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체전 종합 우승
1976년 봄에 개최된 강원도민 체육대회에서 삼척 선수단이 종합 6위를 한데 대해 군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삼척군의 인구는 29만 3천여 명으로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제일 큰 군세(郡勢)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삼척군으로 부임하자 어느 유지는 나를 보고 ‘군수님은 군수가 아니라 삼척도지사’라고
한다.
사연인즉, 인구는 42만의 제주도(그 당시)보다 약간 적지만, 면적은 비등하며 경찰서가 제주도에 둘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삼척에도 삼척서, 장성서 둘이 있으니 제주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프라이드가 강한 삼척이 6위를 하였으니 충격을 받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내가 삼척에 부임하여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체육인들과 일대 분발하여 노력한 결과 이듬해에는
2위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전국 제1의 군세!’, ‘삼척도지사’ 등이 항상 머릿속에서 아른거린 나는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 체육회
임원과 경기단체장을 모아놓고 종합 2위를 한데 대한 노고를 치하하면서 내년에는 종합우승을 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누구하나 동조하는 기색이 없다. 해마다 종합우승은 춘천시가 독차지하고, 어쩌다 원주나 강릉이
대회를 주관 개최할 때에는 개최지 시에서 종합우승을 한 예는 있지만, 삼척이 주관도 하지 않으면서
종합우승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도민체전은 일반부, 고등부, 대학부로 나누어 경기를 한다. 일반부는 춘천에 밑질 것이 없다.
그러나 고등부는 다르다. 춘천에는 유봉여고의 배구. 성수고교의 탁구 등 국가대표급 팀이 많이 있지만,
삼척은 그렇지 못하다. 더군다나 대학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춘천에는 종합대학인 강원대학을 비롯하여
여러 대학이 있지만 삼척에는 겨우 삼척공전이 있으니 어찌 춘천과 겨룰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체전의 기록이 말을 한다. 올해 도민체전에서 춘천은 종합점수 24,077 점으로 우승한데 비해
삼척은 17,154점을 얻는데 그쳤으니 24,000 대 17,000의 차이를 어찌 메울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상태에서 춘천과 겨룬다는 것은 망발이고 그야말로 이란격석(以卵擊石)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나폴레옹의 일화가 생각나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종합우승의 첫발을 내딛었다.
자금확보, 선수발굴, 강화훈련, 작전계획, 정신무장 등 각 분야에 걸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추진해 나갔다. 체육이 군정의 전부인양 모든 행정역량을 여기에 집중시켰다.
종합우승 고지에 오르는 등반(登攀) 길은 너무나 험하고 괴로운 것이었지만, 그 이야기는 모두 생략하고
한두 가지만 적기로 한다.
모든 것이 그런 것처럼 솔선수범이 제일이다. 군수라고 뒷전에서 호령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도 무엇인가 한 종목 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활 쏘는 것을 이때에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집궁(執弓)한지 반년 남짓하여 웬만큼 쏘게 되자 궁도 선수로 선발되어 같이 출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선수들의 사기진작에 큰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또, 한 가지는 경기에 이기고 심판에 져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가보니 각 경기장마다 심판
시비로 말이 아니었다.
특히 투기 종목의 경우는 더욱 심했다.
그래서 100㎏ 거구의 P씨 등 세 사람을 가외로 선발해서 동행시켰다. 춘천실내체육관에서 벌어지는 권투와 태권도 선수들 틈에 버티고 앉아서 편파 판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은연 중 압력을 넣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매일같이 각 경기장을 순회하며 우리 선수들을 격려하고, 종목별 점수 체크를 해 본다. 춘천과 우리 삼척의 종합점수는 막상막하였다.
경기일정 마지막 날, 모든 경기가 끝이 나고 종합경기장에서는 폐회식 직전의 경기로 일반부 축구 결승전
강릉 대 속초 팀이 대전을 하고 있었지만, 그 승패는 춘천이나 삼척에는 하등 영향을 마치지 않는다.
나는 춘천 삼척의 종합점수를 세밀히 재점검을 해 보았다. 우리 삼척이 근소한 차로 춘천을 앞서지 않는가?
기적과 같은 종합우승!
그 감격과 환희에 대해서 나의 무딘 붓으로는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다만 귀향 후 선수단 환영대회에서 군민 대표가 준 감사패를 내가 받았던 그 어떤 표창장이나 감사패를
제쳐놓고, 가장 소중한 패로서 두고두고 간직하려 한다는 것으로 벅찬 감회를 대신한다. (강원행우)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참 대단하신 지휘력 이십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장수의 지휘력이 제일 중요한거 아니겠습니까?!
나는 1968년 2월 인제군수님의 초청과 군 체육회협조로 인제읍.원통리. 기린(현리) 3곳에 태권도를 장려키위해
가르친 경험이있는데 1년후에 인제군 생긴이래 전국체전 강원도 예선에서 태권도 금메달 2개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1개. 동메달1개를 획득하여 읍내를 카페레이드 한일이 생각나네요. 당시 내가 가르쳤던 학생중에서 다른
종목으로 전환 유명해진 선수가 있는데.빙상 스피드 국가대표였던 이영하(現 한채대 교수)가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 이영허 선수라면 저도 기억이 나는것 같습니다.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