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의 「약속」은 35mm 극영화 「정사」에서 필자와 작업을 같이 한 이 재용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으로 주연배우로 명세빈, 김석훈이 출연한 뮤직비디오다.
약속은 신인가수의 데뷔곡이었기 때문에 가수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를 높이고 그의 특이한 음색으로 맛을 더하는 간절한 노래 내용을 드라마 형식을 통해 애잔히 보이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이야기 전개와 함께 느낌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 남자가(김석훈) 집에 들어와 쇼핑한 물건들 중에서 고양이 먹이를 꺼내며 자동응답전화기(answering machine)에 녹음된 내용을 틀면 아무 말 없이 끊어지는 전화내용들이 들린다. 이상하다는 듯 전화기를 보다 고개를 돌려 해가 사그러지는 하늘을 멍하니 응시하는 주인공 뒤로 어디선가 전화가 울린다. 계속 울리는 전화음을 듣던 남자는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난 듯이 정신없이 전화기를 찾아 헤매고 자신을 떠난 여인(명세빈)의 '나 내일 결혼해'라는 이야기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약속장소로 택시를 타고 가던 남자는 교통체증에 걸려 조급해하다 택시에서 내려 달려간다. 횡단보도 앞, 바뀌지 않는 신호를 초조하게 기다리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달려나가는 그의 얼굴 위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친다.
날카로운 기계음과 함께 주인공의 앞에 멈춰선 차, 움찔거리다 다시 뛰어가는 그는 약속장소에서 헤어진 연인을 만난다. 가슴에 담은 많은 이야기들을 대신하듯 애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 키스하던 주인공의 얼굴위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친다.
이 모든 것이 차에 치어 죽어가는 주인공이 마지막 의식으로 꿈꾸었던 바램들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헤어진 연인과의 해후를 위해 달려가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어가며 그녀와의 만남을 간절히 바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을 촬영·조명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 찍은 장면들을 한 시간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된 시간적 배경은 흔히 매직아우어(Magic Hour)라 부르는 때로 해가 진 후 밤이 되기까지의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하늘이 파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하는 시간대를 말한다. 이때는 산광만이 남아있는 시간대로 노출계 상으로는 화면에 표현될 수 없는 피사체들도 표현되는 이유로 매직아우어라 부른다. 실제로 이 시간대는 십 여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동안이고 제작여건상 그 시간대만을 이용해 촬영하기엔 정해진 많은 분량의 컷을 다 소화해낼 수 없었다.
인물 조명의 색이나 광량은 조절할 수 있지만, 자연광은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작품에선 일관된 톤을 맞추기 위해서 자연광보다 인물에 한 조명이 1400∼1600。K정도 떨어지도록 조명했다. 또한 광량도 자연광의 변화에 따라 같은 밸런스로 조명기를 변화시켰다. 주로 배경이 걸리고 중요한 장면 위주로 새벽이나 해진 이후의 시간대에 맞춰 촬영했으며 인물에는 키메라를(Chimera)를 이용한 산광으로 조명을 조절했다. 다른 컷들은 81EF라는 색온도 보정 필터를 이용했다. 3200。K(캘빈)의 텅스텐 필름으로 5500。K의 광원 상황에서 촬영을 하면 색온도의 차이 때문에 필름(화면)에 푸른빛이 많이 남아 있게 된다. 이 때 엷은 앰버 및 오렌지색 필터인 81EF 필터를 사용해 광원의 색온도를 낮춰줌으로써(약 4600∼4800。K) 원하는 정도의 푸른빛이 화면에 남도록 분위기를 조절했다.
노출 설정에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밝은 낮 시간대인 경우 반사식 노출로 1½ stop정도 오버시켜서 표현하는 흰색 건물을 ½ stop 정도만 오버시켜 결과적으로 1stop 가량 언더된 농도의 흰색건물로 표현시켰다.
카메라는 Arri Ⅲ를 주로 이용했고 동시녹음 부분만 BL 4S를 사용했다. 또한 Arri Ⅲ 카메라로 24fps보다 약간 느린 속도감을 원했던 교통사고 장면과 키스씬 등을 촬영할 때는 32fps으로 찍었다. 인물의 움직임을 헨드헬드(Handheld)의 흔들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은 스테디캠(SteadiCAM)으로 촬영했다.
필름은 코닥 VISION 320T 5277, 200T 5274, 800T 5289 세 종류를 사용했다. 200T 5274는 주로 낮에 사용했고 320T 5277은 약간 어두운 실내나 태양광이 적은 시간 때에, 800T 5289는 새벽과 스카이라인(Skyline) 때 사용되었다.
조명은 HMI 2.5KW Fresnel, HMI 1.2 KW Fresnel, 텅스텐 5KW, 2KW, 300W, Mole light, Kino Flo, Dedo light 등을 사용했다.
김석훈의 방안 장면은 간접조명을 이용한 소프트 키톤의 로우키로 해질 녁 집안의 분위기와 명세빈이 떠난 후 주인공의 감정상태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화면이 밋밋해지지 않도록 Arri 300W Fresnel light를 이펙트(Effect)개념의 하드라이트로 사용했다.
약속장소인 세종문화회관 앞 장면에서는 낮 시간을 피한 오전, 오후시간대에 320T 5277 필름에 81EF 색온도 보정 필터를 이용 4600。K대로 푸른빛이 약간 남아 있게 색온도를 조정했고 5KW Fresnel light에 키메라(Chimera)를 씌워 소프트한 간접조명으로 인물을 표현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누워있는 김석훈의 눈을 향해 카메라가 직부감과 360도 회전을 하며 들어가는 장면의 촬영은 지미집(Jimmy Jib)이라는 무인 리모트 컨트롤 크레인을 이용했다. 지미집의 장점은 무인으로 카메라를 조종할 수 있고 극단적인 부감이나 앙각 앵글이 가능하며 원하는 일정한 속도로 카메라를 360도 이상 회전하고자 할 때 무척 유용하다. 다음 장면인 김석훈의 눈 극단적인(Extreme) C.U에서는 인물의 한쪽 눈을 크게 부각시키기(Big C.U) 위해 이노비전(Innovision)이라는 초접사용 특수 렌즈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