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파트 현관 안쪽 우편함에는 '등기우편 도착'이란 쪽지가 붙어 있었다.
당일도 나는 집에 있었는데도 아파트 현관에서 울리는 인터폰 소리를 듣지 못
했다. 인터폰이 오래돼서 그런지 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는다. 인터폰
소리를 듣고 집에서 별표를 눌러야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기 때문에 집배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각층으로 올라와 배달할 수 있게 돼 있다.
친구들중에는 청력이 약해져서 보청기를 끼는 친구들도 있긴 하다. 그래도 나는
건강검진때 청력검사에도 정상일 정도로 아직까지는 잘 들리는 편이다. 그런데
시력은 전에 만큼 되지 않고 안경이 없으면 작은 글자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다. 그래도 습관이 되지 않아 책을 볼 때나 모니터를 볼 때르 제외하고는
안경을 끼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경을 끼면 맨 몸보다는 자유스럽지 못하고 거추장
스러우니까 말이다.
쪽지에는 '1월 7일 12시~2시 재배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에 등기
우편물을 배달했던 집배원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남아 있어서 그 번호를 찾아서 '동부올림픽인
OO동 OO호에 사는 아무개입니다.등기온 게 있으면 연락바랍니다'라고 문자를 보냈으나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약속한 날짜인 그 시간에는 우리집 아파트 현관문을 조금 열어놓은
채 인터폰 소리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에도 무사히(?) 지나가고 말았다.
혹시나 싶어 저녁 때 아파트 1층 현관입구 우편함으로 내려가 보았으나 아무런 쪽지도 붙어있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 편지를 쓰는 사람도 훨씬 줄어 지금은 시내 곳곳에 보이던 빨간 우체통도
보기 어렵게 됐다. 우체국을 통해 집으로 배달되는 것은 세금고지서나 쓸데 없는 홍보물 아니면
우체국 택배가 고작이다. 쪽지에 적힌 발신자를 보니 내가 다녔던 학교로 돼 있었다. 학교에서
뭣한다고 내게 등기를 보냈지? 학교를 떠난지 십년도 넘었는데 강연을 좀 해 달라는 부탁인지?
시간이 흐를 수록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본래 등기우편이라 하는 것은 우편물 특수취급의 하나로,
우체국에서 우편물의 안전한 송달을 보증하기 위하여 우편물의 인수.배달과정을 기록하는 제도가
아닌가.
쪽지를 자세히 보니 배송원 개인 폰 번호와 해운대 우체국 번호가 적혀 있었다. 구역별 배송담당자가
전에 왔던 신 아무개인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이었다. 엉뚱한 곳에다 나는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바뀐 집배원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집에서 등기 재배달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배달을 하지 않았
느냐?'고 따졌더니 자기가 인터폰을 눌렀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어 반송되었다고 하면서 자기 수중에
없으니 해운대 우체국으로 전화해서 재배달을 요청하라고 알려주었다. 전화를 끊고 쪽지에 적힌 해운대
우체국으로 전화를 다시 걸어 재배달을 요청하였더니 내 폰 전화까지 물었다.
다음날인 1월9일에는 강의가 있어 일찍 집을 나왔다. 마침 집사람이 오프여서 집에 남아 있어 '오늘 등기가
재배달 되니 신경 써서 받아두세요'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한참 강의중에 폰 전화벨 소리가
울려 받아보니 집배원이 아파트 현관에서 인터폰을 눌러도 사람이 없다면서 '등기를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인터폰 소리가 작아 집에 사람이 있지만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경비실에
맡기든지 아니면 아파트 우편함 속에 넣어 두세요"라고 부탁을 하였다. 강의를 끝내고 오후 늦게 집으로 들어
오면서 우편함을 살펴봐도 등기는 보이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서 집사람에게 등기 왔더냐고 물었더니 "아니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저녁식사를 하는 도중에 경비실에서 인터폰으로 "등기 찾아가세요"라고 연락이 왔다.
식사후 등기를 찾아와 열어보니 졸업식 참석여부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명예교수 예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