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슬퍼서 우는 줄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새는 맨날
슬픈 날만 있을까? 서양 사람들은 새가 노래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운다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기쁠 때도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내가 '울지 않는 피아노' 라고 한 것은
우리집에 피아노가 평상시는 울지 않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는 것은 멀리 있는
외손자와 외손녀가 내려 왔을 때 잠시일뿐이다.
우리집에 피아노가 생기게 된 것은 아마도 35~6년 전쯤으로 생각된다. 큰 딸이 올해
마흔이니까 그애가 유치원에 가기 전이었다. 바로 밑에 있는 동생이 한국 타이어
남미 베네주엘라 주재원으로 있다가 귀국하면서 이삿짐으로 갖고 온 것을 값을 쳐주고
떠 맡은 것이었다. 여유가 있어서 산 것은 아니었고 딸애가 둘이나 있으니 장차 피아노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안락동에 살 때였는데 도로 옆 단독주택이었고 마침 1층에는 피아노 학원에
세를 놓고 있었다. 유치원과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던 딸애들은 피아노가 집에 들어오자
신이 났고 밤새 건반을 두들겨 댔다. 딸 애들이 점차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자 피아노를
칠 시간이 없어졌고 밑에 있는 사내 둘은 피아노에는 관심이 없어 피아노는 늘 저 혼자
놀고 있다가 이사를 오면서 아파트로 따라 오게 된 것이다. 아파트에서는 피아노를 치려면
소음때문에 방음장치를 해야 하는 데 칠 사람도 없으니 돈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집에는 박물관에 가야 할 물건들이 더러 있다. 할머니 때 쓰시던 다듬돌과 다듬 방망이,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한자 옥편, 아버지가 쓰시던 일제때 나온 토정비결 책이 있고, 내가
썼던 우드 테니스 라켙도 있다. 내가 받은 국민학교 우등 상장과 통신표가 벌써 70년이나 됐다.
어머니가 받으신 장한 어머니 표창장 그리고 배 타면서 받은 수당으로 사 모은 클라식 LP판,
초창기 나온 삼성전자 진공 청소기도 있다. 내가 처음 썼던 286,386 컴퓨터도 남아 있고 플로피
디스켙도 보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북극항로를 횡단시 사용했던
해도가 있다. 내가 기록했던 항해기도 물론 남아 있다. 이쯤 되면 사이버 박물관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