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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의 사회 ㆍ 문화적 배경
(1) 기후와 풍토
로마 문화가 성립된 이탈리아 반도는 지중해의 중심지역에 위치하여 주위의 여러 민족과 쉽게 접촉할 수 있어, 자연히 국제적인 문물의 교류가 일찍부터 행해졌다. 또한 로마의 기후조건은 지중해성 기후로 평야가 넓고 해안선의 굴곡이 단순하여 농업을 주로 하는 농업중심의 경제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로마의 의복은 그리스와 같은 드레이퍼리형을 기본으로 타민족의 문화도 흡수하여 발달하였다.
(2) 종교
로마인들의 종교는 현세적인 자연이나 그리스적 신화를 숭배하는 것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영혼들에게 규칙적으로 봉납하면 보호와 은총을 받으리라는 믿음에서 신앙의식을 일상생활의 필수적이고 실질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종교가 현세적이었듯이 의복 역시 물질적인 것을 숭상하여 풍부한 양감을 나타내는 의복으로 발전하였다. 좋은 점을 모방하여 자신에게 맞는 문화로 재생시키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성격을 띠게 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학문이 철학ㆍ미학ㆍ신학 등 형이상항적으로 발달한 그리스의 학문과는 대조적으로 법률ㆍ수사ㆍ역사ㆍ토목ㆍ건축 등 실용적인 학문으로 발달한 것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로마시대 전반에 걸친 종교관은 현세적이었으며 이러한 종교관은 생활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미쳤다.
(3) 사회제도
로마복식에 나타나는 위엄 박력 양감이라는 특성은 인문적 지리적 역사적 배경보다 독특한 사회제도에 의한 영향이 훨씬 크다. 로마에 있어 복식과 사회적 배경의 관계는 다른 어떤 나라에서보다도 밀접하여, 복식은 그 시대의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역할을 했다.
로마의 역사는 기원전 8세기 중기로부터 5세기 후기에 이르는 13세기 동안의 오랜 기간에 걸쳐 전개되었고, 대규모의 정복이 행해지면서 로마 사회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정복한 지중해를 통해 많은 속주에서 호화로운 직물, 장식품 등 진기한 사치품들이 수입되었고, 그 주민을 영입시켜 노예로 사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영토와 개화에 욕망이 더욱 자극되었다. 이들 노예의 노동력으로 인해 로마의 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다. 노예제도는 그리스보다 로마에서 더욱 발달했으며 국가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B.C. 2세기에 걸쳐 성행했다. 따라서 귀족층의 세력도 증강했는데 사치품이나 가옥의 장식, 의상 등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복식문화가 발달하게 된 반면 사회풍조는 사치와 방종으로 매우 문란해졌다.
A.D. 2세기 경에는 로마 제국의 영토가 최대로 확장되었고, 부와 노예의 노동력으로 귀족층의 생활은 사치하고 방탕했으며 복식이 극도로 화려하고 우아해졌다. 그러나 서민생활은 귀족과는 대조적으로 비참했으며, 이러한 빈부의 차는 반란을 초래하여 국력의 소멸을 가져오고, 마침내 394년 동ㆍ서 로마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2. 영화의 줄거리 글레디에이터
시대배경은 서기 180년경이다.
로마제국의 철인황제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이 노쇠함을 느끼자 자신이 아들처럼 총애하는 막시무스 장군을 후계자로 선택하여 자신이 사망한 후에는 로마제국을 다시 공화국체제로 복귀시킬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야욕에 찬 황제의 아들 코모두스는 이를 알아채고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후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막시무스 장군을 살해할 것을 명한다.
장군은 가까스로 자신의 목숨을 건지지만 코모두스로부터 자신의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을 잃게된다. 혼자 남게 된 막시무스는 자신의 신분을 속인 채 노예로 팔려 검투사가 되고, 매 경기마다 승리하면서 그의 인기는 날로 높아간다.
한편, 코모두스는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검투사 대회를 열고, 명성을 날리는 검투사로 돌아온 장군과 황제, 그리고 황제의 누이이면서 장군의 옛사랑이었던 공주 루실라, 이 세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다.
