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아파트 쓰레기장으로 종이류를 내는 날이다. 종이류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일주일에 수요일과 일요일 두 번 수거해 간다. 음식물 쓰레기와 그외 쓰레기는 매일 버린다.
현관문 앞에 헌 신문 뭉치와 빈 박스와 그 옆에는 비닐류 그리고 헌 후라이팬, 냄비 두 세트가
나와 있고 그 옆에는 벌겋게 녹이 슨 정지 칼 하나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말하자면 오늘중으로
쓰레기장으로 내려갈 물건들이다.
나는 고생하면서 커서 그런지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성질인 반면 집사람은 마음에 안들면
먼저 버리고 본다. 녹슨 칼도 예전에 내가 배 탈 때 일본에서 사 왔던 것이다. 자주 사용하지 않고
구석에 처박아 두었기 때문에 폐품처럼 벌겋게 녹이 슨 것이다. 독일제 쌍마표 부억칼 세트는
비싸기도 하지만 스텐으로 만들어져 녹이 슬지 않는다. 내가 무쇠로 된 일제 칼을 사 온 것은
전적으로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내 어릴 적 시골에 살 때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정지 칼이 하나뿐이었다. 김치와 같은 음식을 자를
뿐만 아니라 아궁이에 들어갈 솔가지도 자르고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날이 쉬
무디어져서 어머니는 손목이 아플 정도로 힘을 써셨고 간간이 사구 테두리에 문질러 써시곤 하셨다.
집에 숫돌이 있었으면 내가 갈아드렸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숫돌 하나에 얼마 하지도 않았을테데
아버지는 6.25사변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넋을 잃어 술만 드시고 농사 짓는데는 신경을 쓰지
않으셨다.
일제 칼이라 헤도 우리나라 왜식집 이다바(쿡)들이 애용하는 명품 회칼이 아니라 그저 마트에서 파는
가정용 부엌칼이었다. 칼뿐만 아니라 바느질용 가위도 하나 사다 드렸다. 당시엔 아무래도 쇠의 재질이
일제가 우리보다 앞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어릴 때 어머님이 고생하시던 모습이 나의 뇌리 속에
생생히 꽂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관 앞에 나와 있는 녹슨 칼을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이 출근한 다음 녹슨 칼을
주워 들고 바깥으로 나가 아파트 울타리 부근에서 시멘트 벽돌에 녹슨 칼을 문질러 녹을 벗겨 내었다.
한참 동안 벽돌에 문질러도 녹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워낙 오랫동안 습기 찬 곳에 팽개쳐 두었기 때문
이리라. 어느 정도 녹이 벗겨지면 들고 들어와 숫돌에 갈면 녹은 깨끗이 벗겨질 것이다. 안 쓰는 칼에만
녹이 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몸에도 안 쓰는 곳에는 녹이 슬어 있을지 모른다. 녹을 벗겨내자. 칼에
낀 녹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낀 녹도 깨끗이 벗겨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