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도(茅島)는 ‘모세의 기적’으로 널리 알려진 섬이다.
음력 3월 보름을 지난 사리 때면 ‘신비의 바닷길’ 이 열린다.
4월 개화기에 유채꽃 축제를 벌이며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보리와 고구마를 심던 비탈진 경작지를 유채밭으로 바꾸고 탐방로를 개설했다.
진도읍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초평항으로 이동하였다.
초평항(草坪港)은 서해 남부 앞바다의 지역 거점 어항이다.
모도행 배 타는 곳은 한쪽 구석에 있어 어렵게 찾아갔다.
매표소도, 대합실도 없이 간이선착장만 설치되어 있었다.
초평항에서 오전 9시에 출항하는 첫배에 승선하였다.
모세호는 2021년 5월 첫취항하였다.(12톤)
진도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뱃삯을 받지 않았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으로 돈통에 만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넣었다.
섬에 가까이 다가가니 섬 전체가 노오란 유채꽃밭으로 보였다.
'모도분교장'이라 씌인 안내판을 따라 마을 윗쪽으로 올라간다.
폐교된 의신초 모도분교장이 쓸쓸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2명의 학생과 2명의 교사가 있었다.
주인 잃은 킥보드가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다.
독서하는 소녀상은 떠나간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학교 옆으로 뽕할머니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성되었다.
호랑이를 피해 마을 사람들이 모도로 떠나게 되었다.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뽕할머니를 빼놓고 갔다.
뽕할머니는 용왕님께 다시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다.
음력 2월 그믐께 바닷길이 열려 그리운 가족과 만났으나 기진하여 그만 숨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바닷길 현장에 모여 풍어와 소원성취를 비는 기원제를 지냈다.
이러한 풍습이 축제로 승화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사당 안에는 뽕할머니 초상과 오색 제의가 걸려 있었다.
최근까지도 마을 주민들이 매년 정월 초하룻날 당제를 지냈다.
사당 옆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섬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면 당제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섬의 모양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이다.
고구마와 보리를 심던 구릉지가 모두 유채밭으로 변했다.
노랑은 고흐가 사랑한 색이다.
고흐에게 노랑이란 태양과 희망, 생명의 상징이었다.
외로움을 달래는 빛의 언어였다.
정신적 치유의 도구이자 절규의 색이었다.
누군가의 무덤을 유채꽃이 둘러싸고 있다.
바다를 떠돌던 망자의 혼이 유채꽃 향기에 취해 있다.
유채꽃밭
노오란 꽃 핀 것만 봐도
눈물 고였다.
너무나 순정적인
너무나 맹목적인
아, 열여섯 살짜리
달빛의 이슬의
안쓰렁누 발목이여
모가지여, 가슴이여...............................................나태주 <유채꽃밭 노오란> 전문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 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한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이파리도 되고 실팍한 줄기도 되고
아! 한목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정두리 <그대> 부분
붉은 지붕과 노오란 유채꽃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유채꽃밭의 반대 방향으로 상록수림이 우거져 있다.
유채꽃의 강렬한 향기에 주눅이 든 동백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나는 지금 고흐를 할래요
아를에 있는 ‘노란 집’에 가서
노란 목도리를 하고
노란 해바라기를 그리며
술을 마실래요
그러다가 밤이 되면 노랗게 취한
별이 되고 싶어요
나는 지금 고흐를 하고 있어요.......................................이생진 <고흐를 위한 퍼포먼스> 부분
섬의 끄트머리에 모도가족공원이 있다.
모도를 알리는 큰 글씨와 뽕할머니가족상이 있다.
'신비의 바닷길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주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모도가족공원에서는 금호도가 손에 잡힐듯이 보인다.
오후 12시 30분에 출항하는 모세호를 타고 섬을 떠나왔다.
온라인상에서 핫플이 된 모도상회는 문이 닫혀 있어서 지나쳤다.
작은 초평항에서 멋진 식당을 발견하였다.
'소담'이란 이름처럼 음식이 깔끔하고 먹음직스러웠다.
손님은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인부, 내국인이 반반이었다.
모도가 유명해진 것은 전 주한 프랑스 부대사였던 피에르 랑디 덕이다.
1974년 그가 진도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이 바닷길을 목격하였다.
본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목격한 ‘진도 신비의 바닷길’에 대해 한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이 기고문이 국내에 알려지자 1977년 국내 주요 언론이 취재에 나섰다.
일본의 NHK방송은 이 바닷길을 ‘세계 10대 기적’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진도군은 1998년 바닷길이 보이는 언덕에 공원을 만들었다
‘피에르 랑디 공원’으로 명명된 이 언덕에 그의 흉상도 세워졌다.
매년 축제를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 수십 만 명이 몰려와 축제를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