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7: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제 아비나 어미에게...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 이 구절은 10절에서 언급된 계명의 내용과 연결하여 생각해야 한다.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모두가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으로 이해했을 때, 11절의 논증을 통해 그들이 모세가 준 계명을 어겼음이 명백함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 돌아갈 대가는 10절에서 언급한바처럼 반드시 죽게 될 것 뿐이다.
[막 7: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 여기서 먼저 '폐하며'(아퀴룬테스)란 9절에 언급된 '저버리다'는 뜻보다 그 의미가 더욱 강하며 '파기하다'. '아예 무시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실로 예수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는 행위가 하나님의 말씀을 파기시키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말은 그들의 언행에 대한 결정적 모순을 지적하는 말인데, 즉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충성을 위해 만들어내고 지킨 율법적 관습이 결과적으로는 10-12절에서 논증된 바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무효화하여 파기시킨 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이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깨닫지 뭇했고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 대한 사랑에 있음을 망각하여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구실로 사람을 희생시키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다시 분명해지는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람에 대한 사랑.봉사와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수가 율법주의자들의 언행을 비판한 것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 였다.
오늘날에도 교회 전통이나 교리 그리고 권위에 집착하여 교회가 실천해야 할 이웃 사랑, 사람에대한 봉사와 세상에 대한 봉사를 소홀히 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는 잘못을 범하는 교회들은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위선되고 거짓된 종교 형태가 단지 부모 공경에 관한 제 5계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고 밝히신다.
특히 '행하느니라'는 말은 능동태 현재 시상으로서 그들의 행동이 습성화되고 중복되고 있음을, 즉 그들의 그릇된 신앙 행위가 거듭 노출되고 있음을 지적해 주고 있다.
[막 7: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 여기서 이야기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즉 1-13절까지는 제자들의 식사 현장에 나타난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예수의 논박을 다루었으나 여기서부터는 더이상 바리새인들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수는 다시 청중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한편 이 이야기의 주제는 그 내용으로 볼 때 정결에 관한 주제가 계속되고 있으므로 5절에 제시된 바리새인들의 질문이 15절에 직접 답변되어짐) 연속적인 이야기로 보아도 좋다.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 이 말은 예언자적 발언으로서 각성을 촉구하는 호소라고 할 수 있다.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서 논증된 바처럼 사람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어리석음으로부터 깨어나 올바른 신앙 실천을 촉구하는 호소문이다. 더욱이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예고문일 수도있다.
즉 이제까지는 잘못된 관습에 대한 비판이었지만 지금부터는 그 비판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는 암시를 주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청중들을 불러모으고 자신의 이야기 곧 내적 성결이라는 대주제를 설파하기 위해 경청하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막 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여기서 언급되는 두 절은 원래 한 절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즉 NIV에서는 16절이없고 15절의 하반부에 16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 16절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본에는 16절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필사자들이 4:9이나 4:23의 모형에 따라 인용하여 첨가시킨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공동 번역에서는 전자의것을 선택하여 16절을 생략하고 16절의 내용은 15절에 통합시키고 주를 달아 후자에서 언급한 첨가문을 소개한다. 한편 여기서는 1-23절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참으로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표현기법은 물질적 부정과 도덕적 부정을 날카롭게 대조시키는 대구법형태로서 마가 특유의 어휘력이 구사되고 있다 즉 사람밖에 있는 어떤 것도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것과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심성을 대변하는 말, 생각, 의지, 영적 반응 등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 날카롭게 대비되면서 딴절에서 다시 언급되는 것처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참으로 부정한 것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표현은 종교 지도자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던 정결 예식을 모조리 부인하는 결과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부정한 음식, 부정한 물건, 또는 부정한 짐숭에 의해서 사람이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키는 정결 예식은 소용없게되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는 레위기 법전(레 11-15장)이 명하는 바 정 .부정의 규례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곧 그 영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진정 예수가 말하는 참으로 부정한것은, 물로도 씻을 수 없는 부정의 근본 원인이되는 사람의 마음이다.
따라서 참으로 부정한것은 자기 안에 있으며, 부정한 것이 밖에 있는 양 정결 예법에만 관심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부정한 것을 은폐시키려하는 모든 위선적인 정결 예법은 부정한 것이다.
실로 예수는 여기서 철저한 자기 변혁, 자기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결이라는 것은 가시적인 의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 곧 그사람의 인격과 양심과 영혼의 철저한 개혁을 통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 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여기서 언급되는 두 절은 원래 한 절로 구성된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즉 NIV에서는 16절이없고 15절의 하반부에 16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알렉산드리아 사본에서 16절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본에는\ 16절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나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필사자들이 4:9이나 4:23의 모형에 따라 인용하여 첨가시킨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공동 번역에서는 전자의것을 선택하여 16절을 생략하고 16절의 내용은 15절에 통합시키고 주를 달아 후자에서 언급한 첨가문을 소개한다.
한편 여기서는 1-23절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참으로 부정한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표현기법은 물질적 부정과 도덕적 부정을 날카롭게 대조시키는 대구법)형태로서 마가 특유의 어휘력이 구사되고 있다.
즉 사람밖에 있는 어떤 것(물질)도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는 것과 사람안에서 나오는 것(심성을 대변하는 말, 생각, 의지, 영적 반응 등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것이 날카롭게 대비되면서 딴절에서 다시 언급되는 것처럼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참으로 부정한 것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표현은 종교 지도자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던 정결 예식을 모조리 부인하는 결과적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부정한 음식, 부정한 물건, 또는 부정한 짐숭에 의해서 사람이 부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에 그들이 지키는 정결 예식은 소용없게되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는 레위기 법전(레 11-15장)이 명하는 바 정 .부정의 규례에 대한 새로운 해석, 곧 그 영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진정 예수가 말하는 참으로 부정한것은, 물로도 씻을 수 없는 부정의 근본 원인이되는 사람의 마음이다.
따라서 참으로 부정한것은 자기 안에 있으며, 부정한 것이 밖에 있는 양 정결 예법에만 관심하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부정한 것을 은폐시키려하는 모든 위선적인 정결 예법은 부정한 것이다.
실로 예수는 여기서 철저한 자기 변혁, 자기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결이라는 것은 가시적인 의식(儀式)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속 사람 곧 그사람의 인격과 양심과 영혼의 철저한 개혁을 통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막 7: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무리를 떠나...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 여기서도 역시 이야기의 장소적 배경이 바뀌고 있다. 이야기를 듣던 청중들과 헤어지고 제자들과 예수가 한 자리에 있을 때(가버나움의 베드로 집으로 추정) 제자들이 15, 16절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을 하고 있다.
이것은 마가가 즐겨 쓰는 묘사법으로서 마치 4:10의 장면을 보는 듯하다. 여기서는 '제자들'이질문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마태의 평행 본문에서는 베드로가 질문한 것으로 나온다 마태는 특정한 제자 곧 베드로를 자주 내세워 부각시키는 반면 마가는 전체 제자를 등장시키면서 제자들의 무지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도 제자들이 예수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어쩌면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하는데 중요한 증인 역할을 했던 베드로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간과해 버렸는지모른다. 한편 여기서 제자들이 질문한 것은'비유'에 대한 것이었는데, 예수가 한 이야기는'비유''라기 보다는 오히려 격언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