어느새 민중의 영웅이 된 막시무스, 코모두스는 그가 아직 살아 있음 분노하지만 민중이 두려워 그를 쉽사리 죽이지를 못한다. 여전히 막시무스를 사랑하는 루실라는 동생을 배반하고 그의 반란을 도우려 하지만 실패로 끝난다. 코모두스는 손상된 자신의 명예를 위해, 그리고 막시무스를 죽이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최후의 대결을 펼친다.
결국 막시무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곁으로 떠나지만 마르쿠스 황제를 위해,
로마를 위해 약속을 지킨다.
3. 로마의 실제복식과 영화 속 복식
(1) 토가(Toga)
토가는 라틴어로 평화복 또는 '덮다'라는 뜻이며, 그리스의 히마티온과 에트루리아의 테베나가 합하여 발전한 것이다. 토가는 반원형이나 타원형, 또는 팔각형의 천을 접어 몸에 둘러 입었다. 재료는 주로 울을 사용하였고 부피가 커지면서 얇은 울이나 린넨, 실크 등도 사용했다. 두르는 방식은 그리스의 히마티온과 본질적으로 같은데 초기에는 비교적 간단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고 형식화되었다. 복잡한 형식으로 입는 토가는 주름 사이에 포켓이 구성되기도 했다. 성직자가 기도할 때나 일반인이 상을 당했을 때는 토가의 한 자락을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토가는 로마의 가장 대표적인 의상으로 초기엔 남녀노소 모두 착용하다가 제정 시대에는 공식복으로 지배계급에서만 입었다. 로마 초기의 토가는 에트루리아의 테베나처럼 작고 단순한 형태였으나 로마의 전성시대인 제정 초기부터는 부피가 매우 커져서 길이가 6m를 넘는 거대한 것으로 바뀌었다.
제정 말기가 되자 토가는 관복이 되었고, 색상이나 트리밍, 입는 방식 등이 계급에 따라 엄격히 달라지면서 여러 가지의 다른 명칭이 붙게 되었다. 토가의 크기가 너무 커지니까 평상복으로 항상 입기에는 불편해져서 의식 때만 입고, 대신 토가 밑에 입던 튜니카를 평상복으로 입게 되었다. 이처럼 토가가 잘 입혀지지 않으면서부터 그 크기가 다시 작아져 긴 장식띠 형태의 로룸(lorum)으로 바뀌었다. 토가는 제정 말기부터 관복이 되면서 색상과 단장식, 크기, 입는 방법 등에 따라 명칭이 다양해졌다.
① 토가 픽타(Toga Picta)
황제나 개선장군이 입었던 공식복으로 로마의 수도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진 뒤에는 착용 되지 않았다. 토가 픽타는 붉은 보라색의 실크에다 금실로 가장자리에 수를 놓은 것으로
토가의 여러 유형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거대한 것이다.
② 프라에텍스타(Toga Praetexta)
황제나 성직자, 집정관, 14세 이하의 소년 소녀들이 입은 토가로, 하얀 울에다 보라색으로 가장자리에 트리밍을 댔다.
③ 토가 푸라(Toga Pura)
전혀 장식 없이 만든 단순한 모직 토가로, 일반 남자들이 평상복으로 착용했다.
④ 토가 비릴리스(Toga Virilis)
16세기 이상의 자유민이 착용한 모직물의 자연적인 색상으로 된 토가이다.
⑤ 토가 칸디다(Toga Candida)
청렴결백한 성격을 상징하기 위해 노출된 부분을 분칠한 공직자들이 착용한 토가로 분찰한 색상보다 더욱 흰 색상으로 되어 있다.
⑥ 토가 풀라(Toga Pulla)
토가 소디다로 불리우며 평민들에의해 착용된 검은색이나 회색 또는 갈색 등의 어두운
색상으로 만든 토가이다.
