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에 순회 세자빈(順懷世子嬪) 윤씨(尹氏)가 졸(卒)하였다. 윤씨는 참판 윤옥(尹玉)의 딸로서 10세에 간택되어 덕빈(德嬪)에 책봉되었는데, 이듬해에 세자가 졸하였다. 그러나 인순 왕후(仁順王后)의 유명(遺命)으로 궁궐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상이 또 왕세자를 세우지 않았으므로 빈이 그대로 동궁(東宮)에 거처하였다. 상이 정성을 다해 그를 대우하였으며 여러 비빈(妃嬪)들도 모두 따르며 수학(受學)하였다. 빈의 성품이 지극히 정결(貞潔)하였는데 세자의 상사를 당한 뒤로부터 종신토록 언제나 상중에 있는 것처럼 하였으며 친척들의 궁궐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자의 영혼을 기원하는 뜻에서 불공(佛供)을 자주 드렸으나 상이 가엾게 여겨 금지시키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졸한 것이다. 시호를 공회(恭懷)라 하고 장차 세자원(世子園)에 부장(附葬)하려고 공사를 크게 일으켰는데, 갑자기 왜변(倭變)을 만나 미처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상이 피난을 가게 되었다. 이에 빈소(殯所)를 모시고 있던 관리 몇 사람이 후원(後苑)에 임시로 매장하려 하였으나 재실(梓室)이 무거워 옮길 수 없었는데, 조금 있다가 궁전에 불이 나는 바람에 관리들도 모두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이에 궁인(宮人)들이 그를 추모하고 비통해 하면서 말하기를 ‘빈이 살았을 적에 불교를 숭상하였는데, 우연히 화장(火葬)하게 되었으니 그것도 생전의 뜻에 부합된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