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직장(딸기탐탐) 24-12, 첫 번째 일당
‘대표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지금 성훈 씨 출근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못 끝낸 초록색 바구니 마저 씻겠습니다. 사진은 화요일입니다.’
세 번째 출근.
지난번 일하며 찍은 것 가운데 전성훈 씨가 고른 사진 몇 장을 대표님에게 보낼 메시지에 더한다.
이제 딸기탐탐 출근길이 눈에 익는다.
전성훈 씨도 낯설어하지 않는 것 같다.
차에서 내려 작업장까지 바로 앞이지만 처음에는 옆에 꼭 붙어 걸으려고 했다.
이제는 자신 있게 차 문을 닫고 앞장선다.
너무 세게 닫아 차가 괜찮은지 걱정될 정도다.
힘찬 출근길에 함께하니 동행하는 사람도 덩달아 힘이 솟는다.
바구니가 쌓여 있는 곳에서 수돗가 사이는 열 걸음쯤 된다.
작업 순서는 이렇다.
먼저 바구니 쪽으로 간다.
스티로폼 패드가 깔려 있으면 빼서 파란색 자루에 버린다.
운 좋게 패드가 없으면 그대로 통과다.
이때 나는 바구니를 하나씩 들어 새로 쌓고, 전성훈 씨는 패드를 빼서 버리기로 했다.
대개 패드가 있지만 없는 것도 있으니 마냥 똑같은 박자로 움직일 수 없다.
서로 손을 보고 호흡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어서 바구니를 수돗가로 옮긴다.
겹쳐 들어도 시야를 가리지 않을 만큼 적당히 쌓아 옮긴다.
내가 놓고 가지러 가면 전성훈 씨가 들고 놓으러 오고 있다.
다시 내가 들고 놓으러 가면 전성훈 씨가 가벼운 손으로 가지러 온다.
옮긴 후에 씻는다.
지난번 분담한 대로 내가 흙덩어리를 털고 전체적으로 1차 세척하면, 전성훈 씨가 받아서 꼼꼼히 닦아 마무리한다.
다 씻은 바구니를 물이 빠지도록 엎어서 쌓는 건 전성훈 씨 몫이다.
각 줄마다 첫 바구니가 쌓일 지점 잡는 것만 돕는다.
“성훈 씨!”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옆을 본다.
김혜진 대표님이다.
오랜만에 만났다.
전성훈 씨가 고개를 숙이며 손바닥을 편 팔을 쭉 뻗어 인사한다.
‘안녕하세요?’와 ‘안녕?’이 합쳐진 인사, 자주 보던 인사다.
일하던 과정을 설명한다.
농장 일이니 대표님이 모르시겠냐마는 ‘전성훈 씨가 했고’, ‘전성훈 씨가 할 수 있다’를 말하고 싶었다.
흐뭇한 얼굴로 전성훈 씨를 바라보는 대표님 표정을 보며 마음이 놓인다.
“별 건 아니고 이거….”
대표님이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낸다.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다.
누군가 칭찬하거나 과분한 선물을 받을 때 그러듯 생각할 겨를 없이 손사래가 먼저 나온다.
출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고, 아직 한 일도 없는데 괜찮다고 사양하다 이어지는 대표님 말에 입을 꾹 닫는다.
“더운데 가시는 길에 음료수라도 사 드세요. 받으세요, 괜찮아요.
아! 성훈 씨 주는 거니까 성훈 씨한테 드려야겠네. 성훈 씨, 음료수 사 드세요. 고생했어요.”
‘성훈 씨’가 나오는 순간부터 내 몫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고, 그래서 더는 내가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다행히 ‘성훈 씨’는 거절하지 않고 감사히 받았다.
만 원짜리 지폐 두 장.
전성훈 씨가 딸기탐탐에서 받은 첫 번째 일당이다.
때로 쉽게 쓰지 못하는 돈이 있다.
오늘 번 돈도 전성훈 씨에게 그런 의미로 기억될까?
잊고 있던 오래전 어느 기록이 새삼 떠오른다.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과 매끄럽지 않은 생각이 귀엽게 느껴진다.
‘그때도 나는 균형을 찾고 있었구나’ 싶어 입꼬리가 올라간다.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오늘은 전성훈 씨가 딸기탐탐 첫 번째 일당을 받은 날.
박진석 씨 지원을 돕고 301호를 나서는데 맞은편 304호에서 홍채영 선생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선생님, 잠시만 와 보세요. 박상원 씨가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네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떤 이야기일까 긴장하며 박상원 씨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잠깐 들어와서 여기 앉아 봐요.”
방 안에 계셨던 박상원 씨 앞에 앉았더니 봉투 하나를 건네셨습니다.
웬 봉투인지 여쭙기도 전에 이어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우리 입주자자치회에서 준비한 거예요. 새로 오신 선생님께 환영한다고 드리는 겁니다.”
노란 봉투를 건네받았습니다.
여전히 끝나지 않은 환영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그보다 울컥하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월평빌라에 와 참 많은 환영 인사와 매 순간 진심이 담긴 감사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순수한 감사의 마음으로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새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가슴 저릿한 마음이 든 적이 있었을까요.
입주자 한 분 한 분의 환영이 담겼다 생각하니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앞서 자치회의 환영을 받았던 선생님들 모두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랬겠지요.
봉투 속에는 농촌사랑상품권 두 장이 담겨 있었습니다.
입주자 대표이신 박상원 씨께 말씀드렸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걸 어떻게 쓸 수 있겠습니까. 잘 가지고 있겠습니다.”
“쓰라고 주는 건데 써야지요.”
박상원 씨께서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입주자를 지원하는 것이 직원의 일이고,
입주자 각자의 삶에서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역할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 그 내용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받은 환영의 선물과 그 속에 담긴 마음이 더욱 특별히 와닿는 것이 염려스러웠습니다.
자연히 드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그랬습니다.
입주자와의 관계를 해치고 실수를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를 알아주셨을 거라 바라고 싶습니다.
천천히 스스로의 생각과 마음을 돌아보고, 적절한 행동의 균형을 찾고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 찾고자 했던 ‘균형’을 구한 후에도 유연한 마음은 그대로일 수 있을까요.
여전히 사람으로 마음 저리고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당분간은 상품권을 고이 보관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상원, 기타 18-,입주자 자치회의 선물을 받았습니다(2018년 4월 27일 금요일, 정진호)」 발췌
2024년 8월 23일 금요일, 정진호
딸기탐탐에서 받은 첫 일당, 축하드립니다. 계속 일할 수 있다는 희망일까요? 성훈 씨도 참 기쁘겠습니다. 신아름
일당 이만 원, 축하드립니다. 성훈 씨 일을 알아봐 주시고 일당 챙겨 주신 대표님, 고맙습니다. 박상원 씨 이름을 오랜만에 보네요. 그런 일이 있었군요. 신입 직원으로서 가슴 벅찼겠습니다. 그립네요.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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