(2) 팔라(Palla), 팔리움(Pallium)
그리스의 하마티온이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여자가 입는 것을 팔라라고 했고 남자가 입는 것을 팔리움 이라 했다. 형태와 입는 방법이 토가와 비슷한 것으로 직사각형의 천을 왼쪽 어깨로부터 가슴을 거쳐 오른팔 밑을 지나 등 뒤로 돌려서 다시 왼쪽 어깨로 두른 다음 왼팔에 걸쳐지게 했는데, 이런 순서를 반대로 하거나 또는 더 복잡하게 몸에 여러 번 두르기도 했다. 여자들은 등 뒤로 지나가는 팔라 자락을 머리위로 끌어올려 머리에
쓰기도 했다.
팔라는 대개 중류 이상의 계급에서 애용되었으며 아름답고 화려했다. 즉, 여러가지 색깔을 사용했으며 가장자리에 트리밍을 대거나 전면에 수를 놓기도 했다. 토가가 거추장스러워지자 공화정 중기부터는 토가를 착용하지 않고 간단한 팔라나 팔리움을 애용했다. 팔라난 팔리움은 튜니카나 스톨라 위에 입었고 옷감은 울, 리
넨, 실크가 사용되었다.
(3) 튜니카(Tunica)
튜닉의 라틴명이다. 토가가 거창해지자 일상복으로 잘 입지 않고 속옷으로 입던 튜니카를 대신 일상복으로 입었다. 튜니카는 그리스의 도릭키톤이 변형 발달된 원피스 드레스이다. 초기엔 두장의 직사각형 천을 어깨와 양쪽 옆 솔기를 진동선만 남기고 바느질하여 목둘레선을 일자로 트고 속옷으로 입었다. 후기엔 일자형 튜니카에 소매를 달아서 겉옷으로 입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길게 발목가지 오게 입었고, 뒤 목둘레선 중심을 T자로 트고 목둘레와 어깨 등에 장식을 하거나 튜니카 전체에 수를 놓기도 했다. 초기엔 소매가 없거나 좁은 소매가 달렸는데, 후에 팔꿈치 길이의 넓은 소매가 달리기도 했다.
① 튜니카 라티클라비( Tunica Laticlavi)
로마의 집정관, 원로원 의원 및 성직자들에 의해 착용된 튜니카로, 목의 양 옆부분에서
시 작하여 밑단까지 트리밍으로 장식하여 착용자의 중요성을 상징하였다. 백색의 린넨으로
되어 있으며 이 장식을 클라비라 한다.
② 튜니카 팔마타(Tunica Palmate)
승리를 전승하기 위해 황제나 개선장군들에 의해 착용된 자색의 화려한 튜니카로, 금사로 가장자리를 자식하거나 종려나무 잎으로 장식하였다.
③ 튜니카 탈라리스(Tunica Talaris)
밑단에 그리스의 뇌문이나 금사로 동물의 형상을 수 놓아 장식한 축제의상이다.
(4) 스톨라(Stola)
그리스의 키톤을 로마에서는 스톨라라 했다. 남자들은 주로 튜니카를 많이 입고, 여자들은 튜니카보다 넓은 스톨라를 입었다. 스톨라는 그리스의 도릭 키톤과 이오닉 키톤이 약간 변형 발전된 것이다. 이오닉 키톤의 소매처럼 어깨부터 손목까지 솔기선이 있고 솔기선을 따라 주름을 잡아 소매 모양을 만들었는데 소매의 주름잡는 솔기선을 피불라(fibula)로 고정시켰다. 길이는 손목 또는 팔꿈치까지 오는 소매, 짧은 소매 등이 있고 소매통도 넓은 것과 좁은 것 등 다양하며, 소매는 따로 재단해서 몸판에 붙이기도 했다. 이 우아한 원피스 드레스는 길이가 발목까지 왔는데, 허리띠를 가슴 밑에 한 번 두르기도 하고 가슴 밑과 힙 근처에 두 번 두르기도 했다. 초기에는 흰색의 울을 사용했으나 후기엔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 등의 리넨이나 카튼, 실크 천으로 만들고 금실로 수를 놓기도 했다.
