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표지중 '일방통행'은 푸른 색깔의 바탕에다 가운데에 흰색 화살표로 돼 있다 우리 나라에선
아래에 일방통행이란 한글이 적혀 있고 외국에선 'No entry' 화살표 속에 들어 있다. 일방 통행은
보통 양방향 통행이 어려운 좁은 골목 같은 곳에 지정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보다 복잡한 곳은
차량의 진입 자체가 금지된 곳도 있다. 식솔들을 좁은 승용차에 담아 싣고 유럽을 쏘다닐 때의 일이다.
아이들이 학교 여름방학 동안을 이용해 여행을 떠났으므로 아마 8월 초쯤 됐을 것이다. 영국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벨기에 독일 오스트리아를 거쳐 이태리로 내려갔다. 우리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더운 때였다. 도로의 아스팔트는 뜨거운 햇볕에 녹아 엿판처럼 물렁물렁 했는데 에어콘도 없는
차에 애들 4명과 마누라까지 태웠으니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강행군 스케줄에 그렇다고 나무 그늘이라도
찾아 쉴 수 있는 형편은 못됐다.
학교 다닐 때 영어시간에 'All roads leads to Rome' 라는 속담을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라틴어로는
'Omnes viae Romam ducunt'라고 돼 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자 유럽의 수도라고
생각되었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기 전까지는 동양 특히 중국이 세상에 있는 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실크로드를 통해 비단과 도자기 정도가 건너갔을 뿐이다. 로마시 순환도로를 타고 들어가 도로망 지도를 보고
먼제 바티칸공국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도로는 사통팔달로 잘 뚫여져 있었으나 오래 전 도로라 폭이 좁아
곳곳이 일방통행으로 돼 있었다. 직선거리로는 바로 옆이라도 차로 가려면 일방통행이 많아 한참 빙빙 돌아
가야 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오래된 소금광산이 곁에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작은 도시인
'할슈타트'를 찾아갔을 때였다. 호수 바로 곁에 있는 호반 도시 주민들은 얼마되지 않는데 비해 외부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와서,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 외에는 차량출입이 전면 금재돼 있었다. 스위스 체르마트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26년전인데도 전기차량 외 그리고 주민들 차량외는 진입금지였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차를 몰고 들어가려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어떤 주민이 그냥 돌아나가라고 일러 주었다. 경찰에 발견되면
상당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급히 차를 돌린 적이 있었다. 마을 입구로 되돌아 나오니
도로 위에 붉은 색깔의 원이 그려진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표지판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무슨 의미인지도 알지 못했었다.
알고보면 '일방통행'이 비단 도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배가 다니는 항로에도 있을 수 있고 국가간의 무역에도
일방통행이 있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도체를 흐르는 전기에도 일방통행이 있어 역방향으로는 전류가 흐르지 못하게
하는 다이오드가 있다. 그리고 유체가 흐르는 관로에도 첵크 밸브가 있어 순방향으로만 흐르고 역방향으로는 흐르지
못한다. 인체의 혈관에도 첵크밸브가 있어 역류를 방지하고 있다. 가끔 쥐가 일어나는 것은 혈관 속의 첵크밸브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내리 사랑'이란 말이 있다. 사랑에도 일방통행이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짝사랑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자녀가 어릴 때는 무척 사랑스럽다. 부모는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키운다. 자녀가 장성하여
결혼해 나가 자식이 생기면 부모는 뒷전이다. 오늘 낮에 따로 나가 사는 큰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서, "애비가 좋아하는
와인이 떨어져서 코스트코에 사러 가야겠으니 차를 좀 갖고 오너라"고 했더니 안된다는 것이었다. 곧 아이들을 데리고
기장 어린이 박물관에 구경가기로 약속이 돼 있다고 했다. 집에 있던 차는 막내놈이 끌고 가버려 손발이 묶여있는 상태라
부탁을 했던 것이었다. 어제 같이 등산을 갔던 친구 조빠는 자기 장모님이 구순이 넘어 지금 요양병원에 계시는데 자식들이
너댓명이나 있어도 자주 찾아오지도 않는다며 분노에 차 있다고 한다. 사랑은 일방통행처럼 주는 것이지 돌려 받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