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1>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언니를 데리고 정신과병원을 찾아온 부인이 있었다. 언니의 증세는 수년 전부터 보였다. 주변사람들은 언니가 ‘귀신 들렸다’고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목사님을 비롯해 신령하다는 분들이 와서 귀신을 쫓아낸다며 ‘축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언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심각한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사례 2> 정신분열 증세를 보인 고등학교 여학생이 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시다. 아버지는 딸이 귀신들림으로 생각하여 축사기도만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으로 의학을 주셨으니 기도도 하면서 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며 병원엘 방문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유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병원을 통해 약만 타 먹이면서 통원치료를 하겠다고 했다. 의사는 다시 입원을 권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일반은총을 언급했지만, 전문의의 말보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결국 행동하고 말았다.
<사례 3> 한 장로님의 딸이 정신분열 증세를 나타냈다. 장로님은 책방의 서적들을 탐독했다. 소위 ‘내적 치유’를 다룬 책들이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대로 모든 방법을 따라했다. 그러나 증세는 더욱 나빠졌다. 장로님은 딸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증세는 빠르게 호전되었다.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분들이 주변에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그들은 단순한 정신병에 걸린 것인가 아니면 귀신들림에 빠져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것인가? 그것에 따라 그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된다.
<정신병인가 귀신들림인가?>(생명의말씀사, 2006)의 저자 김진 씨(정신과 전문의)는 귀신들린 것 같은 현상의 거의 대부분이 ‘정신병’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병원, 보라매병원, 축령복음병원 등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는 김 씨는 더욱이 미국 칼빈(Cavin)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수학하기도 했다. 의학과 신학을 모두 공부한 기독교인 의사인 셈이다.
김 씨는 위 책에서 ‘정신이상 증세’를 정신병에 의한 것과 귀신들림에 의한 것으로 구분을 했다. 귀신들림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실제 만난 대부분의 환자들은 정신병에 의한 증세들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정신병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를 귀신들림으로 착각해 환자를 더욱 괴롭게 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이다. 전문의를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귀신을 쫓아낸다며 갖가지 신비스러운, 무속적, 이단적인 행위들을 행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신이상의 증상을 보여 빨리 입원치료를 받게 하라는 강력한 권유를 멀리하며 기도원과 신유집회 그리고 축사의 은사가 있다는 소위 은사자들을 찾아다니다가, 호전되기는커녕 사람이 심하게 망가지는 것을 경험하고 지칠 대로 지쳐, 아주 심하게 악화된 상태에서 결국 마지막으로 정신병원으로 인도되는 환자들을 대하면서 저는 깊은 답답함 가운데 슬픈 아픔과 분노를 경험하여 왔습니다”(p.142).
저자는 그러한 일들의 중심에 목회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목회자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너무도 쉽게 ‘귀신’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들이 대부분 교회의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일어나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이 문제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신학(적 사고)의 수준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의 수준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p.143).
저자의 결론은 복잡하지 않다. 정신병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반드시 전문의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귀신들림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이는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정신병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란 무엇인가? 대체로 ‘정신분열증’으로 나타난다. 이는 환각(환청, 환시 등), 망상, 부적절한 감정 등의 증세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이 가끔 나타나다가 갈수록 자주 나타나면 증세가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다. 예를 들어 1달에 1번꼴로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듣는 환청 현상이 나타났다가, 이것이 1주일에 한 번, 그리고 매일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때때로 ‘누군가 말을 한다’가 ‘하나님께서 말을 한다’는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쉽게 ‘계시’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환청의 일부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질병’인 것이다.
정신병이란,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기보다는 뇌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는 게 더 옳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신 이상을 일으키는 뇌병’이라고 표현한다. 선천성 뇌구조의 이상이 있든지,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 뇌의 변형 등 다양한 요인으로 나타나는 ‘뇌에 생긴 병’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이는 적절한 약물치료로 상당부분 호전될 수 있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경우도 정신병에 해당된다. 귀신들림이 아니라는 뜻이다. * 다중인격장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다중 인격체로 보여질 때가 있다.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내며, 평소와 다른 행동, 다른 감정을 나타낼 경우다. 사람들은 흔히 귀신이 들어가 그렇게 다른 인격체로 행한다고 말하지만, 다중인격장애라는 정신병 증세일 수가 있다.
* 피암시적 상태: 누군가로부터 암시를 받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다. 신비적 체험이라며 흥분하기도 한다. 신흥종교, 이단의 무리, 신비주의 단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러한 비암시적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추앙하기도 한다. 상당 부분은 그것도 정신병의 일부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귀신들림’을 어떻게 구분해 낼 수 있을까? 저자는 다음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1. 초능력 동반이다. 정신병을 앓는 사람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결코 보일 수 없다. 예를 들어 15kg을 들던 사람이 정신병에 의해 30kg은 들 수는 있다. 그것도 인간의 한계 범위 안에서다. 평상시의 무게에 10배를 들 수는 없다. 귀신들린 사람은 다르다. 저자는 쇠사슬을 끊음(막 5:1-20), 배가된 완력(행 19:16) 등의 성경의 예를 들었다.
2. 영적으로 사람을 알아 보는 경우다. 귀신들린 이가 예수님, 사도바울을 알아본 예를 들었다(마 8:28-34 등).
3. 약물에 대한 반응이다. 귀신들린 경우에는 약물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약물에 반응을 보이면 그것은 귀신들림이 아니라, 정신병에 해당된다. 정신병은 대개 1~2년 잠복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귀신들림은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저자는 본 책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먼저 신학교에서 최소 2주 이상의 정신병원 실습시간을 넣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정신병은 귀신들림이 아니라 병이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눈으로 보고 경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귀신들림의 오해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다고 본다.
다음은 교회에서 상담을 하는 교역자들이 정신이상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판단을 중지해주길 바라고 있다. ‘귀신들림’이라는 딱지를 너무 쉽게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 진단이 한 번 내려지면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귀신들림이라는 이유로 꼬리표가 붙은 정신과 환자가 병원을 통해 회복된 뒤, 환자와 보호자가 원래의 교회로 돌아가지 않은 경우를 저자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신이상을 귀신들림으로 잘못 알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목회자를 신뢰할 수 없다’며 신앙 자체를 거부한 이들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에게 귀신들렸다는 말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저자는 귀신들림에 의한 정신이상 증세를 인정한다. 성경의 예를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껏 수천 명의 환자를 진찰해 오는 동안 그러한 환자를 만난 적은 없다. 그만큼 상당 수의 정신이상 증세는 귀신들림보다는 뇌에 이상이 생긴 병에 해당된다는 말이다. 이는 병원에서 2-6개월 치료를 받으면 어렵지 않게 호전될 수 있는 것이다.
목회자를 비롯해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한 번쯤은 꼭 필독해 보기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