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니스 조플린과 린다 페리가 공존하는 탁월한 보컬
저음·중음·고음 전 음역대가 고르게 입체적 공명
팝에서 록, R&B, 소울, 재즈, 블루스 온갖 장르 잘 소화
육성은 단순히 성대의 마찰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육성에 여러 가지 색을 입히거나 그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것이 발성의 역할이다.
허스키 발성은 소리의 매력을 더해주는 창법의 고급화된 단계다. 감정을 주입시킨다거나 파워를 집어넣는 등 허스키의 역할은 노래를 좀 더 멋지고 깊이 있게 그리고 감성적으로 들리게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명 보컬리스트 핑크(38)는 허스키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케이스다. 허스키의 달인인 핑크의 노래를 처음 접하고 온몸이 짜릿한 전율로 흥분했던 때가 지금도 생생하다.
핑크는 유명해지기 훨씬 이전부터 필라델피아의 클럽 등지에서 노래 부르며 경험을 쌓아갔고 데뷔 몇 년 후인 2003년 제46회 그래미어워즈 최우수 여성 록보컬을 수상했다.
핑크는 도저히 여성이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파워풀한 가창력과 폐활량의 소유자다. 완벽한 강약조절과 풍부한 표현력의 허스키로 인해 노래가 강건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허스키가 뛰어나다보니 팝이나 록은 물론 R&B, 소울, 재즈 등등 온갖 장르를 잘 소화한다.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으로 소리를 오랫동안 갖고 있으며 호흡 역시 뛰어나다. 이 모든 것에 기반해 다양한 표현을 연출한다는 건 핑크의 최대 강점이다. 어택을 잘 타는 리듬은 듣는 이를 더욱 고무시키며 소리의 배음도 좋다. 저음에서 중음, 고음에 이르기까지 전 음역대가 고르게 입체적으로 공명하는 것이다. 중음에선 굵고 파워풀하며 고음에서도 소리가 알차게 잘 모여 탄탄하게 뻗어나간다.
몸에서 공명이 일어 성대를 타고 소리가 나오지만 그 최종적인 단계는 입술이다. 입술에서 가사가 전달되고 각종 표현이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래할 때 입술의 놀림은 매우 중요하다. 어설프게 입술을 놀린다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된다. 소리가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정확하게 발음을 구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핑크의 경우 음의 고저를 막론하고 발음 구사력이 뛰어나다. ‘God Is A DJ’, ‘Last To Know’, ‘Tonight's The Night’ 등에서 록보컬 허스키 창법의 교과서적인 수준을 들려준다. 남성 보컬을 능가하는 소리의 파워 역시 대단하다. 또한 ‘The One That Got Away’과 같이 탁월한 허스키에 기반한 블루스 필링도 탁월하다. 재니스 조플린이 연상되는 이런 노래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핑크는 한마디로 재니스 조플린의 천재적 감성과 린다 페리의 엄청난 파워와 알찬 소리의 장점만 합쳐 놓은 듯한 탁월한 보컬리스트다. 폭발적인 표현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내면으로 삭일 줄 아는 블루스 필링에서 부드럽고 매끈한 R&B 타입, 그리고 헤비메틀의 파워풀하고 광폭한 표출에 이르기까지 핑크의 소화력은 놀라울 만큼 왕성하고 극적이다.
2006년 앨범 [I'm Not Dead]부터 핑크는 폭발적인 에너지의 표출보다는 담담하고 차분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Try This]를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나소 낯설게 여겨질 수 있을 만큼. 그러나 변화를 준다고 해서 핑크의 본령이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컨트리 스타 케니 체스니와의 듀엣 ‘Setting The World On Fire’도 의표를 찌르는 시도였다.
그래미 어워즈 3관왕, 전 세계 6000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을 보유한 핑크가 7번째 정규 앨범 [Beautiful Trauma]를 발표했다. 얼마 후면 40대로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보컬의 공력은 여전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성진 기자 / 스포츠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