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공소에 간지 오래되었다.
40대 초반 선교회 회장일때는 매주 간사와 함께
봉고차를 타고 괴산을 비롯 감곡 등지의 공소로 갔다.
혼자 세상에 홀홀 내 던져 팽개쳐졌던
버림받은 느낌이었던 그 쓸쓸한 가을에.....
하늘을 쳐다보면 그 파란 하늘조차
나를 외면하는 듯한 서러움과
사무친 외로움이 가득했을때
곳곳에 피어나는 민들레꽃같은 질긴 민초의
삶들을 만나면서 그 삶들의 손을 잡으면서
나는 서서히 치유되었고 비타민 같은 기운을 얻었다
나눔을 했다고 하지만 기실은
내가 나눔을 받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봉사를 했다고 하지만 기실은
내가 봉사로 인해 치유가 되어 선물을 받은 것이다.
미사전례와 좋은 강론을
수어로 통역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는데..간사와 함께 괴산을 방문하면
미사마치고 칠성면 등등 괴산 곳곳에 사시는분들을
집으로 태워드렸다.
그때 심한 수재가 들어서 모금한 수재의연금들을
각 성당과 공소에 전해주면서
신자와 신부님들과 좋은 인연들을 맺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분들도 많고
그 중 한 분은 나의 멘토 영성신부님으로
혼자 풀기 어려운 사회적 고민 삶의 대소사를 나누기도....
공소인근에 사는 노부부는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글도 못하고
수어도 조금만 한다.
티 하나 묻지 않는 원시림의 원주민처럼
자연 그대로 늙어가시는 분들이다.
예전에 수화라고 불리던
손짓소리도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에 수어라고 하는데
그것도 역시 교육을 받아 가능하다.
노부부는 일주일 한번 씩
나를 만나면 자신들이 키운 온갖 농산물을 자랑하고
그리고 가끔 손짓발짓으로
부부싸움의 흔적을 보여주며 증거를 보여주는데
마치 아이들이 선생님께 고자질하면서
제 편을 들어주길 바라듯이 하소연 한다.
할머니는 할부지 팔을 깨물었는데 이빨자국이
선명하지만 꽉 깨문것이 아닌 약간 흔적이고
할부지는 할머니정강이를 걷어찼지만
피멍도 아닌 살짝 멍이 들 정도라...
착한 노부부의 원초적 부부싸움은 서로 많이 다치면
안될꺼라는 진짜 애정이 깔린 몸짓동작이
선명해 나는 미소를 빙그레 지었다.
할머니는 정짓간으로 불러 편을 들어 주었고
할부지는 우렁소가 있는 쪽으로 모셔가서
편을 들어주었다
마치 이중간첩질처럼....
자주 가다보니 점심 먹고가라고 해서 먹었던
청국장과 호박잎쌈장은 어찌나 맛있었던지..
먹고 또 먹어도 한 보따리 그물망 가득
싸서 차에 실어주던 괴산옥수수는
어찌는 그리 담백하면서도 찰지게 자꾸 손이 갔던지...
점심을 기다리며 윤기나는 오래된
대청마루에 두 팔 두다리 뻗고 누워 있을때
양쪽 들창 날창의 맞창에서
솔솔 불어오는 맞바람 통바람은
어찌나 자연스럽게 시원했던지..
그 쪽잠은 보약처럼 개운했던 기억이다.
자주 가다보니 가족사진을 보게 되었고
가족중에 아들이 여러 명인데
막내아들은 본 적이 없어서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할부지는 자리를 피하고
할머니는 조금울다가 나중에는 가슴을 치면서 운다
서럽게 우시는 그 모습이
마치 애장을 끊는 듯한 모습인데 나는 그 느낌을 너무 잘 알기에
가슴이 아릿아릿 전기를 찌르르 통한 것처럼 쓰려왔다.
우리 엄마가 원래 아들이 넷인데 세째 오빠가
20대에 현대문학지에 시가 추천으로 실리고
등단을 앞두고...어느날 사고사 했을때
그런 애장 끊는 듯한 울음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이혼하여
한푼 위자료도 받지 못하고 집도 방도 없이
서예실 차가운 마루방 구석에 혼자 살면서
두 딸을 만나지 못하고
눈물젖은 밥을 간신히 먹고 있을때...
