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도식을 통한 은유적 개념화에 있어서 존재론적 은유의 사물 형태는 ‘끈(또는 줄, 선)’이라고 할 수 있다. 끈이나 줄은 사물로 구체화되는 개념적 은유에서 비중 있는 근원영역 개념이다.
(16)
ㄱ. 보급품을 실은 수송 차량도 줄을 잇고 있었다.
ㄴ. 줄 좀 잘 서.
ㄷ. 전기주전자에 전원을 연결시켰다.
ㄹ. 전원을 끊어 버린 모양이었다.
ㅁ. 교환 아가씨는 비서실로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ㅂ. 그녀는 갑자기 전화를 끊어 버렸다.
ㅅ. 남쪽과 북쪽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o. 67번가에 이어져 있는 돌담길을 따라
줄의 여러 가지 속성 가운데 다른 사물과 구별되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줄의 형태이다. 형태는 우리가 대상을 지각할 때 가장 먼저 지각하는 국면으로, 대상을 범주화하는 일차적 근거가 된다. 줄은 길고 가느다란 형태를 지니는데, (16ㄱ-ㄴ)에서와 같이 여러 대상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에서 그대로 줄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원을 연결하다/끊다’, ‘전화를 연결하다/끊다’에서 전깃줄이나 전화선과 같이 물리적 대상이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 선에 의한 연결/단절 도식을 직접적으로 투사하여 이해한다.
[연결]은 줄과 같은 선상 도식을 함의한다. 우리의 인지 속에서 서로 다른 두 지점을 선으로 그어 대상들을 연결하여 접촉시킬 수 있다. 존슨은 생물학적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는 탯줄을 비롯하여 물리적 대상들의 짝짓기와 같은 연결의 경험을 통해 연결도식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물리적 대상의 연결을 통해 연결된 대상들이 접촉하거나 근접하게 되고 연결된 대상들은 그 연결에 의해 관련된다는 것을 경험하며, 세상에서 시간적 연결, 시간적 관련성, 인과적 연결, 유전적 연결, 기능적 연결 등을 학습한다. 이러한 경험은 연결도식을 투사함으로써 다른 개념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며, 이 과정에서 언어형식의 은유적 확장이 일어난다.
-<언어와 인지>(임혜원 지음)
화서와 관련된 다양한 축(줄기)에 대한 여러 가지 용어도 있다. 화경은 전체 화서의 자루이다. 복합화탁(또는 총화탁)은 화경의 정단부에 있는 조직 덩어리로, 두 개 이상의 꽃을 달고 있다. 뚜렷하게 발달된 잎이 없는 화경으로, 영양엽의 기부 로제트 사이에서 발달한 것은 근생화경이라고 하며, 이러한 식물의 줄기 생육형은 무경성이라고 한다. 화서축은 화서 내에 있는 주된 중심축이다. 그러나 벼과나 사초과 식물들의 소수화서의 중심축은 소축이라고 한다. 마지막은, 산경은 복산형 화서의 이차축을 이르는 용어이다.
-<식물계통학>(9장 식물형태학)
[단숨에 쓰는 나의 한마디]
다음 문장을 보며 생각해 보자.
“연결도식을 통한 은유적 개념화에 있어서 존재론적 은유의 사물 형태는 ‘끈(또는 줄,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위 문장을 보면서 ‘끈 떨어진 갓 신세’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회적 존재 위치가 협소해지거나 고립되면서 겪는 수모 혹은 고독을 드러내는 말 같은데, 이때 필요한 것이 강한 멘탈 아닐까? 사회와 연결된 끈은 언제든지 부침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끈은 자신의 정신 상태를 자신의 몸과 잘 연결시켜 어떤 상황이 와도 강한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강조되는 글들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 영원한 소재가 영웅 이야기다. 그 모든 영웅은 연결된 것들과 부딪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신과의 부딪침 속에서 때로는 휘어지고 때로는 꺾여도 강한 멘탈로 바로바로 제 길을 간다. 역경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다가오는 삶에 뚜렷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연결도식을 만들고 해소점을 언술하는 것, 그 최고의 형식이 모두가 아는 기승전결이고, 이는 철저히 여행 틀을 가지고 있다. 그 여행을 관통하는 최고의 인물은 영웅이고, 그 영웅은 높은 갓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 ‘열심히’에 개입되는 것이 각자의 가치관, 즉 삶이다. 그래서 글은 삶이다. 그 삶을 쓰는 기술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이미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자꾸 쓰면 글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2019년을 사는 우리들은 그렇다.
다음 문장을 보자.
“우리는 물리적 대상의 연결을 통해 연결된 대상들이 접촉하거나 근접하게 되고 연결된 대상들은 그 연결에 의해 관련된다는 것을 경험하며, 세상에서 시간적 연결, 시간적 관련성, 인과적 연결, 유전적 연결, 기능적 연결 등을 학습한다. 이러한 경험은 연결도식을 투사함으로써 다른 개념을 이해하는 바탕이 되며, 이 과정에서 언어형식의 은유적 확장이 일어난다.”
‘언어형식의 은유적 확장’이 풍부해지려면 역시 꾸준한 글쓰기밖에 없다. 이를 알면서도 왜 많은 사람들은 이론서만 보려고 하고 정작 자신의 글은 안 쓰는 것일까? 자신을 성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 고통을 표현하기는 더더욱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주문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인데, 여기에는 몸의 변화가 따라야 한다. 안정된 세팅이 다시 세팅된다는 것, 눈물겹도록 힘든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말 안 하고 남들에게 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는 본능이다. 매사가 그렇다. 이를 극복하는 사람들은 강한 멘탈의 소유자이고, 이들은 스스로 연결을 끊으며 내면에 집중한다. 그것만이 세상과 연결된 자신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이기에.
식물과 나는 언제 제대로 연결될 것인가? 바오밥나무에 들어가 살아보면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