로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좋은 말씀을 듣고 ‘아, 그렇구나.’하면서 깨달았다고는 하는데 삶에 적용을 하지 않습니다. 매번 깨달았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아무리 깨달아도 삶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다음은 삶이 직접적으로 변화되기 위해 우리 쪽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1. 자신의 사고를 자신이 직접 분석해야 한다.
2. 그 과정 중에 깨달은 것을 삶에 적용해야 한다.
제가 사역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지금 율법과 은혜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 자신의 주된 사고방식이 율법에 근거해 있는지 은혜에 근거해 있는지 깊이 상고하고 분석해 보십시오.
제가 사역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것 하나는 말씀을 깨닫기만 하고 삶에는 적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하면서 깨달았다고 하는데 ‘깨달았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고 물으면 답을 못합니다. 이런 경우, 깨달은 것이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말씀을 행하는 자만이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약 1:25).
(딤후 3: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좋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으면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보편적인 모습은 교회 가서 은혜받고 거기서 끝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삶은 그냥 거기서 멈춰있고 지식만 늘어 귀만 고급이 됩니다. 게다가 더 불행한 것은 내가 아는 것과 내 삶의 현실에 괴리가 점점 더 커져간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바로 종교 생활입니다.
나의 사고가 율법적인지 은혜 기반인지 분석이 끝났다면 “아, 내가 이랬구나~”하면서 깨닫고 끝나면 안 됩니다. 율법적이라면 은혜로 바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본인만이 자기 삶을 자세히 알고 있으니까요.
여기서 필기하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뭔가를 기록한다는 행동 자체가 자기의 삶에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에 기록과 필기를 통해 아주 많은 발전이 일어납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택해서 꼭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 성령님을 의지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런데 제가 이런 실천 방법을 권하면 어떤 분들은 ‘저는 원래 그런 것은 안 해요.’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말씀 드리는 것이 참 안타깝지만 그런 분들 중에 형통한 삶을 사는 경우를 제가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나는 변화 필요 없고 지금도 살만하다’라면은 안 해도 되겠지만 변화는 원하면서 아무런 것도 시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많고
그 점이 참 안타깝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정신병’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변화를 원하면서도 그동안 하던 대로 계속하는 것’
물론 여러분들은 여기까지 오셔서 이렇게 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니 이미 실천을 하고 계신 분들이라서, 제가 마치 일찍 온 학생들 앞에 놓고 아직 안 온 지각생들에 대해 화내고 있는 선생님 꼴인데, 제가 사역에 뛰어들어 보니 실제 그렇게 살아가는 분들이 대다수라 정말 마음이 안타까워서 한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거든요.
아무튼, 일찍 온 모범생들에게 지각생 탓은 그만하고, 만약 생각을 잘 안 하는 타입이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정해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보조 자료가 필요 없으나 생각이 없는 경우엔 보조 자료가 많이 필요합니다. 책, 제자 훈련 교재, 동영상, 이런 것을 자료 삼아서 생각을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이달의 스터디를 적극 권합니다.)
이런 질문도 나올 것입니다. "생각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분석이란 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왜’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뭔가 결론이 나오면 꼭 적용 방법을 발견해서 실천해 보십시오. 이 과정에서 타인을 의지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하되 성령님께 도우심을 구하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먼저 "나는 '왜' 생각이 없을까?"라고 적어보고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몇 가지 찾아서 적어 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생각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적용 방법을 생각해 보고 적어 보는 것이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항상 먼저 "왜"를 따져 보고 그다음에 해결 방법 "어떻게"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복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의를 얻어내려 하는 행동이 율법적 행위이지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은 율법적 행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말씀을 행하는 것이며 그렇게 할 때,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