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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의 기쁘신 뜻과 사랑의 은혜로 믿음의 순종을 이룸
우리는 순수한, 신앙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진리에 대한, 실재성(實在性:현실적 감각과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반도 믿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을 따라 실행에 옮길 것이다. 온 세계에 이 시대를 위한 징조들이, 성취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은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맑고 뚜렷하며 분명한, 경고들을 전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우리는 우리들이 그 아래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할, 하나님께서 정하신 조건들을 연구해야 하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1SM 93.1)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희생의 효능을 전적으로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빌2:13)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고 나아갈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언제나 이러한 신앙관[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믿음]을, 뚜렷하게 유지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대의 투쟁적인 정신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창조주의 은혜로 베푸시는 진리]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약3:17).(1SM 182.4) 이 이적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대신에, 오히려 그 이적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분노로 가득 찼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자비의 행동이, 안식일에 합당한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일이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우리는 어느 편을 믿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요15:10)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확실히 안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협력하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도록, 계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능들을 주시며,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므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빌2:13참조).(1SM 314.1) 그러나 죄를 이기려는 저들 자신의 결정적인 노력이 없이, 요행을 따라 품성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자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예수님만 바라본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주님께 나오는 모든 영혼들을, 모두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오로지 우리들의 옛 성품이 다시 지배권을 얻어, 사단이 우리들을 그의 포로가 될 올무들을 펴는 일이다. 우리들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므로(빌2:13참고) 우리들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들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역 안에서, 거룩하심같이 우리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우리들의 제한된 능력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우리들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우리들은 진리와 사랑과 거룩한 품성의 탁월성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밀초[밀납 양초]로 인장[도장]을 찍는 것처럼, 영혼은 하나님의 영의 인을 받게 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된다.(1SM 336.2) 율법을 지킴으로써, 자기 자신의 행위로 천국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자는, 온전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순종함이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수고가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행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행하셔야만 한다.
만약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만을 가지고,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안에, 기뻐할 수 있는 어떤 요소를 갖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능력만을 가지고, 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은 ‘가인’의 제물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가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기심으로 부패하여진 것과 죄 뿐이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하여진 것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천국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에, 그 영혼은 향상하게 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들은 힘에서 힘을 얻게 되며, 승리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완전한 구원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1SM 364.1) 사랑의 수고는, 믿음의 활동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의 신앙은, 꾸준한 활동을 의미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하셨다. 우리들은 선한 행실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하며, 선한 행실을 유지하도록 조심해야 한다. 충성된 증인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계2:2)라고 말씀하신다.(2SM 20.4)
인간의 정신에는, 완고성[완악성정]을 드러내는 맹목적[자기의 무턱 된 행동]인 데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불신교만]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마13:15)고 말씀하셨다.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업은, 우리 세상에서 추진시켜야 할 가장 중대한 사업이다. 많은 사람들은 저들의 관심이, 그리스도의 충성된 병사들에게 있는 것보다, 원수의 부하들에게 더욱 크게 있으므로, 이 중대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저들은 인간이 거룩한 대리자와, 협력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생애의 모든 계획과 목적을 따라, 우리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나타내 보이신 거룩한 계획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분의, “나라이 임 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고 있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세우실 근본적인 방법들을 거부하게 된다.(2SM 135.3)
예수님 안에서 잠자고 있는, 사랑하는 자들의 경우를 위하여, 사도 ‘요한’의 말씀이 얼마나 적절한가. 주님께서는 저들을 사랑하셨으며, 저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말들과, 사랑의 수고들은 기억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반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바친 저들의 열렬하고 전적인 헌신은,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는 모본을 남겨 놓았는데, 이는 성령께서 저들 안에 역사하사,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저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빌2:13참조).(2SM 270.2) 하나님의 섭리[창조의 사랑과 통치]에 일치하게, 자연계에 속한 방편[하나님 방식]들을 사용할 때, 초자연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다.
