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는 88올림픽때 선수촌으로 사용했던 아파트라 36년도 더 됐다.
유럽에선 300년도 더 된 아파트가 있는데 거기에 비하면 아주 새 아파트라 할 수
있지만 '빨리빨리'가 습관화 된 우리나라에선 고물 취급받아 재건축 소리가 나올
법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일부에선 위치가 지하철이 가깝고
평지인데다가 하부에 큰 암반층이 있어 재건축을 하면 100층을 세워도 까딱없다는
소문도 있다.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지는 십여년전이라 처음부터 줄곧 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별로 고친데는 없이 살고 있다. 주변에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내부공사로 리모델링
하거나 창문틀을 바꾸는 등 자잔한 수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주 본다. 아파트가 30년이
넘어면 사소한 고장이 날 때도 됐다. 우리집 현관에 매달려 있는 전등도 그 중의 하나다.
아파트를 신축할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이 현관에 들어서면 스스로 인지하여 불이 켜지고
사람이 들어오거나 나가면 불이 꺼지는 자동 시스템으로 당시에는 최신식 장비를 썼다고
선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식솔들을 데리고 영국 웨일즈로 나간 해가 우리나라에 IMF사태가 일어난 1997년이었다.
당시 해수부 사무관 주 아무개와 정 아무개 두 사람이 유학을 나와 있었는데 자주 만나 골프도
치고 식사도 하였다. 어느날 집으로 초대를 받아 저녁식사를 야외에서 하는 데 정원 끝에
서 있는 전붓대에서 갑자기 불이 저절로 켜졌다가 잠시 후 꺼지는 것이었다. 세를 주고 빌린
집이었으나 대저택이었다. 하인을 둘 사람도 아닌데 저절로 전등불이 켜졌다가 꺼지는 게 이상해서
타이머를 붙였나 물어봤더니 주변에 사람이나 동물이 움직이면 센서가 감지하여 저절로 불이 켜진다
는 것이었다.
우리집 현관 천정에 매달려 있는 전등에도 센서가 붙어 있어 불이 켜졌다가 꺼지고 하는 데 아파트
나이가 서른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이놈도 요령이 생겼는지 아니면 늙어서 체력이 딸리는지 사람이
외출하려고 현관에 나서도 전기세를 아끼려고 그러는지 불을 켤 줄을 모른다. 성질 급한 트럼프 같았으면,
"넌 당장 해고야!" 소리가 나왔을 것이다. 컴컴할 때는 현관에 불이 들어와야 신발장 문을 열어 안에
있는 신발을 꺼내 신을 수가 있다. 또 어떤 때는 옆에 있는 화장실 스위치를 건드려도 자기를 부르는
줄로 알고 쓸데 없이 불을 켤 때도 있다. 정신 빠진 놈 같으니라구!
배를 타면 기관실에 보조 보일러가 있다. 주보일러는 스팀 터빈선에서 주기관인 터빈과 보조 기관인
터빈 발전기 구동용인 고압용(65kg/cm2)이고, 보조 보일러는 디젤기관을 주추진용으로 탑재한 선박에
난기 및 난방, 온수, 갤리(주방)용 등 보조용으로 쓰이는 저압(10kg/cm2이하 보통 7kg/cm2)보일러를
말한다.일명 동키 보일러라고도 한다. 보일러에는 점화시 불이 붙었는지 붙지 않았는지를 감지하는
플레임 아이(flame eye)가 노 내에 붙어 있다. 점화시 버너에 착화가 되면 플레임 아이가 불빛을 정상적
으로 캐치해야 버너에서 연료유가 계속 공급되어 보일러가 작동되지만 불빛을 캐치하지 못하면 불이
꺼진 것으로 알고 연료를 차단해 버려 보일러 작동은 정지된다. 이는 보일러 폭발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다.
플레임 아이에 그을음이 끼어 불빛 감지를 하지 못하면 버너에 착화가 되어도 미스 파이어로 인식하여
연료를 차단해버리므로 담당자인 3기사는 자주 분해하여 소제를 해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집 현관
센서도 제역할을 못하는 것은 수명이 다 됐거나 먼지가 끼었거나 둘 중에 하나 아니겠나 싶다.
아파트 현관에 사람이 들어서면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게 하는 소자는 일반적으로 인체감지 센서 또는 '모션 센서
(Motion Sensor)'라고 하는데 주로 PIR(Passive Infrared Sensor)가 사용된다. 그외에 초음파 센서와 마이크로파
센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