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상(變化無常)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리라고 하는 과학의 법칙도 바뀔 수 있다. 사람도 변하지 않으려고 아무리 뜯어고치고 예쁘게 하여도 세월 앞에는 무력한 존재이다. 화학적 변화도 가역반응이 있듯이 세상 삶도 좋은 방향과 나쁜 방향의 길이 있다. 그러나 세상은 공동선을 향해 연대하여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삶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무엇일까? 선한 사람을 만나 행동을 같이하면 자연히 선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좋은 음악이나 미술을 접하면 마음이 안정되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또 문학이나 종교를 통해 심성을 가꿀 수 있다. 사람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감이 지상에서의 부활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7년 동안에 완성한 작품이 ‘최후의 만찬’이다. 다빈치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흡사한 모델을 찾아서 그림을 그렸다. 예수와 제자들을 그리고서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 자리는 스승 예수를 배반하며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그 모델을 찾는데 무척 어려웠으며 오랜 탐문 끝에 그를 찾아냈다. 그는 감옥에 갇힌 사형수로 그 몰골이 유다와 흡사하여 그를 모델로 하여 빈자리를 채워 그림을 완성하였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그 죄수가 하는 말이 당신이 그린 예수의 모델이 지금 바로 자기라고 했다. 몇 년 동안에 그렇게 선하고 착한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악독하게 사형수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일화(逸話)이다. 사람이 일생에 여러 모습으로 바뀐다고 한다. 주어진 환경이나 함께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친구를 잘 사귀라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다. 착한 친구와 함께 어울리면 착한 행동을 배우고 학습하기 때문에 착하게 된다. 옛날 사람들은 덕행을 많이 쌓은 사람의 행실을 배우기 위해 찾아다녔다고 하지 않는가.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 것처럼 사람도 침잠하여 안주하면 살아 있어도 산 것이 아니란다.
어떻게든 변화해야 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당신의 영성(본성)을 불어넣었다. 따라서 삶의 변화는 영성의 완성에 있다. 어떤 성직자는 신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그 완성은 사람이 사랑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연륜이 쌓여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하는가 보다. 탐스럽게 익은 과일이 얼마나 보기 좋고 맛도 좋지 않은가.
무상한 세월을 탓하지 말고 과일이 익어가듯 숙성하는 삶이 좋은 삶이며 영적 변화이다. 그것은 목적 달성을 위한 무절제한 행위가 아니라 삶의 과정에서 어떻게 살며 어떻게 변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지상 순례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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