우리들은 기적을 바라지만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단순한 치료제들을 지시하신다. 우리는 온 세상에 무서운 세력으로 퍼지고 있는바,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시91:6)에서, 보호해 달라고 간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건강과 생명의 법칙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 이후에[지성이면 감천의 은혜] 우리는, 건강과 체력을 위하여 계속해서 믿음으로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신체의 건강을, 보존케 하는 음식물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그분께서 대신 해주시겠다는 격려의 말씀을 해주신 적이 없다. 자연계의 법칙들[하나님의 거룩하신 우주법칙]을 준수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등한[무관심라고 소흘]히 해서는 안 된다.
[‘소돔’의 멸망 중의 탈출]‘롯’은 원치 않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길을 행하였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악한 자들과 사귀어왔으므로, 자기의 아내가 영원한 소금 기둥으로 들판에 서게 되는 것을, 보기까지 자기의 위기를 깨달을 수 없었다.(2SM 354.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력을 주셨으므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자유의지]할 수 있고,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는 있다. 그러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우리 안에서 역사[성령의 인도]하실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온 성격이, 그리스도의 지배[성령을 통한 다스림]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YHH 171.3) 우리를 위한 희생이 완전하였던 것처럼, 죄의 더러움에서 회복되는 것도 완전하여야 한다. 하나의 악행도 하나님의 율법은, 면제해 주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불의도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복음의 윤리[법규]는 하나님의 품성의 완전성만을, 표준으로 인정한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율법의 모든 교훈을 완전히 성취하였다.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요15:10) 지켰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생애는, 순종과 봉사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다. 하나님께서만이, 심령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2:13)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명령을 받고 있다.(YHH 336.3)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인물을 선택하는 데도, 교회를 설립할 때와 똑같은 하나님의 계획이 나타나 보인다. 하늘의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위 있고 부요하고 백성의 지도자로 자격을 갖춘, 그러한 큰 인물들을 사용하지 아니하셨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우월감[선택받은 지위] 때문에 교만하고, 자부심이 강하였으므로 자기 동포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거나, 겸손하신 ‘나사렛’ 사람과 함께 협력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무식하고 수고하기를 좋아하는 ‘갈릴리’의 어부[성실한 뱃사람]들에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는 부르심이 주어졌다. 그 제자들은 겸손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당시에 횡행[마음대로 신앙]하던 거짓교훈의 영향을 비교적 적게 받은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저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시킬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 사실은, 위대한 종교개혁 당시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도적 역할을 한 개혁자들은 비천한 가문의 출신들로서, 당시에 계급의식에서 오는 교만과 미신적 감화[기만적 교리]와, 성직자의 이기적 책략[직분의 우월감 유지]에서 오는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사람들이었다.
큰 공적[선교사업]을 성취하기 위하여, 비천[천박]한 인재를 쓰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러므로 영광은 사람들에게 돌릴 것이 아니고, 그들을 통하여 그분의 기쁘신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질 것이었다.(GC 171.1)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내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멸망의 세상적 사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것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성령 통한 인도하심]하다.
사람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될 때,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5:57)고 부르짖게 된다.(GC 469.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슬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밤과 같은 어두움의 거짓교리 중에서 진리의 밝은 빛]들로 나타내며”(빌 2:12-15).(1T 339.4)
하나님께서 일하는 날로 사람에게 주신 엿새 동안에, 세속적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활동하지 않고, 그분께서 자신을 위하여 남겨두신 거룩하고 신성한 시간을, 침해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넷째계명을 범하게 할 만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업무는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는, 안식일에도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금전상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넷째계명의 조항을 범하면 우리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이 되고, 계명의 모든 조항을 범하는 죄를 짓게 된다.
