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를 준 제약회사만이 아니라 리베이트를 받는 의사도 처벌하는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후 최초로 적발된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의 판결이 최근 내려졌다. 재판부는 18명의 의사들에게 800~3,000만원의 벌금형 및 4~12개월 간 의사면허정지라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정부가 ‘의약품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가파르게 증가하는 약제비의 문제가 있다. 한국의 의료비 지출 중 약을 구입하는데 사용되는 약제비 지출 비중은 과도하게 높은 편이다. 약제비를 절감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높은 약가에 대한 가격 통제’와 ‘약 사용량에 대한 통제’가 있는데 리베이트 근절은 약가에 대한 통제에 해당한다. 현재 약가는 리베이트가 포함된 가격이며 리베이트가 없어지면 약가가 인하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의사와 제약회사의 ‘검은 커넥션’만 해결되면 높은 약제비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리베이트 사건 이후 이러한 인식과 의사와 제약회사에 대한 비난이 더욱 커졌는데, 이를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리베이트는 약제비가 증가한 원인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문제는 정부가 추진하는 약제비 통제 정책의 한계와 실패를 은폐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초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
약값이 높은 첫번째 이유는 초국적 제약회사의 신약에 대한 특허권에 있다. 제약회사는 신약을 개발할 경우 20년간 독점적인 판매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특허권을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 의해 부여 받게 된다. 이러한 독점적인 권리를 이용해 약값을 높게 관철시켜온 것이다.
초국적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 그 대표적인 그 예이다. 최근 특허가 만료되었지만 만료되기 전 글리벡의 약값은 한 알에 25,000원으로 하루 4~8알을 투여해야 하는 환자들은 결국 한 달에 글리벡의 약값만 300-600만원을 지출해야 했다.
신약을 하나 개발하기 위해서 많은 연구 개발 비용이 든다고 하지만 신약을 판매하기까지 드는 비용에서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비용은 11%이고 오히려 마케팅 비용이 27%로 더 높다. 또 신약개발을 위한 많은 기초의학 연구는 공적재원으로 지원된다.
가장 잘 팔리는 상위 5개 의약품 개발을 위한 기초, 응용과학 부문의 연구에 든 비용의 85%가 세금으로 지원되었다. 신약은 민중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도, 특허권으로 인한 의약품의 독점적인 판매는 이렇게 높은 약가를 형성시키며 민중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권을 저해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사용량 통제
높은 가격으로 형성된 신약은 그 사용량이 통제되지 못하면서 더욱 약제비를 상승시켰다. 2000년 정부는 불필요한 의약품의 소비를 감소시켜 약제비 절감을 한다는 명목으로 의약분업을 실시했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의약분업 이후에도 약제비 절감 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는 고가약에 대한 처방 비중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의약분업 이후 리베이트 등 음성적 마진을 얻을 수 있었던 제네릭 의약품 처방이 줄어들고 대신 마케팅으로 환자들에게 잘 알려진 오리지널 의약품 처방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약제비 규제 촉구 기자회견 자료사진(사진=참여연대)
2006년 말, 신약의 사용량에 대한 통제를 위해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 채택되었지만 그 역시 그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못하고 있다. 2012년 감사원의 자료에 의하면 신약의 약가는 ‘사용량-약가 연동제’에 의해 매년 재협상 되는데 예상 사용량보다 실제 사용량이 30%이상 증가시 약가를 최대 10% 인하하게 된다.
하지만 제약회사들은 약가인하를 피하기 위해 예상사용량을 부풀리는 경향이 있는데 건강보험공단은 이에 대한 기준이 없다. 사용량이 아무리 많이 증가하여도 10%내에서만 약가를 줄이도록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실제로 예상사용량보다 실제사용량이 3220% 증가했음에도 9.4%만 약가인하 된 경우도 있었다. 의약분업의 파생효과와 사용량 통제 정책이 미흡함으로 결국 제약회사들은 높은 이윤을 얻고 있고 이는 약제비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복제약의 높은 가격과 리베이트의 악순환
높은 약가의 또 다른 원인은 높은 복제약가에 있다. 신약은 특허가 만료되는 시점에서부터 복제약과 경쟁을 하게 된다. 오리지널약과 같은 성분의 같은 효능을 내는 복제약은 오리지널약과 가격경쟁을 통해 전체 약가를 인하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복제약은 오리지널약 대비 86% 수준으로 OECD평균 20-30%에 비해 현저히 높은 상한금액을 보장받고 있어 전체 약가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은 정부의 약가정책에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2007년 선별등재제도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계단식 약가제도를 통해 국내 제약사의 복제약 개발을 독려했다. 이러한 계단식 복제약가책정 방식은 복제약 중 최초 등재 약의 경우 높은 약가(오리지널약 대비 86%)를 상한가로 책정해 주었다.
이는 국내 제약회사들이 높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최초 복제약 개발을 위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었고 일찍 출시된 복제약을 통해 초과이득을 영구적으로 보장해 주었다. 실제로 국내 제약회사의 수익률은 80%를 웃돈다. 100원짜리 복제약의 원가가 20원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높은 복제약가가 유지되는 것은 실거래가에 대한 통제가 부재한 것도 한 몫 하는데 보험등재의약품 청구현황을 살펴볼 경우, 품목별 실거래가격이 평균적으로 상한가의 99%를 초과하고 있어 상한가가 곧 실거래가로 통용되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높은 복제약가로 인한 초과이윤은 리베이트의 재원이 되고 시장확보를 위해 리베이트가 성행하게 되며 다시 확보된 시장으로 이윤을 얻는 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핵심을 비켜간 정부의 약제비 대책
정부는 작년부터 약가를 일괄적으로 인하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복제약 진입 후 1년이 지나면 오리지널약과 복제약을 일괄적으로 특허만료 전 오리지널 약가의 53.55%로 인하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고가의 약임에도 저가의약품 보호대상에 선정되면서 일괄인하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전체 의약품의 52.9%에 해당하는 7,308개 품목이 일괄인하에서 제외되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초국적 제약회사가 특허를 통해 독점적 권한을 가지는 신약의 약가에 대한 협상 정책은 미비하다. 신약에 대한 약가의 통제가 없을 시에는 신약의 약가에 영향을 받는 복제약의 가격 역시 통제되지 않을 것이다.
한미FTA 체결에 따라 2015년 발효되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 제도’는 의약품 가격 결정시 초국적 제약회사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항들을 담고 있어 약가에 대한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해 약제비를 상승시킬 것이다.
정부는 제도의 이행을 강력히 추진 중이며 올해 10월 초에는 ‘의약품 허가특허 관리과’를 신설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국민들에게는 높은 약가에 대해 의사를 탓하면서 한편으로 약가의 통제를 더욱 어렵게 할 제도를 추진 중인 정부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정부는 한미FTA를 추진하고, 제약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명목 하에 제약자본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제약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한편 높은 의료비에 대한 불만은 누더기식으로 대책을 내고 있다. 진정 약제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제실시 등 신약 특허에 대한 통제를 포괄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민중의 의약품 접근권이라는 가치가 약제비 절감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