(5) 티베나 (Tebaena)
티베나는 프릴이나 레이스로 가장자리를 장식한 반원형, 장방형, 원형의 형태를 가진 작은 숄로 상류 계층의 의상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가정의 신인 베스타의 색인 주황색을 선호했다고 한다. 하얀 스톨라 위에 금박 장식이 가미된 주황빛의 숄, 그리고 머리 위의 베일이 신성한 느낌을 연출시키고 있다. 루실라 공주의 동생 코모두스가 황제가 되어 입궁하는 날 공주가 입었던 옷으로서 신성한 날에 꼭 들어맞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6) 팔루다멘툼(Paludamentum)
팔루다멘툼은 그리스의 클라미스와 같이 직사각형 또는 정사각형의 천으로 왼쪽 어깨를 덮고 앞이나 오른쪽 어깨에서 장식핀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공화국 초기에는 장군들이 입고, 제정 시대에는 황제와 장군들이 튜닉 위에 둘러 입었으며, 평민들도 여행할 때에는 질이 낮은 거친 울의 팔루다멘툼을 입었다. 지배계급이 입을 때는 이 팔루다멘툼의 안팎을 보라색 실크로 만들고 겉은 금실로 수를 놓았다. 비잔틴에서는 이 팔루다멘툼이 지배 계급의 공식복으로 화려하게 발달했다.
(7) 외투
① 라케르나(Lacerna)
추운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방한용으로 서민과 노예들에게 입혀진 케이프의 일종이다. 직사 각형의 네모서리를 굴린 후 어깨에 걸치고 피불라로 고정시켰으며 때때로 후드를 달거나 뗄 수 있게 만들었다. 초기엔 두꺼운 울을 사용하다가 후기엔 로마의 시민들도 질이 좋은 얇은 울을 여러 가지 색상으로 염색하여 사용 했다. 북쪽의 추운 곳에서는 모피나 가죽을 이용하 기도 했다. 공개회의 장소나 운동경기장에 황제가 나타날 때에는 경의의 표시로 라케르나를 한쪽 어깨에만 두르고 피불라로 여몄다.
② 파에눌라(Paenala)
루실라 공주가 입고 있던 이 의복은 모든 계급에게 입혀진 커다란 케이프의 일종이다. 반원형의 천을 어깨에 두르고 앞에서 핀이나 훅(hook)으로 여미었다. 길이는 힙 아래나 또는 발목까지 오게 입었고 붉은 포도주색이나 갈색, 청색, 진한 보라색 등 어두운 색의 두꺼운 울로 만들었다.
③ 사굼(Sagum)
로마 공화정 시대에 군사들이 입었던 군복의 일종으로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으로 된 외투로서 그리스나 로마의 클라미스와 같이 수수한 색의 울로 만들었다.
(8)스트로피움 (Strophium)
간단한 형태의 운동복으로, 경기장에서 여자들이 입었다. 그 모양이 요즈음의 비키니 수영복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비키니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한 뜻으로 보아 브래지어와 팬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9) 머리장식
로마인의 머리모양은 그리스와 거의 유사한 느낌을 주는 형태로, 소박하고 정교한 아름다움을 발휘한다.
로마 남성들은 대부분 곱슬거리는 짧은 머리의 단순한 형태를 좋아했다. 그들은 머리숱이 적은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여 가발을 쓰기도 했고 제정 시대가 되자 수염을 기르는 것이 유행했고, 성직자들은 머리와 수염을 길게 길렀다. 또한 남성들도 향수를 사용하고 화장을 하는 등 청결과 몸치장을 중요시했다.
여성의 머리형은 시대에 따라 단순한 형에서 복잡한 형으로 다양하게 변화했다. 공화정 시대에는 앞가리마를 타고 양쪽 머리를 곱슬거리게 늘어뜨리거나 머리 전체를 짧게 컬하는 등 단순한 형이 주를 이루었다. 제정 시대에는 정교한 형으로 발전하여 앞머리는 작은 컬이 높게 솟아오르게 하고 뒷머리는 땋아서 늘어뜨리거나 위로 둥글게 말아 쌓아 올린 스타일이 많이 보인다. 여기에 리본, 화환, 금속세환, 장식망, 진주, 보석, 황금 등의 장식품으로 치장하기도 했다.