우리가 한 조항을 범하면, 모두 범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재산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여호와의 분명한 계명을 범한다면,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 경계를 정해야 할 것인가. 작은 것을 범하고 그것이 우리 편에 있어서, 별반 특별한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양심은 굳어지고, 감각은 마비되어 마침내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꽤 많은 양의 일을 하면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여전히 자부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표준[절대적 명령위반]에 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모두 범하고 있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이 점에 있어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매우 세밀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주님의 시간을 조금 침범함으로, 약간의 시간을 벌거나 스스로 유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은 조만간에 손실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그들을 축복하실 수 없다. 그들 때문에 그분의 이름이 멸시(蔑視:얕잡아 깔보게]되고, 그분의 율법이 가볍게 평가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임할 것이며, 그들은 유익보다는 10배, 20배의 손실을 당할 것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 ...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말3:8,9)느니라.(1T 531.2)
그러나 그대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비록 아무것도 그대에게 진실하고 참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믿고자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대 자신을 이처럼 부러워할 것이 없는 위치에, 이르게 한 것이 그대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하나님을 믿는 그대의 믿음과 형제들을 신뢰하는, 그대의 신임을 회복해야 한다. 그대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에, 굴복시키는 것은 그대를 위해서이다. 그대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소유하셔서 그대 안에서,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실 것이다. 그대의 전체적인 본성은 그때에[회개와 믿음의 순종과 헌신복종],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성령 사역] 아래 놓이게 되고, 그대의 생각은 그분께 복종[진실로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그대의 충동과 그대의 정서를 지배[자아방종]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의지를 지배[믿음의 사랑과 은혜로 순종]할 수 있고, 그대의 생애에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모든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능력과 연합할 수 있다. 그대는 그대를 하나님의 능력에 굳게 붙들어 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생애, 산 믿음의 새 생애가 그대에게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의지는, 사단이 그대를 사로잡아 파멸[멸망]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는 동료들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절대적 구원능력의 은혜]와 협력해야 한다.(5T 513.4)
무서운 하나님의 분노의 책망이 그분께 불 충성하기로 고집해 온, 모든 자들에게 내릴 날이 올 것이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의로써 말씀하시고 무서운 일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의, 분노 아래 놓일 자들 사이에 속할 필요가 없다. 지금은 하나님의 구원의 날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비취는 빛은, 지금 분명하고 밝은 빛으로 빛나고 있으며, 우리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드러내 주고 있다. 내가 그대 앞에 제시해 준 약속[구속의 언약]들을 읽을 때, 그것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과 자비임을 기억하라. 무한한 사랑을 가진 위대한 마음은, 끝없는 긍휼로써 죄인을 이끌고[부름에 응하면, 영생의 길로 끝까지 인도함이]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7). 두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이, 그대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기만 하라. 그분은 사람 안에 그분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를 바라신다. 그대가 고백과 회개로써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면, 그분은 자비와 용서로써 그대에게로 가까이 오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빚지고 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의 주가 되신다. 그대가 두렵고 떨림으로, 그대 자신의 구원을 이루게 될 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2:13)하신다.(5T 634.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3-7).(5T 729.3)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그들의 거룩함이다. 위를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우리의 길을 재촉할 때, 모든 능력은 최선의 건강상태로 유지되고, 충실한 봉사를 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들은, 한계점[인간능력의 마지막 죽음의 끝 지점]에 이르기까지 발휘(發揮:말씀에 굴복하고 혼신의 노력실천]되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10:27). 사람은 스스로 이 일을 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인간은 어떤 부분[신뢰의 믿음으로 순종과 헌신의 노력]을 담당해야 하는가?