꿈이 좋지 않아 딸이 다니던 학교에 연락하고
수소문하여 알아내었는데 딸이 입원해 있다고...
큰 애가 부모의 이혼으로우울증이 심해 사고가 생겨
간신히 실아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라는데
재혼한 전남편 부부가 만나지 못하게 하고
병원도 알려주지 않아 밤새도록 웅크리며
창자가 뒤틀리고 숨조차 쉬기 어려워 뒹굴었던
단장비슷한 고통을 겪은적이 있었다.
손짓 발짓으로 할머니에게
아들이 사라진 사연을 알아보니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인 자기들하고
소통이 안되어 힘들어 했고
시골구석에서 형들처럼 농사짓는 삶이 싫어서
사춘기때 형들한데 크게 야단맞고
도회지로 가출했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아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생사만 알아도 여한이 없겠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다고..
형들이 막내를 찾는다고 수소문했지만
그 어디에도 흔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그랬던 그 막내분의 흔적을
내가 우연히 찾게 되었다.
-
길어져서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카페 게시글
수필 수상
해후 -1
늘 평화
추천 1
조회 274
23.09.15 11:32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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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애간장 태우던 기구한 삶의 애환을
다 이겨내시고
지금 늘 평화롭게 지내고 계시어
제가 다 편해지는 느낌입니다~어떻게 찾게 됐는지
퍽 기다려지네요
찾으려고 한게 아니고
안타까움을 갖다가
업무 중에 찾은셈이에요~~
평온한 밤되세요
이곳은 비가 제법 오네요
늘평화님의 봉사하는 삶이
참 아름답습니다.
저도 40대에 수어 봉사를 위해
2개월 배웠는데 써먹질 못하다보니
금세 잊혀지고 말더군요.
그 막내아들의 행방은
어찌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맞아요
안 쓰면 잊어요
저도 이젠 주 1회 무료교육때
만나는 농아부부와의 소통에만
쓰니 자꾸 잊고 있네요~^^
다음편을 기다리게 되네요.
봉사 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게 됨을 느낍니다.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그쵸?
봉사활동과 기부를 통해
오히려 삶에 위로와 선물받음이
느껴지는 신비함이 있어요 ~^^
거제도 곁에 지심도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처음 공소라는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때 느낌이 이곳에서 미사를 보면
저의 냉담도 끝을 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 막내 아들의 이야기, 목 빼고 기다리겠습니다.
단촐한 공소가 거대 성당보다
오허려 평온한 비움을 주지요
막내아들 이야기 2편 오늘 이어보았습니다
사느라고 힘을 빼는 경우도 있지요.
한 번 씩은 내 생활이 아닌 곳에서
봉사를 한다는 것은
삶의 용기와 뿌듯한 기쁨이 되어 돌아오지요.
어려운 처지의 환경에 있는 분께
봉사하는 늘평화님은
사랑과 실천이 몸에 베였습니다.
다음을 기대해 봅니다.
요 며칠은 애기 보지 않아서
글쓰기는 시간이 주어지고
가을이 시작되니
차분하게 감성이 살아나네요
평온한 밤되세요
너무도
힘들고 헤어지는
아픔을 감당 하기 힘들어
희망도 보이지 않았던 그 시절
자신의 인생경험의 글
잔잔하고 감동적입니다
지금은
멋진 서예가 늘 평화님
봉사도 열심히 하신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모든면에서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끝이 없는 듯 아득한
세파도 결국의 시간의 바다에서는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구요
기도드려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평온한 밤되세요
공소 그리고 봉사 중 인연을 맺게 된
분들을 잔잔하게 묘사 하시어
술술 읽어 나가는데
또한 사연이 맞물려 이어지니
흥미진진 합니다.
다음 편 기다립니다.
건필 유지하세요.
고맙습니다
네덜란드 계시는 줄 알았는데
9월들의 가족들 수술과 온갖 일들이
조금 평정되니 여유생겨
이곳의 글들 하나하나
글 찾아 읽고 쓰는중인데
귀국을 하셨더라구요 ㅎ
좋은 기운 나누어 주시고
건강 건필 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