머리 빗는 일은 아침에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일로서 취급되었고 향유와 머리분을 사용하여 항상 향기가 나도록 했다. 로마인들도 그리스인과 같이 컬된 금발을 좌하여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로마인들은 모자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기후조건상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고 햇빛, 비 등을 피할 때나 여행 등 모자가 필요한 때에는 팔라나 팔리움을 끌어올려 쓰면 되었기 때문이다.
신부는 베일로 머리를 장식했는데, 밴드나 화환으로 고정시켜 어깨까지 내려뜨렸으며 베일의 색상은 가정의 신 베스타의 색인 주황색을 선호했다. 기독교의 신부는 흰색이나 붉은 보라색의 베일을 사용했는데, 베일 밑에는 순결함을 상징하는 헤어 밴드를 둘렀다.
이와 같은 머리장식의 다양함은, 로마 의복이 사회적 규제에 의해 비교정 고정된 것과 비교해 볼 때, 로마 여인들이 그들의 미적 감각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매우 중요시했으로 것으로 짐작된다.
(10) 신발
로마인의 신의 종류는 그리스와 비슷하나 정교함이 더해져 그리스 신발이 로마에 와서 완성된 느낌을 준다. 실크로 만든 슬리퍼에서 가죽을 소재로 한 하이 부츠(High boots)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했고 그 중 쌘들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엮는 끈의 모양이 그리스 때보다 더욱 복잡해져 로마 신발의 특징을 나타낸다. 정복사업이 계속됨에 따라 승전하고 돌아온 장군은 그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사자머리가 새겨진 부츠를 신기도 했다.
재료는 가죽 울 실크 등을 사용했고 귀족은 여기에 황금 은 보석으로 사치스럽게 장식했다. 또한 신발의 끈을 묶는 방법이나 장식 등의 정교함에 의해 사회적 신분을 표현했고, 창이 높은 신발은 배우나 귀족 중심으로 신겨지다가 점차 일반화되었다.
(11) 장신구
로마는 광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정복지로부터 다종다양한 보석류의 수입이 있었고, 사치스러운 사회풍조로 인해 장신구가 거의 필수품이 되었다. 특히 부인들은 그들의 몸 장식과 화장을 하는 것이 매일의 큰 일과였다. 각종의 보석, 진주, 상아, 금, 은 등을 소재로 한 목걸이, 귀고리, 반지, 팔찌 등은 세공술이 매우 정교하고 뛰어났음을 보여준다. 특히 멀리 인도나 중국에서부터 보석류를 수입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루실라 공주가 크고 화려한 귀걸이와 아름답고 정교한 목걸이, 여러 종류의 보석반지 등의 장신구로 치장을 했다. 로마 사람들은 여러 가지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귀걸이는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로 취급되어 크고 긴 형태로 그 길이가 8cm 정도 되는 것도 있었고, 보석으로는 다이아몬드, 오팔, 사파이어, 진주 그리고 금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반지 팔찌등 장신구를 착용할 때는 한꺼번에 여러 개의 장신구를 사용하였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영화 속의 장신구들은 옛 로마의 시대상이 아주 잘 반영된 부분 중에 하나인 것 같다.
4. 로마 복식의 특징
로마의 복식은 에트루리아와 그리스의 복식을 변화 발전시켰다. 즉, 그리스의 키톤은 스톨라로, 히마티온은 팔라나 팔리움으로 변화하였다.
로마 복식의 특징 중의 하나는 남성중심이라는 점이다. 로마에서 여성의 지위는 비록 문학을 하고 철학을 하긴 하였으나 별로 중요하지 않고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의복은 발달하지 않고 주로 남성의복이 발달하였다. 또한 로마사회는 신분계급이 뚜렷한 사회로 복식에도 자연적인 지위나 생활수준 등이 반영되어 의복 그 자체가 사회적인 의의를 지녔다. 특히 로마 토가중 가장 대표적인 의복인 토가는 착용방법과 색에 따라 신분 구별이 나타났다. 로마인들은 호화스러움과 사치스러움을 좋아하였고 부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회로서 이러한 사상들이 의복에도 반영되었다.
로마 복식은 권위나 권력을 나타내는 장대하고 화려한 미를 보이면서 사회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그리스의 요소를 모방하면서 현실성을 첨가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