하나님만이, 마음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나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빌2:13,12).(8T 312.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본, 우리의 영감,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하나님께서는 건축자의 주[새 하늘과 새 땅의 모든 능력의 주체]가 되시지만, 사람은 한 부분만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하나님과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주님의 뜻대로, 함께 협력하는 구원의 주체]들이”(고전3:9)다.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말을 결코 잊지 말라. 이적을 행하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은, 새 마음, 더 고상한 생애, 더 거룩한 열성을 사람에게 창조해 주는 데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새 마음을 너희에게”(겔36:2)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인간의 갱생(更生:영육의 새로운 변화상태), 이루어질 수 있는 최대의 이적[기적-기이한 행적]이 아닌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는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없겠는가?(9T 152.1)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자신의 구원을 위함]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함께 구원받는 인간 동료들과 함께]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5-11)
두개의 노(櫓:배 저어가는 기구)— 믿음과 행함— 만일 우리가 우리 몫을 이행함에 있어서, 그리고 그분과 협력함에 있어서 성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기쁘신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그분은 우리를 통하여 일할 수 없으시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우리는 일을 해야 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대가 해야 할 일은, 믿는 것이 전부이다”고 자주 반복하여, 주장하는 말에 속지 말자. 믿음과 행함은 우리가 불신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균일하게 사용해야 할 두 개[2個]의 노와 같은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2:17). 그리스도인은, 생각하는 사람이요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견고하게 뿌리를 뻗고 있다. 그는 믿음과 선행으로, 자기의 영성을 강하고 튼튼하게 지키게 된다. 그리고 그의 영적 힘[성령의 능력]은,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자 힘쓸 때 증가한다.(WM 315.4)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의 내재[성령임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것을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될 때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고 부르짖게 된다.(RC 48.6) 필요한 단계를 거치지 않고, 그대 속에 어떤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말라.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겸비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데, 이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머뭇거리지 말고 그대의 생명을 위하여, 하나님께 피하라... (RC 108.2)
우리가 성령을 부릴 수 없고, 성령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 속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빌2:13) 역사하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자 하므로, 하늘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 성령은 오직 겸손히 하나님께 나가 그분의 지도하심과, 은혜를 받고자 기다리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이 약속된 축복은, 이와 함께 다른 모든 축복들도 따라서 임하게 한다. 이 축복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주시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각자의 받을 용량(容量:마음의 그릇을 깨끗하게 씻은 크기]에 따라 주려고 예비하고 계신다.(RC 131.3)
내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나의 모든 것이 그분을 갈망(渴望:목마른 자의 심령으로 열망) 한다. 오, 그분의 사랑스런 형상이, 완전하게 반사[복사되어 표출]되기를 원한다! 그분께 전체를 드리기를 원한다! 자아가 죽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는 모든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온전한 구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사신[내 마음의 성전에 좌정]것이라”(갈2:20)고 말할 수 있는 주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내 자신을 숨길 수 있다.
영광은 하나님께 있다. 나는 나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진 것을 안다.(RC 350.5) 사람들의 마음을 취급함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하라. 그대의 견습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회사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라.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우리는 그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협력하기를 원합니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함으로써 두렵고 떨림으로, 그대들의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하고 기쁘신 뜻을, 그대들 안에서 행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습생들로 자신들이 정당한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할 어떤 일도 하지 말라.
이러한 생각은 마음을 좀먹으며, 그러한 인상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PM 94.3) 다른 사람들을 모방할 때 전적인 실패자가 됨— 다른 사람의 품성을 모방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전적으로 실패자가 될 것이다.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달란트들을,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장사하기 위하여, 스스로 하나님을 쳐다보아야 한다. 형제여, 그 일은 그대를 위하여 다른 사람 속에서가 아닌, 바로 그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대는 개인적인 경험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다른 사람이 아닌, 그대 자신이 향유(享有:영생복락의 유쾌함의 영광을 가지게)할 것이다.(2MCP 427.1)
신령한 에너지와 묶어 주는 연결 고리—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들이다. 이것은 주님의 현명한 조치요 계획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과 신령한 에너지[성령역사]와의 협동은, 인간을 서로서로 묶어주고 하나님과 묶어 주는, 연결고리[심판받아 죽어 소멸될 죄인이, 창조주의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사랑의 은혜로, 하나 되어 예속됨으로써 구원받는 것]이다.
사도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기능들을 갖고 일해야 한다. 그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2MCP 6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